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불명예 기록 ‘대장암 세계 1위’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11.26 20:43
  • 호수 1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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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대장암에 취약한 한국인 특유 유전자에 대한 연구 진행 중 “원인 밝혀지면 예방에 획기적 성과 거둘 것”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대장암 발생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의 최신 자료를 보면, 전 세계 184개국 가운데 한국인의 대장암 발병 인구가 10만 당 45명으로 세계 1위(2012년 기준)를 기록했다. 대장암 발생률 2위 국가는 슬로바키아(인구 10만명당 42.7명)이고, 헝가리(42.3명), 덴마크(40.5명), 네덜란드(40.2명), 노르웨이(38.9명), 벨기에(36.7명) 등이 뒤를 이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대장암 발병률은 슬로바키아, 헝가리에 이어 세계 3위였다.

2008년 대장암 전문가인 박재갑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대장암이 국내에서 3위이지만, 5~10년 이내에 가장 흔한 암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이는 현실이 됐다. 국제암연구소는 최근 자료를 통해 2012년 기준 모든 암 가운데 한국에서 발병 인구가 가장 많은 암으로 대장암을 꼽았다. 연간 대장암 환자는 3만3000여 명으로 갑상선암(3만2900여 명), 위암(3만1000여 명)을 처음으로 앞지른 셈이다.

ⓒ 시사저널 박은숙

국립암센터는 올해 남성의 대장암 인구가 10만명당 92.4명으로 2012년(58.7명)보다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여성도 대장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모든 연령에서 여성을 괴롭히는 암은 갑상선암과 유방암이지만, 65세 이상에서는 대장암 발생률이 가장 높다. 김광호 이대목동병원 위암·대장암 협진센터장은 “여성에게 발병하는 암 중에서는 3위, 65세 이상 노령에서는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암으로 집계되고 있다”면서 “특히 여성은 남성보다 대장암의 조기 발견이 늦고 상대 생존율이 낮아 폐경 이후의 여성은 대장암의 예방과 조기 검진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 1위 대장암 발생국이라는 불명예를 얻게 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크게 4가지 요인을 꼽는다. 술, 붉은색 고기, 유전자 변형, 건강검진이다. 국내 술 소비량은 과거보다 줄었지만 한국은 여전히 술을 많이 마시는 나라에 속한다. WHO의 2014년 세계 음주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 1인당 연간 알코올 소비량은 12.3리터로 세계 15위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을 제외하면 이 소비량은 27.5리터로 증가한다. 알코올이 대장암 발병과 관련이 깊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정승용 서울대병원 대장암센터장은 “대장암 환자가 많은 나라 순위를 보면 우리나라와 헝가리·슬로바키아 등이 최상위권에 속하는데, 모두 알코올 섭취량이 많은 나라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한국인의 식습관과 생활 방식을 봤을 때 고기보다 알코올 섭취를 줄이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대장암, 국가대표 암으로 등극

심지어 암에 걸렸다가 회복한 후에도 술을 끊지 못해 대장암 재발 등의 위험성도 커지는 실정이다. 연세암병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장암 경험자의 28.2%(19.7%는 가벼운 음주, 8.5% 폭음)가 술을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성훈 연세암병원장은 “한 번 암이 생긴 사람은 유전적 또는 환경적 요인으로 암이 재발하거나 2차 암이 생길 수 있는 만큼 반드시 금연·금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술 섭취량은 과거보다 줄어드는데도 대장암 발생이 최근 급증한 배경에는 과거보다 늘어난 붉은색 고기 소비가 있다. 1960년 이후 가파른 경제 성장과 함께 가정과 직장에서의 채식 위주의 식단은 육류 중심의 서구식으로 바뀌었다. 얼마 전 국제암연구소가 붉은색 고기(소·돼지·양고기 등)와 가공육(소시지·햄·베이컨·육포 등)을 발암물질 1군으로 규정했다. 이 연구소는 붉은색 고기를 매일 100g(작은 안심 스테이크 분량) 섭취할 때 대장암 발생 비율이 17%씩 높아진다고 했다. 햄·소시지·베이컨 등 가공육을 매일 50g(핫도그용 소시지 분량) 먹을 때 대장암 발생 비율이 18%씩 상승한다는 것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과 성신여대 식품영양학과의 공동 연구에서도 붉은색 고기의 하루 섭취량이 50g 늘어나면 대장암 발생 위험도 15%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붉은색 고기 섭취가 대장암의 발생률을 상승시킨다는 점을 재차 확인했다.

