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과의 싸움
  • 김인숙 | 소설가 (.)
  • 승인 2016.01.28 19:40
  • 호수 1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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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 PBS 뉴스에서 ‘Making A Murderer(살인자 만들기)’라는 다큐멘터리에 관한 보도가 있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로 인해 18년간의 옥살이를 하다가 무죄로 풀려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남자는 18년 만에 확인된 DNA 증거로 인해 무죄로 풀려나지만, 그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다시 살인 용의자가 되고, 이로 인해 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살인자 만들기’라는 제목에서 말해주듯이 이 작품은 어느 정도 작품 속 주인공이 무죄일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고, 대다수의 시청자 역시 주인공이 경찰이나 검찰에 의해 범인으로 조작되었다고 믿는 듯하다. 그 결과 40만이 넘는 사람이 현재 복역 중에 있는 이 주인공을 대통령 권한으로 사면해달라는 청원서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벌어진, 우리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일을 다룬 미국 다큐멘터리에 대해 새삼 깊게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요즘 다시 언론에서 그 이름을 보게 된 ‘좌익효수’ 때문이다.

이번 뉴스의 주인공은 ‘좌익효수’가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활동한 또 다른 국정원 직원들이다. 좌익효수는 그 끔찍한 닉네임으로 이미 고유명사가 되었고, 앞으로는 ‘또 다른’이라는 단어 표현조차 그러할 듯하다. 말하자면 여기에서 개인의 고유성은 중요하지 않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한 일이고, 그들에게 그런 일을 하게 한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구조와 기관을 말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그것을 존재하게 하는 이념 체계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좌익효수’와 ‘또 다른’ 국정원 직원들은 국가를 위해 일하는 대신 특정 인물을 위해 일했는데, 이것은 사실 그들 개인의 목표가 아니라 그들이 몸담고 있는 시스템의 목표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시스템의 이념과 목표는 국민이나 국가와는 상관없이, 오직 자기 시스템에 대한 봉사다. 시스템이 자기 시스템을 확장하고, 그 확장된 시스템에 다시 봉사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옳고 그름은 일반적인, 혹은 국민적인 상식과는 상관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들은 스스로 믿고, 스스로 지키고, 스스로 공격한다.

국정원을 정확히 풀어 말하면 국가정보원이고, 그 기관의 주요 업무는 ‘안보’ ‘산업 보안’ ‘국제 범죄’ 등등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국정원은 국정원을 위해 일한다.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이것이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했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앞으로 그들이 할 일들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만일 당신이 어떤 한 개인과 싸워야 할 일이 생긴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나 혹은 어떤 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스템과 싸워야 한다면, 당신이 이길 방법은 없다. 그 시스템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여러 하위 시스템과 상위 시스템 사이에 있다. 무슨 방법으로 당신이 이길 수 있겠는가.

그래서 질문이 중요한 요즘이다. 질문은 대답을 구한다. 그리고 그 대답은 반향(反響)이 된다. 상식이 상식대로 흘러가고, 정의가 정의롭게 구현되는, 이토록 거창한 사회는 사실 끝없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어, 반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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