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보험사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11.26 21:17
  • 호수 1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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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차 보험료 개선 없이는 사기 유혹 계속…금융위 개선안 ‘절반의 효과 불과’ 지적

지난 2013년 10월 광주광역시에서 일어난 한 자동차 사고 현장 사진이 자동차 동호회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사진에는 국산차인 경차 모닝과 유명 수입차인 슈퍼카 람보르기니가 교차로에서 충돌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동호회 회원들은 모닝 차주에게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람보르기니 차주의 선처가 필요할 것 같다는 의견을 주로 남겼다. 이후 보험사 등의 현장조사 등을 통해 나온 과실 비율은 모닝과 람보르기니가 50대 50으로 똑같았다. 수리비 견적은 모닝이 약 27만원, 람보르기니는 1억200만원이 나왔다. 과실 비율에 따라 모닝 운전자는 자신의 보험사를 통해 모닝 차 가격(신차 기준)의 5배에 달하는 5144만원을 람보르기니 운전자에게 지급해야 하지만, 람보르기니 측 보험사는 모닝 운전자에게 13만9000원만 지급하면 됐다.

“국산차·수입차 구별 않는 보험료 불공평”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고가 수입차의 보험료 체계가 불합리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람보르기니의 수리비 견적이 많이 나온 이유는 차가 비싼 탓도 있지만, 부품 조달이 어려워 수리 기간도 길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리 기간 동안 동급의 차량을 렌트할 경우 지급 렌트비만 해도 웬만한 경차 한 대 구입비용과 맞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단 이 사고뿐만 아니라 고가의 외제차들이 사고가 날 경우, 자신의 보험사뿐만 아니라 상대방 보험사에서도 거액의 수리비를 지급받기 때문에 납입하는 보험료에 비해 높은 기대 수익을 가져가게 된다. 반면 외제차와 사고가 난 운전자는 국산차와의 사고 때와 비교해 고가의 수리비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보험료 할증 비율이 높아진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보험료 체계는 보험사기에 활용될 가능성도 크다. 현재 대다수 손해보험사는 수입차의 경우 부품 수급 과정에서 늘어나는 렌트비 부담을 덜기 위해 대체 차량 제공 없이 수리비만 현금으로 제공하면 되는 미수선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즉 자동차보험도 상해보험이나 생명보험과 같이 보험금을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손보사들은 수입차의 비싼 렌트비와 수리비를 아끼기 위해 수입차 운전자들의 수리비 현금 지급 요청에 응하고, 수입차 운전자들은 경미한 사고가 나도 수입차의 비싼 수리비로 인해 제법 많은 현금을 챙길 수 있기 때문에 보험사기 유혹에 빠지게 된다. 2015년 3월 거제에서 일어난 람보르기니와 SM7 간 교통사고도 이러한 제도를 악용하려던 보험사기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입차 보험료와 관련된 이 같은 문제는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가 2013년 자신의 홈페이지에 쓴 글에서 잘 지적하고 있다. 이 교수는 “수입차 보유자는 국산차 보유자들로 하여금 더 비싼 보험료를 내게 만드는 ‘나쁜 외부성’을 가져다주는데, 현행 보험료는 이 점을 무시하고 수입차 보유자에게 싼 보험료만을 받고 있다”며 “대물배상과 관련해 국산차와 수입차를 구별하지 않는 현행 보험료 구조는 불공평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수입차 비중이 높아질수록 사고 한 건당 지급되는 평균 보험금이 커지고, 보험회사는 그 비용을 소비자에게 부담시킬 것”이라며 “보험료 인상분은 전적으로 수입차 보유자가 져야 할 부담인데도 현행 보험료율 구조에서는 국산차 보유자도 보험료 부담이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금융위원회가 마련하고 국토교통부가 11월18일 발표한 ‘고가차량 자동차보험 합리화 방안’ 역시 수입차 보험료의 비현실성에 대해 이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의 지적을 반영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금융위가 마련한 방안에 따르면, 내년 3월부터는 수입차 운전자들이 경미한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수리하는 부분은 보험 대상에서 제외된다. 범퍼가 긁히는 정도의 경미한 접촉 사고 때 범퍼를 통째로 교체하는 경우가 잦아 수리비 부담을 늘리는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미한 사고는 보험금 지급을 원칙적으로 판금·도장 등으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국토교통부와 함께 내년 초까지 ‘경미한 사고 수리 기준’을 새로 만들어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에 반영키로 했다. 금융위가 이 같은 방안을 마련하게 된 이유는 고가의 수입차가 늘어나면서 수리비나 렌트비의 급등으로 보험사들의 부담이 커져 자동차 보험료 인상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방안으로 연간 2000억원의 보험료 손실을 줄이게 되면 보험료 인상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든다.

개선안, 저가차 보험료 할인은 반영 안 돼

차량 수리 기간에 이용할 수 있는 렌터카 기준도 변경된다. 현행 표준약관은 본인 차량과 같은 동종 차량 렌트비를 보험사에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외제차 등의 경우 렌트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내년 3월부터는 배기량과 연식이 유사한 동급 차량 중에 최저 요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표준약관이 개정된다. 예를 들어 BMW 2000㏄ 차량이라면, 쏘나타 2000㏄ 렌트비를 지급한다는 것이다. 대체 차량 제공 기준을 ‘동일 배기량’으로 변경하게 되면, 수입차 고객에게만 과도하게 지급되던 대물보험금을 낮출 수 있어 보험사 손해율 개선은 물론 국산차 운전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일부 개선할 수 있을 전망이다.

수입차 등의 자차보험료도 인상된다. 평균 수리비보다 수리비가 더 들어가는 차량들을 4개 구간으로 나눠 각각 3, 7, 11, 15% 할증키로 했다. 15% 인상 대상은 BMW·벤츠 대다수 차종과 렉서스ES 등 수입차 38개 차종, 현대 에쿠스 리무진, 제네시스 쿠페 등 대형 국산차 8개 차종이다. 이번 방안으로 연간 2000억원의 보험료 손실을 줄이게 되면, 보험료 인상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든다.

하지만 관련 기관이 내놓은 이번 대책은 불합리한 보험료를 개선하는 데 절반의 효과밖에 거둘 수 없다는 지적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한 자동차 동호회 관계자는 “개선안은 평균 수리비를 초과하는 고가 차량에 대한 특별 할증(3~15%)만 있고 평균보다 수리비가 적게 드는 저가 차량에 대한 특별 할인은 없어 결국 자동차보험사 수익만 불리는 보험료 인상안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대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그동안 고가차 수리비를 대신 부담해왔던 저가차의 보험료를 할인해야 함에도 이 부분은 반영되지 않았다. 즉 고가차와 저가차 간 보험료 왜곡과 역차별 문제는 크게 해결된 것이 없는 셈이다. 앞서 언급했던 동호회 관계자는 “수리비에 따른 보험료 할증과 할인 모두 담고 있어야 함에도 할증만 포함된 것은 반쪽짜리 대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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