흔히 삼겹살에 소주를 먹는 한국인의 식습관은 대장암의 최대 적이다. 붉은색 고기와 알코올을 동시에 섭취하는 데다 고기를 불에 구울 때 발암물질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삼겹살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고기를 구워 먹는 식습관이 좋지 않으므로 요리사들이 지금과 다른 조리법을 개발하면 대장암 발생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보건 당국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하루 붉은색 고기 섭취량은 2010년 62.2g에서 2013년 64.6g으로 늘어났고, 가공육 섭취량 역시 같은 기간 5.9g에서 7.2g으로 증가했다. 해마다 육류 소비가 증가하는 추세지만, 그래도 서양보다는 적은 양이다. 예를 들어 미국인의 고기 섭취량은 우리보다 10배가량 더 많다. 그런데도 미국·영국 등은 대장암 발생률 상위 10개국 안에도 들지 않는다. 인구 10만명당 대장암 발생자는 한국보다 적어서 영국은 30명을 약간 넘고, 미국은 25명 전후이며 일본은 32명 선이다.

섭취하는 육류의 절대량이 서양에 비해 적은데도 한국인의 대장암 발생률이 높은 이유를 유전자에서 찾으려는 연구가 현재 활발히 진행 중이다. 대장암 발병은 인종 간에 차이가 있는데, 유독 한국인이 대장암에 취약한 증거를 찾는 것이다. 유전자 변형이 특별히 한국인에게 잘 발생하거나 대장암에 취약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암 억제 유전자(P53)에 대한 연구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유전자는 우리 몸에서 암 생성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데, 대장암 환자에게서 이 유전자에 이상이 생긴 것이 확인됐다. 정승용 교수는 “외국에서 발표한 대장암 관련 연구는 주로 서양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국내 여러 연구기관에서 한국인의 대장암에 대한 연구가 현재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대장암에 취약한 한국인 유전자 찾는다

이런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은 암 조기 진단이나 예측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명승권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암관리정책학과 교수는 “특정 유전자 변이로 대장암이 발생한다는 결과가 나오면 암 진단에 순기능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암 조기 발견은 물론 암에 걸릴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를 판단해 미리 생활습관이나 식습관 처방을 함으로써 암을 예방하게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대장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건강검진도 대장암 발병률을 높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많이 검사하는 만큼 대장암 발견도 늘어난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대장 내시경으로 용종을 제거한 건수만 지난해 170만 건 이상이고, 올해 200만 건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검사만 받은 건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명승권 교수는 “적지 않은 음주량, 짧은 기간 내 붉은색 고기 섭취량 증가, 잦은 대장암 검진 등이 대장암 1위 국가가 된 배경”이라며 “대장암 발생이 다른 암보다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일러스트 정현철

국제암연구소 등은 대장암 발병을 줄이는 방법으로 신체활동을 제시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의 신체활동은 과거보다 오히려 줄어든 상태다. 국민건강영양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2001년 이후 걷기 실천율은 점차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신체활동이 많은 농어업 인구 비중은 1960년대 후반에 50% 이상에서 1990년대 14%까지 감소했지만, 신체활동이 많지 않은 서비스업 종사자의 수는 전체 종사자의 50%를 넘었다. 정성애 이대목동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등록된 자동차 수와 운전면허 발급의 증가, TV 시청, 개인용 컴퓨터 보급 등으로 신체활동이 감소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신체활동 감소도 대장암 발병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잘 먹고 몸을 움직이지 않아 생긴 비만이 또 다른 대장암 요인으로 등장했다. 여러 국내외 연구에서 뚱뚱하면 대장암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성애 교수는 “78만명의 국민건강보험 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연구에 의하면 체질량지수의 상승이 대장암 발생 위험을 증가시켰다”며 “체질량지수가 30 이상(비만)인 사람은 18.5~22.9(정상 범위)인 사람에 비해 대장암 발생 위험이 거의 2배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아스피린으로 대장암 예방·치료 시도 중 


