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 펩과 ‘흙수저’ 무리뉴의 전쟁은 계속된다
  • 서호정 |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5.12.2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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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수의 명문 축구단이 펩과 무리뉴를 먼저 찾는 이유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을 꼽으라고 하면 대부분 의심의 여지없이 알렉스 퍼거슨을 호명할 것이다. 퍼거슨 감독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앞세운 팀 장악력으로 27년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를 이끌며 총 36개의 공식 대회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축구에서 감독 한 명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 명장(名將)이었다.

2012~13시즌을 끝으로 퍼거슨 감독이 은퇴를 하자 ‘다음 시대의 퍼거슨’에 대한 토론이 일었다. 확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후보는 사실상 두 사람으로 좁혀져 있다. 스페인의 호셉(보통 애칭 ‘펩’으로 불린다) 과르디올라, 그리고 포르투갈의 주제 무리뉴다. 1971년생의 과르디올라와 1963년생의 무리뉴는 현재까지의 성과에서 퍼거슨 감독에 가장 근접해 있다. 또한 현재 세계 축구의 트렌드를 움직이는 전략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성공 방식은 매우 대조적이다. 최근 두 감독은 자유의 신분이 됐다. 무리뉴는 ‘디펜딩 챔피언’ 첼시의 정체 모를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과르디올라는 올 시즌을 끝으로 바이에른 뮌헨을 떠난다.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 축구팬들은 두 감독의 다음 행선지가 어디가 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10년 제정된 ‘FIFA 올해의 감독상’은 세계 최고의 감독이 누군지를 가리는 가장 공신력있는 트로피다. 제정 첫해인 2010년 수상자는 무리뉴였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당시 3위였다. 이듬해에는 과르디올라 감독이 수상했다. 2위는 무리뉴 감독이었다. 당시 3위가 퍼거슨 감독이었다. 2012년에는 스페인의 유로 2012 우승을 이끈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이 수상을 했지만 무리뉴가 2위, 과르디올라가 3위를 차지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과르디올라와 무리뉴 두 감독이 의심의 여지없는 톱 레벨의 지도자였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퍼거슨 이후 명장 후보로 거론되는 라이벌

호셉 과르디올라(Josep Guardiola) ⓒ EPA연합

만 40세에 세계 최고의 감독 자리에 오른 과르디올라의 커리어는 화려함 그 자체다. FC 바르셀로나(스페인)의 레전드 출신으로 만 37세이던 2008년 여름 친정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바르셀로나의 2군 격인 B팀을 잘 이끌었지만 아직 감독으로서는 설익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부임 이후 세 시즌 연속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이끌며 이런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는 바르셀로나에 머무르던 4년동안 리그 우승 3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코파 델 레이(협회컵) 우승 2회,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2회 등 총 14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특히 데뷔 시즌인 2008~09시즌에는 리그, 챔피언스리그, 협회컵을 모두 휩쓰는 트레블(treble)에 성공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09년 한 해에만 쓸어담은 트로피가 6개인데, 이는 축구사에서 유일한 일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더 이룰 것이 없어진 과르디올라 감독은 2011~12시즌을 끝으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1년간의 휴식 이후 2013~14시즌부터 현재까지 독일 분데스리가의 명가(名家) 바이에른 뮌헨을 이끄는 중이다.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그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첫 시즌에 분데스리가, DFB-포칼(협회컵), FIFA 클럽월드컵 우승에 성공했다. 지난 시즌에도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고 현재도 분데스리가에서 단독 1위를 달리는 중이다.

