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거라고? 그래! 떠난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01.14 18:09
  • 호수 1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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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이는 취업이민 상담과 늘어나는 탈(脫)한국 행렬에 동참하는 청년들

“이제 내가 호주로 가는 건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야. 아직 행복해지는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호주에서라면 더욱 쉬울 거라는 직감이 들었어.” (장강명 소설 <한국이 싫어서> 中)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무척이나 밝았다. 한국을 떠난 지 이제 6개월째. 영어도 잘하지 못한다고 들었으니 아마 쉽지 않은 정착기였을 것 같은데, 그런 낌새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여기 시드니 날씨가 꽤 뒤죽박죽이에요. 어떤 날에는 40도가 넘도록 덥다가 다음 날에는 20도 정도밖에 안 될 때도 있거든요. 그렇다 보니 옷과 날씨가 매치가 안 될 때가 있어요. 만약에 엄청 더운 날에 긴팔 카디건을 입고 다니면, 한국이라면 다들 한 번씩 쳐다볼 것 아니에요. 그런데 여긴 그런 게 없어요.”

‘한국이 싫어서’ 해외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는 젊은이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하나둘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바다 건너로 빠져나가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호주 문화에 이제 점점 편해지고 있다고 했다. 느린 것도 달랐다. 한국인의 정서에서 봤을 때 호주의 모든 것은 너무 느리고 답답했다. 그런데 있다 보니 그 느림이 여유롭게 다가왔다. ‘나랑은 좀 안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런 생각을 먹은 것 자체가 여유로움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느낀 낯섦이었던 것 같았다.

“전 잘 풀린 케이스예요. 여기 호주는 매년 영주권을 받는 사람이 많아요. 모두들 하나같이 여기 호주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이 영주권을 받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말하곤 해요.” 정보름씨(31·가명)는 한국에서 패션 브랜드 매장의 매니저 일을 했다. “기술도 없고 대학도 안 나왔고 고등학교 나와서 서비스업에서 일했다”고 말했지만 “한국에서 받았던 대우도 크게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랬던 정씨는 2015년 6월 호주 시드니로 왔다. 먼저 건너와 있던 친구가 일해볼 의향이 없느냐고 제의했고 거기에 응했다.

워킹홀리데이로 건너와 맞은 시드니에서의 직장은 한국에서의 경험과 맞닿아 있었다. 관광객을 상대로 제품을 파는 소매업이었다. “돈을 많이 받는다고 할 순 없지만 오전 10시에서 오후 7시까지 근무를 해요. 그런데 주 5일 근무를 하고 3개월마다 5일의 연차가 생겨요. 1년에 10일의 병가도 있어요.” 손님을 상대로 무언가를 파는, 같은 서비스업이지만 한국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쉬기도 벅찼다.

‘457’. 이 숫자를 안다면 아마 당신은 호주와 인연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호주에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457비자’를 원한다. 이 비자는 취업비자다. 1년 일하고 1년 연장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와 달리 4년간 호주에서 체류할 수 있다. 다만 457비자를 받으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대표적인 조건 중 하나가 호주에서 일해 받는 연봉이 5만3900호주달러(약 4546만원)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만약 이 정도 급여를 준다면? 그 사람은 회사에서 필요한 인력일 것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회사는 이 사람을 고용하면서 발생하는 세금을 대신 내주며 스폰서가 된다. 스폰서가 있고 다른 여러 조건(언어 능력 등)이 맞아떨어지면 호주 정부는 이 457비자를 발급해준다. 이 비자의 가장 큰 장점은 영주권이다. 457비자를 받은 후 2년이 지나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 호주에 있는 한국인들 다수는 영주권에 대한 열망에 가득 차 있다. 거기에 머물러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당연해 보인다.

정씨는 회사로부터 최근 제의를 받았다. 회사는 비자 발급비용, 법무사 비용, 세금 등 모든 것을 회사가 부담해주겠으니 여기에 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주권을 따서 무조건 제2의 인생을 호주에서 살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더 있으려고 해요.”

