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파리 테러가 ‘극우 쇼크’ 불러오다
  • 최정민│프랑스 통신원 (.)
  • 승인 2015.12.17 18:51
  • 호수 1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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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지방의회 선거 1차 투표에서 극우 ‘국민전선’ 1위

매번 선거 때마다 프랑스는 ‘극우 쇼크’를 겪는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프랑스 정계의 간담을 서늘케 한 것이다. 1984년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전선(FN)’의 장 마리 르펜 초대 당수가 유럽연합의회에 입성했을 당시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1면 타이틀을 ‘쇼크(le choc)’라고 썼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지난 12월7일,  좌파 일간지 ‘뤼마니테’와 우파 일간지 ‘르 파가로’까지 같은 제목을 1면 톱으로 올렸다. 다시 ‘쇼크(le choc)’인 것이다.

2015년 프랑스 지방의회 선거 1차 투표에서 국민전선(FN)은 28%의 지지율로 당당히 1위에 올라섰다. 야당인 우파 공화당(LR)은 27%로 2위를 기록했으며 집권당인 사회당(PS)은 23.5%로 그 뒤를 이었다. 지난해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1위에 오르며 기염을 토했던 ‘극우 열풍’을 올해도 이어간 것이다. 국민전선은 13개 지역구 중 절반에 이르는 6개의 지역구에서 1위를 기록했다.

프랑스 알프코트다쥐르 지역에서 40.6% 득표한 ‘국민전선’ 마리옹 마레샬 르펜(가운데)이 12월6일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 AP 연합

이번 돌풍이 심상치 않은 것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 대륙에서 최초로 극우 정당의 지방의회 접수가 ‘가시화’됐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선거는 지난 파리 테러 이후 처음 치러지는 선거라는 점에서 극우의 득세가 점쳐졌었다. 더군다나 올 한 해 유럽을 뜨겁게 달궜던 것은 ‘난민 문제’였고, 프랑스 여론이 양분될 만큼 골이 깊은 상황에서, 우경화의 기세가 예전과 다를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었다.  프랑스 무가(無價) 일간지 ‘20미뉴트’에 따르면, 테러 발생 일주일 후였던 11월20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43%의 프랑스인들이 ‘이번 테러가 지방선거 1차 투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유럽 최초로 극우 정당이 지방의회 접수

프랑스 남부 지방 일간지인 ‘라 프로방스’는  이번 선거 결과를 ‘비상사태’로 표현했다. 테러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던 프랑스의 상황에 빗대어 극우의 돌풍으로 지방의회가 ‘비상사태’를 맞았다는 것인데, 실제로  남(南)프로방스 알프코트다쥐르 지역  1차 투표에서 마리옹 마레샬 르펜이 얻은 득표율은 무려  40.6%다. 26.5%를 기록한 2위와의 차이는 14%포인트에 이른다. 더구나 마레샬 르펜이 누른 2위는 프랑스 우파 공화당의 중진이자, 니스의 시장이며, 우파 집권 당시 국토장관과 재경장관까지 역임한 바 있는 크리스티앙 에스트로지다.

현재 프랑스 언론은 ‘극우화’ 경향에 대한 분석으로 분주하다. 국민전선에 대한 지지 성향을 분석한 프랑스 공영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남성의 경우 31%가, 그리고 여성의 경우 23%가 국민전선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 보면 18세에서 24세에 이르는 젊은 층에서 35%라는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으며, 60세 이상 노령층에선 상대적으로 낮은 20%의 지지율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령층의 경우 과거 장 마리 르펜이 이끌던 극우를 경험한 세대다. 상대적으로 젊은 층에서 지지율이 높은 것은 국민전선의 세대교체가 성공적이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노동자 중 43%가 국민전선을 지지한다는 점이다. 이 수치는 경영진의 지지율인 17%의 2배 이상이다. 위협적인 것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전선에 투표한 지지자들 중 92%가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장 마리 르펜에게 표를 던졌던 유권자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뿌리 깊은 지지층이 견고하게 존재하는 셈이다.

1984년 유럽의회에 입성했던 장 마리 르펜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라고 일갈했었다. 그리고 그는 2002년 대선에서 결선 무대까지 올랐다. 1984년엔 100만명 선이던 지지자가 지금은 400만명에 육박한다. 이제 그의 후예들이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파카 지역에서 마리옹 마레샬 르펜의 돌풍이 인 데는 ‘젊은 피’ 수혈이라는 참신한 전략이 주효했다. 지난 4월 국민전선의 내홍 당시, 창업자인 외할아버지와 현 총재이자 이모인 마린 르펜 사이에서 사태 해결에 일조했던 마레샬 르펜은, 당시의 공로에 대한 보상으로 후보진 구성에 대한 ‘전권’, 이른바 ‘공천에 대한 전권’을 받아냈다. 국민전선의 창업주인 외할아버지의 낙하산 인사들을 모두 거부하며  자신만의 색깔로 후보진을 구성했다.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니다. 마레샬 르펜 캠프의 대변인은 4개월 전까지 우파 공화당에서 팀장을 지낸 프랑크 알라지오다. 당원에서 시작해 간부까지 오르며 지난 대선에서 사르코지를 도와 일했던 우파의 인재를 영입한 것이다.

프랑스 지방선거에서 2위를 기록한 공화당 당수인 사르코지 전 대통령. ⓒ EPA 연합

국민전선의 행정 능력에 대해선 “글쎄”

코트다쥐르의 국민전선 당원인 파트릭 빈켈만의 경우도 우파에서 극우 쪽으로 지지를 바꾼 경우다. 그는  ‘만약 장 마리 르펜이 계속 당수(黨首)여도 지지했겠느냐’는 질문에 “마린 르펜과 마레샬은 새로운 인물이어서 지지했다”고 밝혔다. 국민전선의 세대교체가 외연 확장으로 귀결되고 있음이 입증된 셈이다. 파카 지역의 경우 2010년 지방의회 선거에서 우파를 지지했던 유권자 4명 중 1명이 극우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지지층의 유출을 겪고 있는 우파의 사르코지 당수는 정치생명을 건 모습이다. 12월9일 공화당 후보 지지 연설에서 “극우에 표를 던지는 것이 반도덕은 아니다”고까지 말했다. 어떻게든 극우로 돌아선 우파 유권자와 극우 지지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사르코지 당수는 이미 1차 투표 다음 날인 12월7일 프랑스 공영방송인 프랑스2에 직접 출연해 “사회당과의 어떤 연대도, 연합도 없다”고 천명하며 “프랑스가 처한 상황의 유일한 대안은 ‘우파 공화당’뿐이다”고 강조했다. 극우 지지층을 끌어안기 위해 여당인 사회당에 대립각을 세우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이러한 전략에 대해 우파 중진들은 우려를 표명했다. 장 피에르 라파랑 전 총리는 “지금은 정치보다는 공화국을 생각할 때다”고 일갈하며, 당의 노선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당에서 소수인 나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프랑스인들이 의심하는 것은 국민전선의 행정 능력이다. 그리고 이민자 문제 등에서 어떤 변화를 초래할 것인지 우려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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