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빅뱅 불러일으킬 ‘스마트카 大戰’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12.17 18:15
  • 호수 1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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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3’ 삼성·현대차·LG가 펼칠 스마트카 전쟁, 재계 지도를 바꾼다

“스마트카는 세상에서 가장 큰 스마트폰이 될 것이다.” 최근 자동차업계와 IT(정보기술)업계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말이다. 그렇다면 궁금한 점 하나. 자동차업체가 스마트폰을 개발해야 하는 것일까. 스마트폰업체가 자동차를 개발해야 하는 것일까. 주도권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아직은 답이 나오지 않은 상황. 분명한 것은 완성차업체와 IT업체가 모두 이 스마트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제3의 IT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스마트카’가 그야말로 산업 생태계를 뒤바꾸고 있다. 현대 첨단 기술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는 스마트카산업에 기존 완성차업체는 물론이고 IT·화학·방위산업체도 뛰어들면서 업종 간 경계선이 희미해지고 있는 것이다. 애플과 구글, BMW와 벤츠 같은  글로벌 브랜드들이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과 협력을 펼치는 중이다. 구글과 BMW만 해도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전혀 경쟁 기업이라고 볼 수 없지만, 20년 후에는 두 기업이 스마트카 시장에서 정면 대결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처럼 스마트카는 첨단 산업과 굴뚝 산업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면서 그야말로 글로벌 기업 간 ‘빅뱅’을 일으키고 있다. 이미 올해 1월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의 핫이슈는 스마트카였다. 모터쇼가 아닌 전자제품 박람회인데도 말이다. 내년 1월6일 열리는 CES 기조연설 역시 폭스바겐의 헤르베르트 디아스 CEO(최고경영자)와 GM의 메리 바라 CEO 등 두 자동차업체 대표가 맡았다.

ⓒ 시사저널 포토

만년 2위 LG가 삼성 뛰어넘을 수도

이 전쟁에서 우리나라 기업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완성차업체인 현대자동차는 스마트카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LG그룹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스마트카 관련 기술을 그룹의 신성장 동력 사업으로 꼽고, 계열사별로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전문가들은 LG가 기존 내연기관으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아닌, 전기 배터리와 모터로 주행이 가능한 스마트카 개발이 자체적으로 가능할 정도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국내 1위 기업인 삼성전자도 최근 스마트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국내 기업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모양새다. 삼성그룹은 그동안 삼성SDI나 삼성SDS를 중심으로 일부 자동차 부품을 제조해왔지만, 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스마트카 사업을 위해 조직까지 재정비하고 나섰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향후 10년 동안 국내 기업들의 스마트카 사업 성패에 따라 대기업 지형도도 크게 바뀔 것이라고 말한다. 삼성이 이제껏 반도체와 휴대폰 등을 무기로 국내 경쟁 기업들을 압도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것처럼, 향후 스마트카 사업에 성공한 기업에 또다시 도약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스마트폰 개발에 뒤처져 몰락한 핀란드의 노키아나 미국의 모토로라 같은 기업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상황에 따라서는 만년 2위였던 LG가 삼성을 뛰어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 또한 과거에는 사업 영역이 이렇다 하게 겹치지 않았던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향후 스마트카 시장에서 정면으로 맞대결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SK텔레콤이나 KT와 같은 통신사들도 스마트카 전쟁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완성차업체와 IT기업들은 죽느냐 사느냐의 고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차나 벤츠 같은 완성차업체뿐만 아니라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IT기업들도 뛰어들겠다는 스마트카 산업은 과연 어떤 기술을 총망라하고 있는 것일까. 국내 기업들이 스마트카 사업과 관련해 어떤 부분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스마트카’에 대한 개념 정리가 우선돼야 한다. 사실 스마트카라는 단어는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단어다. 외국에서는 대략 네 가지 용어가 스마트카와 비슷한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오토너머스 드라이빙 비히클(autonomous driving vehicle)’ ‘셀프 드라이빙 카(self-driving car)’ ‘드라이버리스 비히클(driverless vehicle)’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 등이 그것이다. 개발 업체마다 용어를 달리 쓰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지만, 대략 ‘운전자 없이 주행이 가능한 자동차’ 정도의 개념이 담겨 있다. 또한 스마트카 사업을 하겠다고 하는 기업들의 궁극적 목표는 인간이 운전하지 않아도 주행이 가능한 자동차를 개발하는 것이다. 현재 IT기업들이 개발하고 있는 차량용 센서나 인포테인먼트, 차량용 OS는 모두 이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구글 자율주행 자동차 프로젝트에서 소프트웨어 담당 수석 엔지니어인 드미트리 도르코프가 9월29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언론을 대상으로 자율주행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 REUTERS

