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쫌만 더 지켜본다…그리고 결단한다”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press.com)
  • 승인 2015.12.16 18:59
  • 호수 136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정치연합 ‘관망파’, 당내 계파 갈등과 文-安 대결 구도에 큰 영향 미칠 듯
© 시사저널 이종현

새정치민주연합이 ‘시계(視界) 제로’ 상태에 빠졌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안철수의원의 ‘혁신전대’안을 받지 않기로 하면서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이미 오영식·주승용 의원이 당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데 이어 최재천 의원이 정책위의장직에서 물러나며 지도부가 마비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문 대표를 필두로 한 주류와 안철수 의원을 비롯한 비주류 간의 갈등은 이미 일정 수준을 넘어섰다. 당 내부의 분열을 막지 못한다면 최악의 경우 ‘집단 탈당 사태’가 일어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계파 간 갈등의 골이 너무 깊은 탓에 봉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는 의미다. 당내에서는 문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안 의원을 비롯한 비주류 측이 집단 탈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내년 총선의 결과는 불을 보듯 빤하다는 예상이 벌써부터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최악의 성적표(비례대표 포함 81석)를 받아들었던 2008년보다 더 나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내부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건에서도 내년 총선의 의석 수가 70석 정도로 떨어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며 한 차례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제 새정치연합의 운명은 중도 계열의 선택에 달렸다. 현 상황에서는 문 대표와 안 의원 간의 ‘접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친노·비노 프레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 중간지대 의원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분열의 골이 깊어질지, 극적인 합의를 통해 반등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결정 날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는 현 상황이 계속된다면 결국 총선 대패와 함께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당 지도부 잇단 사퇴…컨트롤타워 사실상 마비

새정치연합은 현재 당 지도부가 잇따라 물러나며 컨트롤타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져 있다. 11월27일 오영식 의원이 최고위원 자리에서 물러난 데 이어 12월8일에는 주승용 의원이 최고위원직을 사퇴했고, 이종걸 원내대표도 최고위원회불참을 선언했다. 여기에 12월10일 최재천의원이 정책위의장직에서 물러나면서 당지도부가 난파 상태에 봉착했다.

자리를 내놓은 의원들은 하나같이 문 대표와 안 의원의 ‘정치적 결단’과 ‘화합’을 촉구했다. 주 의원은 12월8일 오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제가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남으로써 통합의 물꼬를 트고자 한다”고 밝혔다.

주 의원은 현재 당권을 쥐고 있는 문 대표에게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8월 최고위원에 복귀하면서 문 대표와 ‘계파 패권정치 청산에 따르는 당의 일체화와 통합이 최고의 혁신이며, 총선과 대선 승리로 가는 길이라는 데 공감하고, 함께 노력하기로 한다’고 합의했지만, 문 대표는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대표와 저 사이에 최소한의 정치적 신뢰도 없었던 것이며, 패권주의의 민낯을 또다시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12월8일 심야에 문 대표에게 전화해 최고위원회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문 대표는 이 원내대표와의 전화통화에서 “왜 지도부를 흔드느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재천 의원은 12월10일 오전에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해 “당의 분열과 혼돈에 대한 정치적 책임에 예외일 수 없다”며 “명료한 책임의식으로, 정치적 결단에 대한 강력한 재촉으로 정책위의장직을 내려놓고자 한다”고 밝혔다.

잇따른 불참으로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사실상 마비상태에 빠져들었다. 앞서 오영식·주승용 최고위원이 사퇴할 때는 공석을 채우지 않고 최고위원 7인 체제로 유지하고 최고위 의결도 7명의 과반인 4명의 찬성으로 처리하기로 했지만, 최재천 정책위의장의 사퇴와 이종걸 원내대표의 ‘최고위 보이콧’으로 상황은 더 악화됐다.

설상가상으로 ‘강행 돌파’를 선언한 문대표에 대한 사퇴 요구도 더 커졌다. 12월11일 새정치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승희 최고위원은 수도권 의원들의 ‘문-안 비대위’ 중재안에 대해 “사실상 ‘문-안-박 체제’와 다를 게 없다. 통합과 혁신을 위한 전당대회를 제안하고 이를 위해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의 살신성인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전병헌 의원은 안철수 의원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를 통해 “지금은 문·안 두 분이 협력할 때로 부디 문 대표가 내미는 손을 맞잡아달라”며 “문 대표도 보다 진정 어린 가슴으로 안 전 대표에게 다시 손을 내밀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文, 여전한 ‘강공’… “최악 총선 될 수도” 불안감

문 대표를 비롯한 새정치연합 주류 측은 안 의원이 내놓은 ‘10대 혁신안’은 수용할 수 있지만 대표 사퇴 및 ‘혁신전대’를 하자는 제안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문 대표는 오히려 당무를 거부한 이들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12월9일 열린 당무위원회에서 “당무를 거부하는 당직자들에게 경고한다. 당무를 거부할 경우 교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강수를 뒀다.

