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팔 복심’ 강태용의 숨은 노림수
  • 정락인│객원기자 (.)
  • 승인 2015.12.24 18:53
  • 호수 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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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거 후 유리한 카드 쥐락펴락 3대 의혹 풀릴지는 여전히 미지수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로 불리는 ‘조희팔 사건’이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다. ‘조희팔의 복심’으로 불리는 2인자 강태용(54)이 한국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강씨는 지난 10월10일 중국 장쑤(江蘇)성의 주거지 인근에서 현지 공안에 검거됐다.

그는 조희팔이 밀항하기 두 달 전인 2008년 8월 중국으로 넘어간 후 최근까지 산둥(山東)성과 장쑤성 등지의 고급 아파트에서 숨어 지냈다. 강씨의 중국 도주는 사실상 ‘기획 밀항’이다. 조희팔의 밀항을 대비해 미리 중국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두목’의 밀항을 준비했다.

조희팔이 중국 밀항에 성공한 후 두 사람은 인터폴에 적색수배가 내려졌지만, 이를 비웃듯이 골프를 즐기는 등 호화롭게 지냈다. ‘금고지기’로 불리던 강씨의 밀항은 범죄 자금 은닉과도 연결된다. 그가 중국에서도 조희팔의 은닉 재산과 자금을 총괄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한국으로 송환된 조희팔 사기 조직의 2인자 강태용이 12월16일 대구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금고지기’의 다문 입 열릴까

강씨가 중국 공안에 검거된 후 국내로 송환되기까지는 67일이 걸렸다. 지난 12월15일 김해공항을 통해 입국한 강씨는 곧바로 관할인 대구지검으로 압송됐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만 사기와 횡령 등 무려 30여 가지에 달한다.

강태용이 과연 입을 열까. 수많은 사람이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특히 수만 명에 이르는 다단계 사기 피해자들은 강씨의 입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조희팔 사건’이 일어난 지 7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뭐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온갖 억측과 의혹만 난무해 피해자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전 재산을 잃고 빚더미에 앉은 피해자들에게는 하루하루가 피 말리는 세월이었던 것이다.

강씨가 국내로 송환되면서 최대 관심사는 이 사건의 ‘3대 의혹’이 풀릴 것인가이다. △조희팔의 생존 여부 △숨겨둔 재산 △정·관계 로비 의혹과 비호 세력의 실체 등이다. 강씨는 이 모든 의혹을 풀 수 있는 열쇠를 움켜쥐고 있다. 그가 갖고 있던 직함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조희팔이 운영하던 다단계업체의 ‘부회장 직함’을 갖고 재무와 전산 업무 등을 총괄했다. 자금과 전산을 손에 쥐고는 조희팔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 여기에 정·관계 등 대외 로비까지 맡으면서 조희팔의 ‘걸어 다니는 수첩’으로 불렸다. 이뿐만이 아니라 학맥과 인맥을 동원해 전 방위 로비를 펼친 장본인이다. 학교 선후배 사이인 김광준 전 서울고검 부장검사에게 뇌물을 건넨 것도 강씨였다.

그는 또 투자금을 개인 금고처럼 사용했다. 한 달에 3~4차례씩 투자금에서 현금과 수표를 인출했는데, 회당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에 달했다는 것이 강씨와 함께 일했던 직원들의 말이다. 검찰은 이 돈이 정·관계 로비 자금으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강씨가 조희팔 몰래 배달사고를 냈거나, 자신의 뒷주머니를 채운 일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경북 칠곡군 한 공원묘지에 있는 조희팔 묘지. ⓒ 연합뉴스

조희팔 생존 확인될까

‘조희팔의 생사 여부’는 강태용 수사의 핵심이다. 현재 조희팔은 공식적으로는 ‘사망’, 비공식적으로는 ‘생존’ 상태다. 경찰은 “2011년 12월 조희팔이 중국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고, 호적에도 사망자로 기재돼 있다. 경북 칠곡군 청구공원에는 조씨의 무덤이 있고, 가족들은 매년 조씨의 기일에 제사까지 지낸다.