“투자이민이 아니라 취업이민 상담이 많다”

적지 않은 한국인은 워킹홀리데이가 끝난 후에도 457비자를 받는 게 어렵다면,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정씨 주변에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게 참 신기하다. 내가 보기에 가기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곳 호주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여기에서 만족감을 느끼려면 어려운 점이 많다. 괜찮은 스폰서를 만나야 하지만, 세금을 대신 내주는 업주는 드물다. 그런데도 어떤 메리트 때문에 계속 머물려고 하는지, 이해 안 되는 부분들이 있다.”

보면 크게 두 부류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한국에서는 경쟁에 내몰리고 비교당하고 패배자 같은 생각을 갖고 살아야 하지만, 지금은 거기서 벗어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돌아가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다른 한쪽은 돌아가더라도 잘살 수 있지만 늙고 돈 없으면 힘들고 초라해질지도 모를 한국이라, 차라리 여기 호주에서 영주권을 얻고 세금을 많이 떼이더라도 안정적으로 복지를 누리며 살겠다는 사람이다. 뭐가 됐든 각박한 한국의 삶을 두려워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청년들의 탈(脫)한국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시장조사 전문 기업인 ‘마크로밀엠브레인’이 2015년 1월에 조사해 내놓은 자료를 보자. 전국의 만 19~59세 남녀 1000명을 상대로 조사했는데, 76.4%가 이민을 한 번쯤 고민해본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7~8명에 해당하는 숫자다. 이민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되새길 대목이다. ‘한국 사회의 지나친 경쟁 구조’(84.2%), ‘자녀에게 더 나은 교육환경 제공’(82%), ‘점점 심해지는 소득 불평등 구조’(78%), ‘한국 사회의 각박하고 여유 없는 삶’(76%), ‘국내의 열악한 노동환경’(75%) 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한민국에 다시 태어나고 싶은지를 묻는 항목에는 57.9%가 ‘요즘 같아서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특히 20대의 경우 62.8%로 전체 평균보다 높았다. 이민을 고려한 나라에 대해 응답자들은 캐나다(60.8%)를 첫손에 꼽았다. 그다음은 뉴질랜드(59.5%), 호주(58.1%), 미국(43.2%) 순이었다.

그렇다 보니 한국을 벗어나려는 사람은 분명 늘어나고 있다. 통계를 보자.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한국 국적 포기자는 1만9472명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1만4200명)보다 5200여 명 많았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 대신 다른 국적을 얻었을 터. 미국 국적을 얻은 사람이 가장 많았고,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선진국들의 국적 취득자가 많았다.

흥미로운 것은 국적 포기의 동기가 취업인 경우가 증가하는 추세라는 점이다. 국적 취득자가 가장 많았던 미국의 경우, ‘EB-3’를 받는 사람이 급증했다. EB-3는 ‘취업이민 3순위’를 뜻하는데, 신청자가 가장 많고 경쟁이 치열한 순위다. 10년 전인 2006년의 경우 4803명이 취득했는데, 2014년에는 5945명으로 급증했다.

취업이민 1순위는 논문 실적이 검증된 교수나 수상 경력이 있는 체육인·예술인 등 특출한 커리어를 가진 사람이어야 가능하다. 취업이민 2순위는 석사 학위 소지자, 혹은 학사+전공 분야 경력 5년 이상이면 신청이 가능하다. 취업이민 3순위는 해당 분야의 경력이 2년 이상인 숙련직과 학력이나 경력이 상관없는 비숙련직 등이 신청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가장 신청자가 많이 몰려 처리 기간도 길고 취업비자 발급 쿼터 수도 적다. 결국 EB-3에 몰린 수많은 사람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관두거나, 혹은 직장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려는 누군가다. “과거에는 투자이민을 상담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에는 취업이민 상담이 7 대 3 비율로 부쩍 늘어났다. 취업이 잘 안되는 청년층이나 자녀 취업 때문에 영주권을 얻으려는 부모가 늘어났다.” (미국 투자이민 전문 회사 관계자)

물론 나간다고 장밋빛 현실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캐나다 영주권을 취득한 성지한씨(가명·34)는 한국으로 돌아온 지 이제 3개월째를 맞는다. 그의 첫 정착 시도는 실패했다. 곰곰이 실패의 원인을 곱씹어보고 밑바닥을 다진 다음 캐나다로 다시 떠날 생각이다. “올해 상반기 중에 다시 갈 생각이에요.”