무리뉴는 조국 포르투갈에서 감독 커리어를 시작했다. FC 포르투를 이끌고 2002~03시즌에는 프리메이라리가(포르투갈 리그), UEFA컵(현 유로파리그), 포르투갈컵(협회컵)을 차지하며 눈길을 모았다. 다음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차지하며 트레블을 달성해 단숨에 유럽이 주목하는 감독으로 등극했다. 그에게 러브콜을 보낸 팀은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인수한 후 대대적인 투자를 거듭하던 첼시였다. 무리뉴를 만난 첼시는 맨유·아스널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양강 체제를 깨며 명가로 거듭났다. 2007~08시즌 중 사임하기 전까지 프리미어리그 우승 2회, FA컵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2회에 성공했다. 첼시에서의성공으로 세계적인 감독이 된 무리뉴는 이후 이탈리아의 인터 밀란,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를 맡았다. 인터 밀란에서는 2009~10시즌 자신의 숙원이었던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성공하며 트레블을 달성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2년 차이던 2011~12시즌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를 넘어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엘 클라시코’로 전쟁에 가까운 혈전 펼쳐

주제 무리뉴(Jose Mourinho) ⓒ EPA연합

스스로를 ‘스페셜 원(특별한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무리뉴의 자신감엔 근거가 있다. 유럽 4개국(포르투갈, 잉글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리그를 모두 정복한 최초의 감독이고 트레블을 두 차례나 달성한 유일한 감독이다. 무리뉴를 감독으로 쓰면 성과는 보장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처럼 검증된 감독이던 무리뉴는 올 시즌 쓴맛을 봤다. 2013~14시즌 첼시로 복귀해 2014~15시즌 프리미어리그와 리그컵 우승을 차지하며 또 한 번의 영광을 썼지만, 올 시즌 개막 후 극심한 부진을 거듭했다. 첼시가 강등권까지 추락하자 구단 수뇌부는 2015년 12월17일 무리뉴를 내쳤다. 상호 합의에 따른 사임으로 발표됐지만 사실상의 경질이었다. 시즌 초부터 시작된 여성 팀닥터 에바 카네이로와의 갈등, 강압적 리더십에 반발한 선수들의 태업설 등이 무리뉴 체제를 흔들었고, 결국 첼시에서 두 번째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뉴의 능력에 대한 평가는 변함이 없다. 그동안 부진을 겪고 있는 주요 클럽들이 그가 첼시에서 물러나자마자 하나같이 감독 후보에 이름을 올려놓은 것이 증거다.

과르디올라와 무리뉴 두 감독은 180도 다른 성장 환경과 감독으로서의 성향을 갖고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선수로 큰 성공을 거두며 스페인을 대표하는 역대 미드필더로 꼽히는 과르디올라와 달리, 무리뉴는 선수로서의 길은 걸었지만 일류로 성공할 가능성이 작다는 판단을 내리고 만 24세에 일찌감치 은퇴를 했다. 그는 체육교사를 하면서 스포츠과학·생리학·심리학을 공부하며 감독의 길을 걸었다. 과르디올라가 선수 은퇴 후 바르셀로나 B팀에서 일찌감치 감독으로 데뷔할 기회를 받은 것과 달리, 무리뉴는 철저하게 밑바닥에서 출발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이 바르셀로나에서 선수와 스태프로 만났던 사실이다. 1996년 무리뉴는 당시 바르셀로나의 감독이었던 바비 롭슨의 통역 겸 코치로 일했다. 당시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의 선수였다.

과르디올라가 명문 클럽의 적자(嫡子)로서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금수저’라면, 무리뉴는 통역관으로 시작해 역량을 발휘하며 분석 코치를 거쳐 감독까지 오른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다. 한때 선수와 스태프로서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두 감독은 정점에서 맞붙게 되자 자연스럽게 라이벌 의식이 폭발했다. 악연의 시작은 2009~10시즌이었다. 당시 인터 밀란의 감독이었던 무리뉴는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를 꺾고 결승에 올라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준결승전에서 무리뉴는 강력한 수비 축구를 앞세워 ‘티키타카’(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한다는 뜻)라는 고도의 패스 게임으로 세계 축구의 흐름을 바꿨던 과르디올라를 괴롭혔다. 이 와중에 과르디올라는 무리뉴의 축구를 결과만을 추구하는 ‘안티 풋볼’로 규정했고 둘 사이에 큰 설전이 벌어졌다. 경기 중에도 양팀 선수들은 끊임없이 충돌했고, 무리뉴는 도발적인 제스처로 바르셀로나의 분노를 샀다.