물론 과학적으로는 조씨의 죽음을 입증할 단서가 아무것도 없다. 사망을 증명하는 서류도 허점투성이고 급조한 정황이 역력하다. 서류에 표기된 날짜 등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하지만 조씨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고는 그의 ‘사망’을 뒤집을 방법이 없다. 검찰이 조씨의 생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특별수사팀까지 꾸렸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진척은 없다. 이런 것을 보면 ‘죽은 조희팔’을 두고 언론과 검찰이 칼춤을 추고 있는 셈이다.

강태용이 검거돼 국내에 송환되기는 했으나 그가 쉽게 입을 열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 특히 조희팔의 생사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입을 다물 가능성이 크다. 어느 것이 자신에게 유리한지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 강씨는 조씨가 죽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했다. 국내 송환 후 조희팔의 생존 여부를 묻는 기자들에게 “2011년 겨울에 죽었고 직접 목격했다”고 사망 사실을 재확인했다. 강씨를 통해 조희팔의 생존 여부와 더 나아가 소재지까지 파악하려고 했던 검찰은 헛물만 켠 채 아무것도 건지지 못할 수 있다.

조희팔 사건의 핵심은 ‘조희팔’이지 강태용이 아니다. 조씨의 생존 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붙잡히지 않으면 강씨는 얼마든지 빠져나갈 구멍이 생긴다. 때문에 강씨도 조희팔의 생존보다는 ‘사망’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만하다.

강태용이 기자들에게 말한 조희팔 사망 시점이 경찰 발표와 일치하는 것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당시 경찰은 “2011년 12월 조희팔이 산둥성 가라오케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었다. 그런데 이 시점은 강신명 경찰청장이 “조씨의 사망 사실이 정확하지 않다”고 말했을 정도로 신빙성이 약하다. 강씨가 경찰의 사망 추정 시간에 말을 맞춰 ‘생존설’을 일축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강씨는 조씨의 사망 경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에 반해 피해자 단체는 조희팔의 생존을 확신하고 있다. 김상전 ‘바른 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바실련) 대표는 “중국 현지에서 조희팔을 본 증인을 확보했고, 칭다오에서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모처에 있다는 증거를 확보한 상태”라고 밝혔다. 조희팔의 생사 여부는 이처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숨겨둔 재산 어디에 있나

조희팔 사건의 피해 금액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지금까지 피해자의 숫자와 피해 금액이 얼마인지 정확하게 산출되지 않고 있다. 공식적인 잠정 피해액만 2조6000억원 정도에 이른다. 하지만 ‘4조원대’를 훌쩍 뛰어넘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피해자 모임 측에서는 피해 규모가 최대 6만명, 8조원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비해 지금까지 찾아낸 금액은 12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검경은 지난 10월 강태용이 중국에서 검거된 후 100여 억원의 은닉 재산을 추가로 찾아냈을 뿐이다.

나머지 3조원대 이상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는 흔적조차 없다. 검찰이 전 방위로 계좌추적 등을 통해 샅샅이 뒤지고 있지만 뭉칫돈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피해자 모임은 조희팔 조직이 최소 2조원대의 범죄 수익을 챙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돈이 공중으로 분해되지 않은 이상 어딘가에 반드시 숨겨져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은닉 재산을 찾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조희팔은 도주 직전까지 모든 수법을 동원해 최대한 돈을 긁어모았다. 처음에는 의료기기 대여업으로 고수익을 낸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은 후 백화점 운영, 폐기물 재활용, 부동산 사업 등으로 사업 분야를 늘렸다. 이 과정에서 강태용이 신규 투자처와 은닉처 발굴을 동시에 했을 가능성이 크다. 검찰이 강씨를 통해 얼마를 더 찾아낼지 아직은 미지수다.

