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올해의 인물] “과학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12.24 18:38
  • 호수 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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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질문을 실험으로 푸는 뇌과학자, 김대식 KAIST 교수

시사저널은 ‘2015년 과학 분야 올해의 인물’로 뇌과학자인 김대식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자및전기공학과 교수(48)를 선정했다. 그는 2014년 12월 <김대식의 빅퀘스천(big question)>이라는 책을 출간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학교 외부에서 많은 강연을 진행하면서 국내 과학자로는 드물게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였다. 뇌과학뿐만 아니라 철학, 문학, 역사 등을 동원해 인간 존재의 이유 등을 풀어내는 뇌과학자라는 평을 받고 있다.

뇌과학자가 철학 분야까지 아우르며 인간 본연의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배경에는 그의 남다른 청소년기가 자리하고 있다. 12세 때 부모를 따라 이민한 독일에서 초·중·고등학교에 다닌 그는 근본적인 질문에 관해 토론하는 독일 교육 방식에 익숙해졌다. 다름슈타트 공과대학에서 컴퓨터공학과 심리학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 인공지능에 대해 관심을 갖고 ‘탁구 하는 로봇’을 제작했지만, 어린아이도 하는 간단한 동작을 기계는 따라 하지 못했고, 반면 인간은 기계가 쉽게 푸는 계산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지 궁금했던 그는 뇌과학에 대한 관심을 키우며 뇌과학·뇌공학·인공지능 등을 연구했다.

ⓒ 동아시아제공

인공지능과 철학적인 대화가 꿈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동물의 뇌를 해부할 때의 일이다. 어떻게 1.5㎏짜리 고깃덩어리(뇌)가 ‘나’라는 사람을 만들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그는 지금 이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다. 뇌를 이해하는 것이 ‘나’를 찾는 길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가 평소 과학·철학·역사·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얘기를 꺼내는 이유다. 뇌의 작동 원리에는 뇌과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에게 뇌과학은 실험철학이다. 철학적인 질문을 실험으로 풀려고 한다는 점에서 기존 철학과 다르다. 김 교수는 뇌의 원리를 이해한 후 그것을 응용해 인공지능을 만들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공지능과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꿈이다.

노벨상 수상자를 32명이나 배출해 ‘노벨상 사관학교’로 불리는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뇌과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았다. 1990년대 중반 일본 이화학(RIKEN)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한 후 미국 미네소타 대학, 보스턴 대학 등의 교수 생활을 거쳐 2009년부터 KAIST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15 올해의 인물’ 중 과학 분야에는 김 교수 외에도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장관 등이 후보에 올랐다.

 

 

“‘설거지 연구’가 한국 과학의 현주소” 
김대식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자및전기공학과 교수

 

2015년 과학 분야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소감은.

선정돼서 영광스럽다. 그렇지만 올해 뚜렷한 과학적 업적을 남기지 못해, 과연 내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멀게만 느껴지는 과학을 대중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은 게 아닐까.

그럴 수는 있겠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것은 아니다. 기존에 있는 결과물을 대중에게 잘 전달한 정도라고 생각한다.

국내외 뇌과학 발전 방향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뇌의학 분야에서는 치매나 자폐증 등을 해결하기 위해 유전자학이나 분자생물학이 발달하고 있다. 그다음은 ‘인지 뇌과학’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우리는 어떤 판단과 행동을 하는데 그것은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다. 우리가 채 인식하지 못한 편견이 개입된다. 즉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라는 확신에는 오류가 있다. 인지 뇌과학에는 그런 메시지가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는 뇌공학이다. 뇌 원리를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기계에 적용하는 것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인공지능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 치부했지만, 지금은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이나 딥러닝(deep learning, 컴퓨터가 마치 사람처럼 생각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통해 현실로 다가왔다. 현재 인간이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이 10~20년 이내에 실현될 것이다. 이는 여러 문제를 낳을 텐데 특히 노동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재 직업의 47%가 사라질 것으로 본다.

국내 뇌과학의 현주소와 개선점은 무엇인가.

정부의 과학 예산이 유행에 쏠리는 감이 있다. 인공지능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각광받는 몇몇 분야에 예산이 집중된다. 우주 개발 분야 등이 그렇지 않은가. 이것저것 많이 하는데 어느 하나 세계적인 수준에 오른 분야가 없다. 아이들이 바이올린이다 태권도다 많이 배우지만 특출하게 잘하는 게 없는 것과 같다. 또 나를 포함한 과학자들이 ‘설거지 연구’를 한다. 이미 다른 데서 만든 요리의 접시를 닦는, 그런 연구가 한국 과학의 현실이다. 특정 분야에서 리더가 되려면 남들이 하지 않는 ‘요리 연구’를 해야 한다.

혹시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과학을 ‘일자리 창출’이나 ‘노벨상’용으로만 국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것이 의미 없다는 게 아니라, 과학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인류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가설과 종교가 나왔다. 이는 주관적인 것이다. 약 3000년 전 그 답을 객관적으로 찾아보려고 시도했는데 그것이 과학이다. 무언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는 것, 그것이 과학이다. 그런 의문을 품는 국민 모두가 과학자다. 즉 과학은 우리와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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