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경영’ 기리고자 불법 동원한 정몽규 회장의 엇나간 효심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6.01.07 16:55
  • 호수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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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 묘지 조성 과정에서 위장 전입·차명 농지 매입 의혹도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2015년 12월4일 검찰에 약식 기소됐다. 상수원보호구역에 선친(先親)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의 묘지를 불법으로 만들고, 주변에 기념비 등을 설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 회장은 2005년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산 58번지 일대에 정 명예회장의 분묘를 조성했다. 팔당호가 한눈에 보이는 명당 자리였다. 하지만 이곳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일반인들에겐 장지(葬地) 조성이 허락되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1975년 9월 이전부터 살아온 주민만 묘지를 조성할 수 있었다. 이를 어길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불법이 드러나면 이미 조성된 묘라도 이장해야 한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2015년 12월 경기도 양평의 상수원보호구역에 선친인 정세영 명예회장의 묘지를 불법 조성하고 기념비 등을 설치한 혐의로 검찰에 약식 기소됐다. ⓒ 연합뉴스

“정 명예회장이 추구했던 ‘정도경영’에 반해”

현대산업개발 법인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정 회장은 2005년 6월까지 서울 성북구 성북1동에 거주했다. 양수리에 선친의 묘를 조성할 자격 자체가 안 됐다. 양평군은 2005년 불법 묘지 조성 사실을 적발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현대산업개발은 벌금만 납부하고 묘를 이전하지 않았다. 오히려 묘지 주변에 추가로 조경수를 식재했다. 정 명예회장의 업적과 공로를 기리기 위해 설립된 ‘포니정재단’에서 그동안 묘지 관리를 맡았다. 정 명예회장 타계 10주기인 2015년 5월에는 대형 추모 조형물까지 설치했다. 조형물은 직육면체 화강암으로 제작됐다. 한쪽 면에는 정 명예회장의 상반신을, 반대쪽에는 ‘포니정’이라는 별칭에 맞게 포니자동차를 조각했다. 제막식 날이던 5월21일에는 정 명예회장의 부인인 박영자 여사와 정 회장뿐 아니라, 정상영 KCC 명예회장,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 등 범(汎)현대가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양평군청은 2015년 5월 정몽규 회장을 또다시 검찰에 고발했다. 사건을 배당받은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은 12월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과 상수원보호구역 행위제한 위반 혐의로 정 회장을 약식 기소했다. 현대산업개발 측은 “위법의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한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해당 관청으로부터 통보를 받은 후 위법의 소지가 있음을 인지했다”며 “현재는 군청으로부터 지적받은 사항을 대부분 원상복구 조치한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양평군의 설명은 달랐다. 양평군청의 한 관계자는 “자진해서 묘지를 이장하도록 그동안 여러 차례 독려했다. 회사에도 통지를 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 밝혔다. 정 회장이 최근 검찰에 약식 기소된 후 현대산업개발의 일부 직원이 뒤늦게 양평군청을 방문했다. 양평군청은 회사 입장을 서면으로 제출하도록 요청했다. 묘지 이장 등 후속 절차는 향후 회사 측 답변서를 보고 결정할 예정이다.

회사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은 생전에 정도경영을 강조했다. 추모 조형물에도 ‘돌아보건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길, 그 길이 곧았다면 앞으로도 나는 곧은 길을 걸을 것이요’라는 글귀가 담겨 있다”며 “불법적인 조형물은 고인이 생전에 추구했던 정도경영에 반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 명예회장의 양수리 묘지를 둘러싼 의혹은 현재 이뿐만이 아니다. 정 회장이 묘지 부지인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산 58번지와 447번지, 447-1번지, 447-2번지, 452번지, 488번지 등 2만5000여 ㎡의 건물과 과수원, 농지 등을 매입한 것은 2006년 1월10일이다. 정 명예회장이 별세하고 묘지를 조성했던 2005년 5월보다 8개월이나 지난 후였다. 이전까지 이 땅은 정 아무개씨 소유였다. 정씨는 정 명예회장이 별세한 지 3일 후인 5월24일 남양주시 와부읍에서 묘지가 위치한 양평군 양수리 산 58번지로 주소를 이전한다. 같은 날 정 회장은 양수리 산 58번지를 포함한 일대 부지에 대해 채권최고액 14억원의 근저당을 설정하게 된다.