“향후 자동차, 스마트폰에 타이어 붙이는 것”

국내에서도 스마트카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전에는 ‘무인자동차’ ‘자율주행 자동차’ 등의 용어가 사용됐다. 스마트카란 단어는 한양대학교 미래자동차공학과 선우명호 교수가 처음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보편화됐다. 선우 교수는 정부 3개 부처 및 대학 연구소 등이 합작으로 만든 ‘스마트카사업추진단’ 단장이기도 하다. 그는 시사저널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처음에 사용되던 무인자동차는 자동차 안에 사람이 없다는 개념이 담겨 있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은 용어이고, 자율주행 자동차는 사용하기 불편한 감이 있어서 스마트카라는 단어가 적절하겠다 싶어 사용하게 됐다”며 “외국에서는 스마트라는 자동차 브랜드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우 교수는 “스마트카 사업이라는 것은 자율주행 자동차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자율주행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밀한 GPS(위성항법장치)와 레이더, 라이다(LIDARr: Light Detection And Ranging - 레이저를 이용해 거리를 측정하고 스캐닝을 통해 다수의 거리 정보를 통합해 지형 및 장애물과 같은 3차원 공간 정보를 획득하는 센서) 등 첨단 IT 기술들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모바일 디바이스와 차량을 연결해주는 이른바 인포테인먼트 기술도 갖춰야 한다. 여기에 스마트카에는 엔진과 같은 내연기관보다는 배터리로 구동되는 전기모터가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삼성증권 임은영 연구원은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이 빨라질수록 외부 클라우드 시스템이나 통신 시스템과의 연결 기능이 강화된 전기차가 더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IT업체들은 스마트카를 구성하는 이러한 부품들을 만듦으로써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려 하고 있다. 삼성과 LG 등이 노리는 시장이 바로 여기에 들어가는 IT 기술과 부품이다. 사실상 자동차의 껍데기 빼고 모든 것이 IT 기술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관련 업체들이 여기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향후 자동차 사업은 스마트폰에 타이어를 붙이는 일일 것이다”라는 도모조 마사나오 도요타 마케팅·세일즈부문 CEO의 말은 향후 자동차산업에 대한 업계의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미국 경영컨설팅업체 보스턴컨설팅그룹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35년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자동차 4대 중 1대는 자율주행 자동차, 즉 스마트카다. 스마트카 시장 규모는 향후 10년 내에 420억 달러(약 49조5852억원)로 비약적 성장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스마트카 개발에 나선 것은 현대자동차다. 현대차는 지난 2006년부터 국내 대학 연구팀과 손잡고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에 들어갔다. 따라서 자율주행 기술도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2월9일 공개한 신차 ‘제네시스 EQ900’에도 일부이지만 자율주행 기술이 탑재됐다. EQ900에 실린 ‘고속도로 주행 지원 시스템’의 경우, ‘차 간 거리제어 기능’과 ‘차선 유지 기능’, 내비게이션 정보가 복합적으로 융합된 기술로 전방 차량 정차 시 자동 정지 및 재출발, 제한속도 구간별 속도 조절 등의 기능을 지원한다. EQ900 출시 행사장에서 만난 현대차 관계자는 “모두 자율주행 자동차에 기본적으로 탑재되어야 하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에서 스마트카에 가장 관심이 많은 인사는 정의선 부회장이다. 그는 수시로 개발 현장에 찾아가 관련 기술을 묻고 지적하는 등 관련 기술 개발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IT업체 중에서는 단연 LG전자가 앞서 있다. LG전자는 2013년 7월에 이미 VC(자동차 부품)사업본부를 출범하고 사업을 진행 중이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LG화학)나 차량용 통신 서비스인 텔레매틱스(LG전자)는 이미 세계 1위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구동 모터도 개발하고 있다. LG는 구글의 자율주행차 프로젝트 협력사, GM의 차세대 전기차 전략적 파트너이기도 하다. 구본준 부회장(65)이 직접 사업을 챙기고 있다는 점도 그룹 차원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구 부회장은 최근 인사에서 신성장사업추진단을 맡았는데, 이 역시 스마트카 사업에 그룹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재계 관계자는 “LG전자(전기 모터 및 텔레매틱스), LG화학(배터리), LG디스플레이, LG하우시스(차량용 섀시) 등 이미 지금 가지고 있는 기술만으로도 자동차를 만들 기술을 확보했다”며 “스마트카 분야에서만큼은 우리가 삼성을 앞지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삼성전자는 지난 12월9일 조직 개편에서 자동차용 전자 장비를 개발·판매하는 전담 조직 ‘전장사업팀’을 신설했다. 삼성은 그동안 전기차용 배터리(삼성SDI)나 자동차용 반도체 등을 일부 생산해왔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스마트카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 전혀 새로운 일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삼성은 이미 몇 년 전부터 BMW와 협업을 해왔다. 올해 1월 CES에서 BMW 엘마르 프리켄슈타인 부사장이 손목에 차고 있던 삼성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대고 “BMW, 날 데리러 와!” 하고 말하자, 주차장 한쪽 구석에 서 있던 BMW가 그의 앞에 선 것은 두 회사 간 협업이 상당 부분 진척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삼성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IT 분야에서 가지고 있던 최고의 경쟁력을 이제는 전장사업에 쏟아 붓겠다는 각오다. 삼성전자는 전장사업부를 권오현 부회장이 담당하는 DS(반도체·부품)사업부에 편입시켰다.

