‘원샷법’의 독소를 빼자
  • 전성인 |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
  • 승인 2015.11.19 19:49
  • 호수 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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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이른바 ‘원샷법’)이 새누리당이 중점 추진하는 의원입법 형태로 국회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오해는 금물이다. 이 법은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해 우리 모두 화끈하게 폭탄주 한 잔씩을 원샷하자는 법은 아니다. 공급 과잉 상태에 빠진 업종의 구조조정을 위해 ‘화끈하게’ 이런저런 규제들을 한꺼번에(그래서 ‘원샷’이라는 말이 나온다) 없애거나 완화해주자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를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은 누구나 “규제를 화끈하게 완화하자”는 내용이 나오면 일단 경계부터 하고 본다. 더구나 이 법은 5년 한시법이다. 그럼 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니 공급 과잉 상태에 빠진 업종의 구조조정은 5년 이후에는 불필요하다는 것인가. 정부가 목매달고 통과시켜야 할 만큼 중대한 일이 기업의 개편과 관련해 5년 내에 무엇이 생긴단 말인가.

일단 정부(혹은 입법발의 의원들)는 조선·해운 등 공급 과잉 상태에 빠진 업종의 구조조정을 위해 이 법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업이 부실화되면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나 통합도산법과 같은 부실 기업 회생(정리) 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통로가 있지만, 부실 이전에 선제적 구조조정을 하기 위해서는 이 법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묘한 곳에 있다. 상법상의 소규모 분할, 소규모 합병 등에 관한 특례 규정들이 그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특정 조건(예를 들어 분할하거나 합병하는 대상이 소규모)이면 주주총회를 안 열고 이사회 승인으로 갈음하겠다는 것이다. 흐음, 이건 이상하다.

공급 과잉 업종에서 영업하는 기업이 부실화에 따른 구조조정이 아니라 선제적 구조조정을 하려고 하는데 주주총회를 여는 것이 구조조정에 그토록 방해가 돼서 구조조정이 안된다는 것인가. 어떤 조문에는 주주총회 소집이나 채권자 이의제기와 관련한 기간을 단축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주주총회 소집을 법안처럼 7일이 아니라 현행처럼 2주일의 시간을 두고 알리면 무슨 큰일이 난다는 것인가.

기업 구조 재편, 5년 이내, 주주총회 소집 기피, 대기업, 이런 단어들을 한곳에 모아보자. 필자에게 떠오르는 것은 딱 한 가지밖에 없다. 재벌 3세로의 승계, 이것이다. 삼성의 예를 보자. 삼성은 향후 5년 내에 승계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 그런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의 합병에서 보듯이 주주총회를 개최하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 부담이 큰 일이다. 이사회 결의만으로 회사를 쪼개고 합칠 수만 있다면 이 아니 좋을쏘냐.

이 법은 이런 의혹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다. 아무리 그 중간에 재벌의 승계에 활용하는 경우에는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을 넣어봐야 헛일이다. 승계가 아니라 구조조정이라고 우기면 그만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찌해야 하는가. 상법상의 특례에 관한 내용은 원칙적으로 모두 삭제해야 한다. 그리하여 기한을 조금 연장해주는 정도의 내용만 포함하도록 해야 진정으로 구조조정에 써먹되 다른 곳에는 악용되지 않는 법률이 될 것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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