아직 대장암 치료제는 없다. 그러나 대장암 세포를 약으로 억제하는 시도가 국내외적으로 활발하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의대 존 배런 박사는 8월 저용량(75~150mg) 아스피린과 같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를 5년 이상 장기간 복용하면 대장암 위험을 27~45%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네덜란드 연구팀도 9월 아스피린이 암 환자의 생존율을 2배 가까이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대장암·위암·췌장암·식도암 환자 중 매일 아스피린을 복용한 환자는 5년 생존율이 75%, 아스피린을 복용하지 않은 환자는 42%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국원자력의학원 이민영·박명진 박사팀도 아스피린을 대장암세포에 투여했더니 세포가 분열을 멈추고 노화 과정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백승혁 강남세브란스병원 대장암센터장은 “아스피린이 대장암 예방이나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확정되려면 연구가 더 축적돼야 한다”며 “현재로서는 정기적인 검진으로 용종과 초기 대장암을 빨리 발견하는 게 최선의 대장암 예방”이라고 강조했다.


 
 

 

장수촌 명성도 퇴색시킨 식습관 

일본 오키나와는 장수촌이라는 별칭을 붙이기 어려워졌다.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긴 지 오래고 100세 노인이 많기로 유명했던 오키나와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부동의 1위 장수촌이었다. 2013년 평균수명이 남성은 79세로 전국 30위로 추락했고 여성도 87세로 3위에 턱걸이했다. NHK가 “지금대로라면 10년 안에 일본 전체에 장수 붕괴 시나리오가 펼쳐질 것”이라고 보도할 만큼 충격적인 결과다.

그 원인은 식습관 변화에 있었다. 콩류를 많이 먹는 식습관이 오키나와 사람들의 장수 비결로 꼽혔으나 언제부터인가 통조림 햄을 먹는 식습관이 퍼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된장국과 비슷한 미소시루, 오키나와식 볶음요리인 찬푸르는 물론 김밥에도 햄과 치즈를 듬뿍 넣었다. 1970년대 주둔했던 당시 미군부대에서 나온 가공식품이 오키나와 전통식에 침투했다.

현재 70대 이상은 건강하지만 20~60대의 비만율과 사망률은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성인 2명 중 1명은 비만이다. 비만율이 남자 47%, 여성 26%로 전국 1위로 일본 전국 평균(3명 중 1명)보다 심각하다.

게다가 예전보다 걷지 않고 차를 타는 습관에 익숙해지면서 심혈관 질환이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30년간 오키나와의 사망 원인에서 순환기계 질환 발병률이 일본 전체 평균보다 현저히 높아졌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나온 바 있다.

동맥경화·고혈압 등 혈관 질환이 거의 없었던 에스키모(이누이트)도 비슷한 경우다. 이들은 바다표범, 고래 등은 날것으로 먹었다. 채식을 거의 하지 못하고 동물성 지방을 주로 섭취하므로 이누이트는 대체로 비만하고 편식하는 탓에 수명은 40~50대로 낮았지만  혈관 질환 발생률은 미미했다. 1920년대 여러 학자가 연구한 결과, 그들이 해양성 생물에 풍부한 오메가-3 불포화지방산을 섭취한 때문으로 밝혀졌다.

이후 이들 중 일부는 추운 곳을 떠나 미국 허드슨 강 등으로 이주하면서 조리된 음식과 백색 밀가루로 만든 패스트푸드를 접했다. 심장 질환 발생률이 높아졌고 피부 질환에도 취약한 상태가 됐다. 아일랜드 보몬트종합병원 피부과 질리언 머피 교수는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알래스카 에스키모가 야생의 물개를 사냥해 날고기를 섭취하던 시절에는 건선에 걸리지 않다가 캐나다 밴쿠버로 이주해 햄버거를 먹으며 살게 되자 건선이 발병했다”며 “환경과 식습관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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