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과의 대화] 토막 낸 시신 차에 싣고 태연하게 쇼핑
  • 배상훈 |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프로파일러) (.)
  • 승인 2015.12.03 20:45
  • 호수 136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건만남 남성 모텔에서 살해…무엇이 그녀를 화나게 했나

2014년 5월31일 아침 8시25분쯤 인천 남동경찰서에 신고 한 건이 접수됐다. 가방 속에 시체가 있다는 신고였다. 신고자는 인천 남동공단의 회사로 출근하다가 회사 담벼락에 기대 있는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발견했다. 아래 부분에 파리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가방의 지퍼를 열자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부직포와 비닐로 싸인 무언가가 있었는데 붉은 핏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비닐에서 여성의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색 긴 머리카락도 보였다. 참으로 이상한 광경이었다. 왜 시체를 으슥한 곳이 아닌 유동 인구가 많은 공단의 노상에 유기했을까.

발견 당시 시체는 40~50대 남성으로 알몸 상태였다. 허벅지부터 아래 부분이 잘려나갔는데 하반신은 보이지 않았다. 깔끔하게 잘려나간 뼈의 단면을 볼 때 어느 정도 두께가 있는 톱으로 한 번에 절단한 것으로 보였다. 가슴·등·뒷목 등에 상처가 집중돼 있었다. 왼손에 방어흔이 있었다. 서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공격을 당해 쓰러진 후 연속적으로 흉기에 찔릴 때 저항한 것으로 보였다. 범행 도구는 길이 15㎝ 정도에 폭이 얇은 칼로 추정됐다. 부검 결과, 약물은 발견되지 않았고, 손톱 밑에서 DNA도 발견되지 않았다. 다행히 지문 채취를 통해 변사자의 인적 사항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천 서구에 거주하는 프리랜서 프로그래머 A씨였다. 부인의 진술에 의하면 5일 전인 5월26일 오후 2시쯤 업무를 본다며 승용차를 타고 외출했고, 당일 오후 5시40분까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밤 11시23분쯤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다. 휴대폰 전원이 꺼져 있는 것을 확인한 부인은 28일 경찰에 가출신고를 했다.

ⓒ 일러스트 오상민

무인 모텔에서 사라진 남성

수사팀은 시체가 발견된 장소 주변의 CCTV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이를 통해 시체가 발견되기 8시간 전쯤 약 5분간 정차한 후 다시 이동한 차량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차량은 정차하기 8분 전에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처음 멈춰 섰던 장소로 돌아와 시체를 유기(遺棄)한 것이다. 그 장소에 반드시 시체를 둬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 장소가 시체를 유기하기에 좋은 곳이라고 여겼던 것일까.

CCTV의 화질이 좋지 않았고, 더군다나 밤이었기 때문에 차량번호를 알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다만 전조등이나 후면부 등을 봤을 때 국산차가 아닌 외제차로 C사에서 나온 S 모델인 것으로 판단됐다. 동시에 진행된 휴대폰 통신 수사를 통해 마지막 기지국이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근처이고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이 B씨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파주시에 거주하는 B씨가 소유한 차량이 C사의 S 모델이었다. 이 차량이 31일 시체 유기 장소 근처를 운행한 사실이 다른 CCTV에서 확인됐다. 곧바로 B씨가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됐다.

좀 더 정확한 CCTV 수사를 통해 A씨와 B씨의 동선이 파악됐다. A씨는 자신의 승용차를 파주시 모처에 세워두고 B씨 차량을 타고 모텔로 향했다. 이른바 조건만남이었다. 이 모텔은 무인 모텔로 주차 후 셔터가 내려지면 완전히 외부와 차단됐다. CCTV 확인 결과, 두 사람은 26일 오후 5시22분쯤 함께 입실했다. A씨는 1시간 후 잠깐 모텔에서 나와 편의점에 들러 물건을 사가지고 다시 모텔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후 행적이 사라졌다.