한편으로는 안 의원 측을 끌어안기 위한 제스처도 보였다. 12월11일 열린 새정치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 안 의원이 제시한 ‘10대 혁신안’을 당헌에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김성수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갖고 “10대 혁신안을 당헌에 구체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당헌 개정 권한을 중앙위원회의에서 최고위원회에 위임해줄 것을 중앙위에 부의키로 했다”고 밝혔다. 당헌 개정을 최고위에서 결정하면 최종적으로 당헌에 반영되게 된다. 문 대표는 혁신안에 따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한명숙 전 의원에게 탈당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 전 의원은 조만간 자진 탈당계를 낼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안 의원 측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다. 우선 가장 최근에 요구한 ‘혁신전대’안을 거부하고 예전에 내놓은 ‘혁신안’만 받아들이며 생색을 내려 한다는 것이다. 새정치연합 비주류계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문 대표 측이 뒤늦게 혁신안을 받아들이면서 명분 쌓기만 하고 있다. 안 의원은 이미 전당대회를 열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예전에 거부한 바 있던 ‘혁신안’을 이제야 받아들이면서 마치 안 의원을 끌어안겠다는 듯한 이미지만 심어주려 한다”고 지적했다. 문-안의 갈등이 이 정도로는 봉합되기 힘들어졌다는 의미다.

이처럼 상황이 악화일로에 접어들면서 당 안팎에서는 당장 내년 총선에 대한 걱정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첫 번째로 나오는 우려는 ‘집단 탈당’ 사태다. 새정치연합 한 의원실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안 의원의 탈당과 그에 따른 비주류계 의원들의 집단 탈당이라는 최악의 사태까지도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또 “만약 그렇게 야권이 분열될 경우, 내년 총선에서 야권 통합을 이루기도 요원해 결국 대패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미 새정치연합 내부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문건에서 최악의 패배를 당했던 2008년의 81석보다 적은 73석을 얻을 것으로 전망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안감은 더 커졌다.

“결국 ‘관망파’에 당 운명 걸려”

새정치민주연합 주승용 최고위원이 12월8일 최고위원직 사퇴를 발표한 후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 연합뉴스

결국 친(親)노계와 비(非)노계, 주류와 비주류 등 계파 간 갈등이 끊이지 않는 새정치연합에서 가장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이들은 ‘관망파’라는 관측이 나온다. 안 의원이 탈당을 하든 안 하든 간에 이들의 정치적 선택이 당 전체의 방향을 쥐고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단일화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지만, 집단행동을 할 경우 파급력이 제일 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새정치연합에는 주류와 비주류를 합쳐 총 7~8개의 계파가 존재하고 있다. 여기에는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범(汎)친노 계열과 정세균계, 민평련계 등 주류와 김한길계, 구(舊)민주계, 손학규계, 안철수계 등이 포함돼 있다. 여기에 원로 그룹을 제외하고 나면 20명가량의 의원이 특정 계파에 속하지 않은 상태다. 여기에는 문 대표와 대척점에 서 있는 조경태 의원 등이 포함돼 있다.

당내 중도를 표방하며 의원들끼리 뭉친 의견 그룹도 있다. 강창일·최재천 의원 등이 주도해 모인 ‘구당모임’이 있으며, 민병두·박영선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 등이 주축이 된 ‘통합행동’도 당내 내홍을 잠재울 수 있는 중재안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 김기식·배재정·이인영 의원 등이 발족한 의견 그룹 ‘더좋은미래’도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계파의 카르텔을 무너뜨리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관망파 의원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들의 행보가 새정치연합 내 계파 갈등과 문-안 대결 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관망파 의원 대다수가 주류 측에 힘을 실어줄 경우 문 대표의 입지가 강화될 수 있다. 반면에 안 의원 쪽으로 쏠리게 된다면 새정치연합의 분열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안 의원의 입장에서도 이들의 행동이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 문 대표의 경우 당내 최대인 친노 계열의 수장이지만, 안의원은 사실상 자신의 계파가 거의 없다. 만약 당을 나간다 하더라도 자신과 뜻을 같이할 것으로 확신할 만한 의원이 많지 않다는 의미다. 새정치연합 중앙당 관계자의 말이다.

“현 시점에서 분명한 ‘안철수의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의원은 송호창 의원과 이언주 의원 정도다. 하지만 문 대표를 비롯한 친노 계열은 약 60명에 이른다. 안의원 입장에서는 탈당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내밀더라도 누가 자신을 따라올지 계산을 해봐야 한다. 그 때문에 현재까지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 중간지대의 의원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숙고해야 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