지금까지 드러난 대형 다단계 판매 사기 사건에는 ‘정치인’들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조희팔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최대 다단계 사건’으로 불렸던 제이유(JU)그룹은 9만명을 대상으로 2조원이 넘는 돈을 가로챘다. 당시 제이유그룹의 로비 대상에는 정계·관계·언론계 등이 총망라됐다. 검찰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광범위하게 로비가 이뤄졌다. ‘로비 백화점’이라는 말까지 나왔고 밝혀진 액수만 72억원이 넘었다. 전·현직 고위공직자, 전·현직 국회의원, 경찰 간부, 연예인 등이 너도나도 돈을 쫓아 불나방처럼 몰려들었던 것이다.

조희팔도 전 방위에 걸쳐 로비를 펼쳤고 이는 강태용의 주도하에 이뤄졌다. 강씨는 학연과 지연이 있는 검찰과 경찰 관계자들에게 수시로 뇌물을 뿌렸다. 조희팔과 강태용의 로비는 인맥을 동원한 다단계식 접근이었다. 알음알음 연결해서 ‘거액’을 제시해 자기 사람으로 포섭하거나 비호 세력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때문에 정치인들에게도 뇌물이 적지 않게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점쳐져왔다.

하지만 조희팔 사건의 경우 ‘최대 다단계 사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뇌물을 받거나 구속된 사람의 숫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강씨의 뇌물을 받고 구속된 검경 관련자는 김광준 부장검사와 권혁우 총경을 포함해 7명이다. 전부 합쳐봐야 20여 명에 불과하다. 이것 또한 ‘빙산의 일각’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현직 사정 당국의 고위 관계자 이름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바른 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바실련) 김상전 대표가 11월1일 부산지사에서 간담회를 열고 제대로 된 수사를 촉구했다. ⓒ 연합뉴스

정·관계 로비 의혹과 비호 세력 실체는

검찰과 경찰 내부에는 강태용의 입 때문에 떨고 있는 인사가 적지 않을 것이다. 어떤 거물급 인사의 이름이 나올지 촉각이 곤두서 있다. 포승줄에 묶이고 수갑을 찬 강씨가 사정기관을 떨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조희팔 리스트’나 ‘로비 장부’는 정말 존재하는 걸까.

지하세계에는 ‘뇌물 보험’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뇌물을 줄 때의 철칙이 있다. 뇌물을 준 상대자와 금액, 날짜, 돈을 준 장소 등을 세밀하게 기록해놔야 나중에 써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뇌물을 주는 범죄자들은 자선사업가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뇌물의 힘을 이용하려는 특성이 있다. 때문에 돈을 준 장부는 반드시 어딘가에 남아 있다고 봐야 한다. 강태용의 경우 뇌물을 줄 대상과 액수를 정하고, 실제 돈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강태용은 뇌물 장부의 실체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초미의 관심사는 ‘정계 리스트’다. 만약 강태용을 통해 ‘조희팔 리스트’가 공개되면 곧바로 ‘게이트’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피바람을 몰고 올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검찰에 비해 강태용은 쓸 ‘카드’가 많다. 검찰은 다급해도 강태용은 여유만만이다. 그는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조희팔에게 떠넘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미 언론에 “조희팔은 죽었다”고 말한 것을 보면 조씨의 생존을 확인하는 것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다만 검찰은 수사에 성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강씨와 ‘플리바게닝’을 시도할 수 있다. 강씨가 조희팔의 은닉 자금 일부나 정·관계 로비 인사의 이름을 진술하는 조건으로 형량을 낮춰주는 것이다. 이럴 경우 강씨는 형량을 줄이고 검찰은 대외적으로 성과를 내 체면치레를 할 수 있다.

강태용 수사는 조희팔 사건 수사의 종착역에 비유된다. 조씨의 생존을 확인하거나 신병을 확보하지 않는 이상 이 사건의 ‘판도라 상자’를 열 만한 인물은 강씨 외에 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강씨의 입과 검찰 수사에 한 가닥 희망을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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