B씨는 27일 차를 끌고 나와 쇼핑백에 무언가를 사가지고 모텔로 돌아왔고, 다음 날인 28일 비닐에 싸인 여행용 가방을 차 안에서 꺼내 객실로 가지고 들어갔다. 5시간 후 B씨는 여행용 가방을 차량 뒷좌석에 옮겨 싣고 모텔을 떠났다. 두 사람이 묵었던 객실을 감식한 결과, 벽과 바닥에서 인혈(人血) 반응이 나왔는데 그 양으로 봐서 거실에서 시체 손괴가 이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A씨의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통해 범행 후 B씨의 동선도 파악됐다. B씨는 A씨의 신용카드로 주유를 하고 귀금속과 여행용 가방 등을 구입했다. B씨를 체포해 차량을 확인한 결과, 전기톱과 칼 등이 발견됐다. A씨의 신용카드를 압수한 경찰은 B씨의 옷가지에서 혈흔 반응이 나오는 것도 확인했다.

B씨는 첫 진술에서 범행을 부분적으로 인정했지만 A씨로부터 성폭행을 피하기 위한 자기방어였다고 주장했다. 시체의 나머지 부분인 하반신이 유기된 장소도 알려줘 파주시 조리읍의 농수로에서 A씨의 다리를 찾을 수 있었다. 본격적인 피의자 신문에서 B씨는 자기방어 차원에서 엉겁결에 살인을 했고, 같은 맥락에서 범행을 숨기기 위해 시체를 훼손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B씨는 A씨를 ‘나쁜 사람’ ‘나쁜 놈’ 등으로 지칭했다. B씨의 진술에 의하면 A씨와는 카카오톡을 통해 알게 돼 호기심에서 만났는데 A씨가 강압적으로 모텔로 끌고 가 방 안에서 강간을 하려고 했다. 이에 호신용 칼로 저항하다가 A씨를 여기저기 찔렀다는 것이다.

B씨의 차량 안에서 발견된 칼은 범행에 사용한 칼이 아니라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두 자루의 칼 중 하나로 둘은 유사했다고 한다. 차량에서 발견된 칼은 한자가 음각돼 있었고 보통의 회칼보다 두꺼운 칼이었다. 범행에 사용된 칼은 시체 유기를 위해 이동하던 중 A씨의 옷가지와 함께 어딘가에 버렸다는 것이다. B씨는 쓰러진 A씨를 보면서 한동안 망연자실해 있었는데, 그때 누군가가 ‘이대로 두면 A가 다시 살아나 너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속삭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시체를 손괴해야 안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해 전기톱으로 시체를 절단해 다리는 농수로에 버리고 상반신은 유기할 곳을 찾다가 지쳐 그냥 남동공단에 버렸다고 한다.

2014년 6월10일 채팅으로 알게 된 50대 남성을 유인해 살해한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B씨가 인천 남동경찰서를 빠져나와 호송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시체 상반신 차에 싣고 다른 남성과 조건만남

하지만 B씨는 이후 피의자 신문에서는 이전 진술을 대부분 부인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하면서 정신병자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B씨의 모친은 B씨가 1년 정도 병명을 모르는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그렇다면 B씨는 정신병 환자인 것일까. B씨의 휴대폰 통화 내역과 문자메시지를 복구한 결과, 그렇지 않다는 점을 확인해주는 사건 당일의 기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로 성매매를 암시하는 내용이었다. 여기에는 B씨가 범행이 벌어진 모텔로 A씨를 유도한 정황도 담겨 있었다. A씨 이외에 90여 명의 남성과 조건만남을 가진 증거도 나왔다. B씨는 채팅을 통해 다수의 남성에게 접근한 후 성매매를 해온 여성이었던 것이다. A씨의 시체 상반신을 차량 뒷좌석에 둔 채 다른 남성과 조건만남을 갖기도 했다.