사업 의지는 LG, 효율성은 삼성이 강세

그렇다면 국내 대표 ‘빅3 재벌’인 삼성·현대차·LG의 향후 대결 구도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까. 언론에서는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직접 경쟁을 하게 될 것이고, 기존 경쟁 업체였던 삼성과 LG는 향후 더욱 치열한 싸움을 벌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향후 최소 10년에서 15년 동안은 삼성과 현대차가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기도 하다. 삼성이 완성차 사업까지 뛰어들기는 어려울 것이란 점 때문이다. 실제 삼성은 완성차 사업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이미 완성차 사업에 한 번 뛰어들었다가 실패했기 때문에 이 사업의 어려움을 알고 있을 것”이라며 “완성차라는 것은 수만 개의 협력업체와 협업을 해야 하고, 차의 기술력은 IT와는 다르다는 것을 삼성이 더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스마트카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Fun to Drive’, 즉 운전하는 즐거움인데, 이를 실현시키는 것은 IT업체 기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완성차업체가 가지고 있는 강점을 따라올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현대차가 계열사를 통해 차량용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겠다고 발표한 만큼,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는 향후 두 기업이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15년 후 전기차를 포함한 스마트카가 대중화될 경우에는 두 회사가 직접 경쟁을 벌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이는 LG도 마찬가지다.

삼성과 LG가 정면으로 부딪치게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경쟁에서는 과연 후발 주자인 삼성이 LG를 따라잡을 수 있느냐에 초점이 모인다. 여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일부에서는 삼성이 축적해놓은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LG를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삼성과 LG의 제품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간 거래로 판매되기 때문에 이미 LG가 완성차업체에 구축해놓은 시장을 삼성이 잠식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스마트카 사업을 이끄는 사람이 삼성은 CEO이고, LG는 오너라는 점이 다르다”며 “스마트카 사업에 대한 의지는 LG가 더 강하다고 볼 수 있고, 효율성은 삼성이 나을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어느 쪽이 최종 승자가 될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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