대학을 졸업하고 한 반도체 대기업에 입사해 7년간 일했다. “주말에도 자주 출근해야 했고 회식이나 야근은 말할 것도 없었죠. 그 7년 동안 안 좋은 모든 것들을 회사 내에서 다 겪고 나니 이걸 평생 해야 하나 싶더라고요. 일과 삶의 조화를 간절히 원했고, 그래서 차라리 해외로 나가자고 생각했어요.”

일단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로 결정하고 필요한 아이엘츠(IELTS) 점수를 받았다. 영주권도 기술이민 형태여서 서류 접수 후 1년도 지나지 않아 발급받을 수 있었다. 영주권이 나오는 날 뒤도 안 돌아보고 사표를 냈고,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단 1년 버티기를 계획했다. 그동안 영어 공부도 하고 분위기도 익히겠다는 게 목표였다. 그런데 불과 3개월 만에 계획들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일단 외로웠어요. 한국적인 게 싫어서 떠났는데 어느 순간 내가 한국적인 걸 그리워하는 것도 기분이 나빴어요. 그렇게 하기 싫어했던 직장 동료들과의 회식마저 그리웠으니까요.”

앞서 소개한 마크로밀엠브레인의 여론조사 중에는 ‘어차피 먹고살기 힘든데 굳이 다른 나라에서 고생할 필요가 있느냐’라는 질문이 있었다. 여기에 대해 20대층은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낮은 18.8%만이 수긍했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나라에서 사는 것이 좋은가’라는 질문에 가장 낮은 14%의 동의를 보낸 것도 20대였다. 어차피 다 똑같으니 해외로 나가지 말라는 설득은 더 이상 힘을 얻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국가’라는 근대성의 틀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게 드러난 이상 앞으로도 한국 땅을 벗어나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성씨의 실패담은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무엇이 그를 정착 실패로 이끌었느냐고.

성씨는 현실적으로 실패하지 않으려면 몇 가지 고민하고 매듭지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해외로 가면서 한국을 떠나는 이유는 한국 땅에 버리고 가라. 내가 떠나는 이유에만 집중하다 보니 캐나다에 온 뒤의 삶에 대해 고민하지 못했다. △직장 밖에 떨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마라. 안정된 조직에서 많은 걸 손에 쥐고 있다가 낯선 타지에 홀로 있는 현실을 깨닫게 됐을 때 느끼는 공포에 대해 예견하고 준비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서 이곳에 왔는지를 분명히 해라. 그래야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능동적으로 움직여라. 내가 영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나를 위해 모두가 천천히 말해주지는 않는다. 뭔가 곤란한 일이 생기면 상대방의 이해를 구하기보다는 내가 얼른 바꾸는 신속함이 필요하다. △자기만의 기술을 가지고 가라. 해외 어느 나라에서도 현지인들의 취업이 외국인보다 우선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이민자인 내가 기회를 잡기란 쉽지 않다. △낯선 곳을 즐기는 스타일인지 스스로 물어봐라. 힘든 일이나 싫은 일조차도 즐겁다고 느껴야 내가 해외에 계속 있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아침에 지하철 2호선 타고 아현역에서 역삼역까지 신도림 거쳐서 가본 적 있어? 인간성이고 존엄성이고 뭐고 간에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다 장식품 같은 거라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돼. (장강명 소설 <한국이 싫어서> 中)

소설 <한국이 싫어서>는 이 혼란스러운 한국을 등지고 지금 이 시간에도 공항을 나서 해외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는 청년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자신의 삶, 이것이 곧 한국에서의 삶이라고 소설 속 주인공은 믿고 있다.

이미 <한국이 싫어서>는 단지 소설의 제목이 아닌, 우리 사회를 대변하는 모습이 아닐까. 이 질문에 ‘아니요’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는 세상에 우리 모두가 내몰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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