B씨의 말과 행동 등을 살펴보면 잘 이해가 안 되는 점들이 발견된다. 그녀의 내면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후 수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을 종합하면 이렇다. B씨는 겉으로는 고가의 외제 승용차를 소유하고 온갖 명품으로 치장한 채 화려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B씨는 수천만 원의 빚을 지고 있는 신용불량자였다. 외제 승용차도 할부금이 잔뜩 밀려 있었다. 그녀는 채팅을 통한 조건만남으로 돈을 벌었다. 중년의 남성이 주 대상이었다. 처음부터 자신이 제압할 수 있는 대상을 특정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B씨가 소지하고 있던 회칼은 호신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무기였다. A씨의 시신에는 무려 41곳의 상흔이 남아 있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라고 보기 힘든 대목이다. 심리적으로 볼 때 그녀에게 외제 승용차와 회칼은 같은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 이런 사람이니까 건드리지 마,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을 거야’라는 공격적 방어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그래서 B씨는 자신이 다루기 쉬운 대상을 선정해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고 만약 그 과정에서 상대가 다루기 힘들어지면 곧바로 공격하는 유형라고 할 수 있다. 소시오패스의 특성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걸로 다 이해될 수 있을까. 사건을 추적하면서 B씨의 행동에서 또 하나의 특이점을 발견했다. 그녀는 이상하리만큼 향수에 집착했다. A씨를 살해한 후 그녀는 시신이 있는 모텔 객실에서 이틀 밤을 더 보냈다. 전기톱과 세제, 여행용 가방 등 시신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한 후 다시 돌아온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운반을 쉽게 하기 위해 다리를 절단한 그녀는 시신을 객실에 둔 채 외출해 자신이 살해한 A씨의 신용카드로 쇼핑을 즐겼다. 남자친구에게 선물한다며 금목걸이를 구입하려고 했는데 귀금속점 주인이 신분증을 요구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범행 이틀 후 아침 시신을 자신의 승용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인터넷에 접속해 시신을 유기할 장소를 찾았는데 이 과정에서 채팅 사이트를 통해 또 다른 남자들과의 조건만남을 가졌다. 무려 60시간 동안 시신을 차 안에 그대로 방치해뒀다. 초여름 날씨로 인해 부패되기 시작한 시신의 악취는 차 안에 가득했고 그녀는 향수로 자신의 범행을 숨기려 했다. 여기서 향수의 사용 목적이 단순히 냄새를 중화시키려는 의도로만 보이지 않는다.

시신의 부패 냄새는 향수로 중화할 수 없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향수를 뿌렸다. 그녀에게 향수는 페르소나 같은 도구였다. 일종의 가면인 것이다. 범행 사실을 인정하던 진술이 어느 시기 이후 번복됐다.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 다른 목소리가 시켰다는 등 이상한 주장을 했다. 이러한 행동에서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한 단면이 보인다. 범행 후 아웃렛에서 화장품을 사는 등 쇼핑을 즐기는 동안 주변 사람들이 별다른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태연하게 행동했다.

SNS 통해 현실과 다른 행복한 모습 과시

B씨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후 진술을 기피해 더 깊은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단편적으로나마 알려진 사실을 통해 그녀의 삶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일단 결혼까지 생각하던 남자와 이별을 했다. 이 경험이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런 일들이 중첩돼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가족과 단절된 채 혼자 살아왔다. 주변에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도 없었다.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수단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였다. 그녀의 SNS 계정에 올라온 사진을 보면 과도하게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는 외부에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해외여행에서 찍은 사진이 주를 이루고 있다. 골프 하는 모습 등 여유롭고 행복해 보이는 그녀의 사진들, 그러나 이 모든 사진들이 혼자 찍은 ‘독사진’이었다. SNS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인들의 댓글도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현실과는 너무 다른 행복한 모습을 과시하고자 했다. 진술 과정에서 그녀는 처음 만난 A씨에게 이상하리만큼 강한 적대감을 보였다. 조건만남이라는 행위는 남성들만이 아니라 여성도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런데도 남성들을 적대시한 것은 자신이 꾸민 삶의 경계를 넘으려는 이들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다. 그래서 회칼을 늘 가지고 다닌 것이다.

B씨의 범행은 이미 예정돼 있던 것으로 보인다. 공포와 분노 속에서 살아온 그녀는 자신이 정한 규칙을 넘어서려는 A씨를 희생자로 삼았다. A씨가 폭력을 보여서 공격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녀의 행동적 특이성을 볼 때 작은 오해에서 비롯됐을 가능성도 있다. 그녀를 화나게 한 것은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공포와 분노였을 수 있다. A씨의 명복을 빌며 B씨도 죗값을 치르며 스스로 마음의 평안을 찾길 기도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