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불타고 있는데 우린 딴 곳을 보고 있다”
  • 최정민│프랑스 통신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5.12.08 17:56
  • 호수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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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기후변화협약 정상회의에 대한 회의론 많아
11월30일 프랑스 파리에서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렸다. © EPA연합

지금까지 세계 정상이 가장 많이 모였던 사례는 1948년 12월10일 파리 샤이요궁(宮)에서 ‘세계인권헌장’을 선언하던 자리였다. 당시 58개국 정상이 모였다. 반세기가 흐른 지난 11월30일 테러의 상흔이 아직 가시지 않은 파리에, 이번에는 전 세계 195개국의 정상이 한자리에 모였다.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바로 ‘지구 환경’을 위한 자리였다.

이번 회의에는 석유 의존도가 절대적인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니카라과, 파나마, 우즈베키스탄, 시리아 등 8개 나라를 제외한 195개국이 참가했다. ‘하늘에서 본 지구’라는 프로젝트로 유명한 세계적인 사진작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은 이번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 사국총회(COP21) 정상회의를 추진한 프랑스 정부에 대해 “지난 2년간 올랑드 대통령과 파비위스 외무장관의 노력은 인상적이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번 회의의 사전 작업은 지난 2012년에 파리가 개최지로 선정되며 시작됐다. 3년간 공들여 50여 쪽에 이르는 보고서를 도출해냈다. 그리고 이 성과물 안에 든 50개의 조항이 ‘합의’라는 마지막 관문을 남겨두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목표는 향후 지구온난화 상승 폭을 2도 대로 억제한다는 것과 2020년까지 94억 유로에 이르는 자원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공영방송에 따르면, 현재 지구온난화 시나리오는 4개의 가설을 상정(想定)할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아무런 대책 없이 지금의 기온 상승 추세를 유지하는 경우다. 지구 온도의 상승 폭은 2100년에는 5.7도에 이르며, 이 경우 파리의 여름 온도는 최고 42도라고 한다. 육류를 비롯한 모든 식재료의 가격 상승은 물 론, ‘물’을 둘러싼 분쟁까지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가장 낙관적인 가설은 이번 회의가 ‘보편적인 합의 도출’에 성공해 향후 기온 상승폭을 2.3도로 억제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는 최악과 최상의 중간인 3.2~3.7도 수준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랑드, 지구를 구하기 위해 나서다

환경운동가이자 유엔의 지속성장에너지 자문위원으로 “정치를 하지 말고 일을 해야 한다”고 일갈했던 브라이스 라롱드는 이번 총회를 두고 “모든 정상이 환경 문제를 인식했다는 것은 우선 중요한 성과”라고 전제한 다음 “사회 모든 분야에서 ‘지구온난화’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0여 개에 이르는 조항의 ‘세계적인 합의’ 가능성에 대해선 “정치적 기적이 필요할 것”이라고 그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동안 우리가 지켜온 코펜하겐의 합의서는 두 페이지에 지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모든 정상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리에 도착한 정상들은 예외 없이 지난 11월13일의 테러를 애도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도착 직후 새벽 1시30분에 테러 현장을 찾아가 헌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환경회의에 ‘올인’한 모습이다. 엘리제궁은 ‘평화’를 추구하는 큰 틀에선 ‘테러 방지’와 ‘환경정책’은 일관된 방향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야당인 공화당 총재인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우리 모두 테러를 잊은 것인가”라고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책적인 비판이라기보다는 경쟁적 질투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왜냐하면 이번 테러 이후 상승하기 시작한 올랑드의 지지율이 이번 환경 회의를 계기로 정점에 올랐기 때문이다.

12월2일 나온 자료에 따르면, 올랑드 대통령 지지율은 무려 22%나 상승해 50%를 찍었다. 뉴스 전문 채널인 BFMtv의 정치칼럼니스트는 “이제 올랑드 대통령은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벗게 됐다”고 결론지었다. 차기 대선 가도까지 밝아진 셈이다.

박 대통령은 장관이, 아베는 대통령이 영접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질투 어린 시선을 던지고 있지만, 그 자신도 재임 당시 ‘지중해연합’을 발족하며 유럽은 물론 지중해 인근 아프리카 국가 정상 등 44개국의 지도자들을 파리로 초청한 사례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발족됐던 ‘지중해연합’이 현재는 외무장관급 모임으로 그 위상이 격하되며 유명무실해졌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올해 지중해를 중심으로 극심했던 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195개국 정상과 영국 왕실의 찰스 왕세자는 물론 모나코 국왕까지 참석한 행사였던 만큼, 의전에서 진풍경이 이어졌다. 개막 영접은 아침 8시에 시작돼 무려 3시간에 걸쳐 이뤄졌으며 올랑드 대통령과 이번 총회의 의장인 로랑 파비위스 외무장관, 마뉘엘 발스 총리, 그리고 여당인 사회당의 할렘 데지르 서기장까지 영접에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골렌 루아얄 환경장관의 영접을 받았으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올랑드 대통령의 영접을 받으며 비주(프랑스식 볼 입맞춤)와 포옹을 나눠 눈길을 끌었다. 한편 모로코 국왕은 도착 당시 할렘 데지르 사회당 서기장만이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차에서 내리지 않아 자리를 비웠던 올랑드 대통령이 2분 만에 허겁지겁 영접에 나서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 세계의 정상들이 모인 자리였던 만큼 개막식의 백미는 사진 촬영이었다. 거의 모든 국가수반이 모였지만, 단연 돋보였던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각’이었다. 최근 터키와의 갈등은 물론, 이번 환경회의 기조에 대해서도 미온적이었던 의중을 ‘지각’과 ‘사진 촬영 불참’이라는 의전 차원의 제스처로 각인시켰다. 푸틴 대통령은 기조연설에서도 “경제 성장과 환경보호는 동시에 이룰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푸틴 대통령의 어깃장에서도 볼 수있듯이 모든 정상이 모였지만 모두가 합의에 이른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기도 하다.

“집이 불타고 있는데, 우리는 다른 곳을 바라만 보고 있다.” 이번 환경 정상회의를 치르며 프랑스 언론과 정가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이 말은 지난 2002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렸던 ‘세계정상회의’에서 자크 시라크 당시 대통령이 했던 발언이다. 이제 13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지구촌은 그 타는 불길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전 세계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말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COP21’의 개막일은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의 생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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