2010~11시즌 무리뉴가 레알 마드리드로 적을 옮기자 둘의 라이벌 의식은 극에 달했다. 하필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엘 클라시코’로 불리는 세계 축구 최고의 더비 매치를 펼치는 상대였다. 바르셀로나는 자신의 통역관 출신인 무리뉴의 신분 상승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럴수록 무리뉴는 더 독하게 덤벼들었다. 과르디올라는 무리뉴가 펼치는 화려한 언론 플레이에 분노해 인터뷰 도중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자연스레 두 감독 시대에 펼쳐진 ‘엘 클라시코’는 축구보다는 전쟁에 가까웠다. 초반에는 과르디올라의 티키타카가 레알 마드리드를 압도하며 연전연승하는 형국이었지만 호날두·벤제마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수비를 탄탄히 하는 무리뉴 특유의 축구가 살아나며 상황은 뒤집어졌다. 결국 무리뉴의 레알 마드리드가 리그 3연패를 달성했던 바르셀로나의 독주를 저지하며 우승을 차지한 2011~12시즌을 끝으로 과르디올라는 독일로 떠나게 된다.

두 사람의 축구 역시 대조적이다. 과르디올라는 자신의 스승인 요한 크루이프가 주창한 “축구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철학을 좇으며 높은 점유율과 전방 압박, 후방에서부터 시작되는 세밀한 빌드업, 패스로 완성되는 공격 축구를 추구한다. 반면 무리뉴는 수비 위주의 빈틈없는 축구를 펼친다. “재미와 승리 중 승리를 추구하겠다”라고 말하며 철저하게 성과주의를 극대화한 축구를 완성했다. 자신의 성과를 증명해야만 위로 올라가고 감독직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무리뉴와, 클럽의 총애를 받으며 이미 감독직을 보장받았던 과르디올라의 출신 성분차이가 빚은 흥미로운 결과물이다.

두 라이벌, 맨체스터에서 만나게 될까?

첼시와 결별하며 백수 신세인 무리뉴 감독이지만 러브콜은 잇따르고 있다. 특히 무리뉴 감독에게 관심이 많은 팀은 맨유다. 흥미로운 것은 퍼거슨 감독이 물러날 당시 가장 원했던 후계자가 무리뉴와 과르디올라 두 감독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당시 무리뉴는 첼시가, 과르디올라는 바이에른 뮌헨이 먼저 데려가며 그다음 후보였던 모예스를 선임했고 맨유는 부진의 늪에 빠졌다. 과거 퍼거슨 감독은 맨유의 홈인 올드트래포드에서 첼시와의 경기를 마치자 자신의 방으로 무리뉴를 초대했고 그의 축구 철학을 들은 뒤 흡족해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퍼거슨이 점찍었던 또 다른 후계자인 과르디올라는 앞으로 6개월 후 자유의 몸이 된다. 바이에른 뮌헨은 과르디올라 감독의 후임으로 이탈리아 출신의 명장 카를로 안첼로티를 일찌감치 선임해둔 상태다. 과르디올라의 맨유행은 가능성이 낮다. 대신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행 가능성이 급부상하고 있다. 지금 세계 최고의 전략가인 과르디올라와 가장 풍부한 자금력을 지닌 맨시티가 만난다면 챔피언스리그 우승 가능성은 한층 높아질 것이란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현재 유력한 전망대로 무리뉴가 맨유, 과르디올라가 맨시티로 간다면 과거 레알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펼쳤던 두 감독의 라이벌전은 제2막을 열게 된다. 과연 과거의 절친이자 현재의 원수인 두 감독은 맨체스터에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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