정몽규 회장은 위장 전입해 경기도 양평의 농지를 불법 매입한 의혹도 받고 있다. 사진은 관련 등기부등본. ⓒ 시사저널 최준필

현대산업개발 측 “절차에 따라 부지 매입”

현대산업개발 측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명예회장의 급작스러운 타계로 해당 부지를 가계약했다. 이후 절차를 거쳐 매매를 완료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다른 의견을 제기한다. 한 풍수지리학자에 따르면, 묘지가 있는 곳은 이미 20년 전부터 정 명예회장이 눈여겨봤던 땅이라고 한다. 그는 “1999년 명예회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 전에 나를 찾아와 ‘한강이 보이는 명당을 찾아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며 “보트까지 내줘 한 달간 찾아다니다 좋은 부지를 추천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정 명예회장은 이 인사가 추천한 땅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또 다른 풍수지리학자가 추천한 현재의 묘지 부지를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이 인사의 증언으로 볼 때 땅주인 정씨는 차명이고, 2006년 1월 정 회장에게 명의이전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 명예회장의 묘지에서 8㎞ 떨어진 곳에는 정 회장의 별장이 위치해 있다. 정 회장은 1984년 이 별장 부지와 건물을 매입했다.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개별단독주택 공시지가는 2006년 5억7800만원에서 올해 9억4500만원으로 9년 만에 64% 정도 상승했다. 정 회장은 2005년 7월 서울 성북1동에서 별장이 위치한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999-1번지로 주소를 변경한다. 이후 문호리 별장에서 현재 서울 용산의 현대산업개발 사무실로 출퇴근하고 있다. 별장 건물은 2층짜리 통유리 구조 단독주택으로 고가의 조각품뿐 아니라 보트 선착장까지 별장 부지 내에 마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정 회장이 별장을 매입하면서 농지(약 2688㎡)까지 대거 매입했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일반인의 농지 매입이 엄격하게 제한됐다. 2000년대 중반 관련 규제가 완화되면서 위탁영농을 허락하고 있지만, 1980년대 분위기는 달랐다. 농지개혁법에 따라 현지 주민이고 농사 목적이 아니면 농지 매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심지어 농지 소재지에서 4㎞ 이내에 거주해야 하는 통작거리 제한도 시행되고 있었다.

어렵게 논과 밭을 매입해도 소유권 등록을 하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게 된다. 정 회장의 경우 1984년 12월13일 서종면 문호리 991-2번지와 1001-1번지, 1002-2번지, 1005-2번지 등 2688㎡의 논을 매입했다. 소유권 이전 등기일자는 그해 12월24일로, 주소는 별장이 있는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999-1번지로 등기부등본에 표시돼 있다. 하지만 정 회장은 1988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철학·경제학(PPE) 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부지를 매입한 1984년 12월은 정 회장이 고려대를 졸업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날 즈음으로 추정된다. 현대산업개발 법인 등기부등본에도 정 회장의 주소는 2005년 6월까지 서울 성북구 성북1동 145-76번지로 돼 있다. 따라서 위장전입을 통한 불법 농지 매입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 측은 “32년이 지난 시점이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매매나 등기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볼 때 적법한 절차에 의해 행해진 법률행위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지개혁법 제19조와 시행규칙 제51조에 따르면, 농지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우선 농업경영계획서를 지자체에 제출해야 한다. 읍·면장은 농사를 지을 여건이 되는지를 확인한 후에 농지취득자격증명서를 발급하게 된다. 이 증명서를 등기소에 제출해야 소유권 이전이 가능하다. 지자체가 농지취득자격증명서를 발급하면서 실제 농업을 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은 크게 어렵지 않다. 영농 자재 구입비나 직불금 수령 여부, 현지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실제 농업 경영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2015년 5월 범현대가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정세영 명예회장 10주기 추모 조영물 제막식이 열렸다.

영국 유학 앞둔 정 회장, 왜 굳이 주소 옮겼나

정몽규 회장의 경우 1984년 12월 해외 유학을 떠날 즈음에 주소를 옮기고 주변 농지를 매입했다. 2005년 7월 문호리 별장으로 주소를 옮기고 난 후에도 추가로 농지를 매입했다. 정 회장은 2006년 1월 양수리 447번지와 488번지 등 1886㎡의 논을 정 아무개씨로부터 매입했지만, 실제 경작 활동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일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부동산중개업자들에 따르면, 일반인들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농지취득자격증명서를 받아 농지를 매입할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지자체 관계자들조차 허술한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편법으로 농지 취득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정 회장 역시 이런 루트를 통해 농지를 매입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측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자체 농정과 관계자는 “농지취득자격증명서 발급 시 매매계약서가 첨부되지 않기 때문에 부적격자인지 여부만 심사하게 된다”며 “얼마든지 편법으로 농지를 취득할 수 있다. 오히려 불법적인 농지 매입 사실이 드러나도 지자체는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많지 않은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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