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금2 출연할 용의 있다”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6.02.04 11:22
  • 호수 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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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사임당, 더 허스토리> 10년 만에 컴백한 ‘한류 스타’ 이영애 단독 인터뷰

1985년 겨울, 중학교 3학년 한 여학생이 친구들과 함께 잡지 <여학생> 표지 모델 공모에 참가했다. 순전히 재미 삼아 ‘저지른’ 일이었다. 추억은 덤으로 남았다. 그뿐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도 잊혀져갔다. 그런데 잡지사에서 전화가 왔다. 이듬해인 1986년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몇 달 지난 후였다. “표지 모델 하면 어떻겠느냐”고. 갑작스러운 제안에 여학생은 잠시 망설였다. ‘공부해야 하는데…’라는 고민도 스쳐갔다. 여학생이 머뭇거리자 잡지사 직원은 “잠깐 사진 촬영만 하면 된다”고 꼬드겼다. 여학생 귀에 ‘잠깐’이란 단어가 꽂혔다. 결국 쭈뼛쭈뼛 “그러면 한번 해보죠”라고 했다. 운명의 중대한 갈림길에서 선택은 찰나였다. ‘원조 한류(韓流) 스타’ 이영애(45)가 연예계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이영애는 그해 <여학생> 8월호 표지 모델로 실렸다.

ⓒ 사진작가 강혜원

‘무명(無名) 모델’은 1990년 초콜릿 광고 모델로 연예 활동에 첫발을 디뎠다. 그러다 텔레비전 시청자들로부터 “쟤는 누구지”라는 궁금증을 자아냈다. 바로 1991년 한 화장품 광고에서 ‘산소 같은 여자’로 출연한 것이다. 그녀의 미모는 금방 관심을 끌었고 유명세는 시나브로 쌓여갔다. 2년 후인 1993년엔 SBS 드라마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를 통해 연기자로 처음 입문했다. 올해로 따지면 24년 차 배우인 셈이다. 1995~96년 2년 동안 찍은 드라마만 무려 8편. 내친김에 1997년엔 영화 <인샬라>로 스크린에 데뷔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2000년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가 크게 성공하면서 브라운관이 아닌 스크린으로 활동 무대를 ‘잠시’ 옮겼다. 수많은 광고를 찍으면서 ‘CF 여제(女帝)’로도 등극했다.

2003년 출연한 MBC 드라마 <대장금>은 시청률 50%를 넘기며 ‘국민 드라마’ 반열에 올랐다. 당시 <대장금> 방영 시간엔 길거리에 개미 한 마리 안 보인다는 과장 섞인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대장금> 열풍은 대단했다. 중국·일본 등 아시아뿐 아니라 중동, 남미, 아프리카까지 퍼져나갔다. 서방의 경제 제재에서 최근 해제된 이란에서는 <대장금> 시청률이 90%에 육박했다.

이영애는 2005년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를 끝으로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홀연히 떠났다. 그러다 갑자기 2009년 8월24일 미국에서 사업가 정호영씨와 결혼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이영애의 비밀 결혼을 둘러싸고 억측이 난무했지만 그야말로 억측에 불과했다. 2011년 2월엔 이란성 남녀 쌍둥이를 출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배우 생활을 접은 지 10년 만에 돌아왔다. 지난해 11월30일 “10년 만에 아기 엄마가 돼서 인사드리게 됐다”며 SBS 드라마 <사임당, 더 허스토리(the Herstory)>(이하 <사임당>) 기자간담회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2005년 <친절한 금자씨> 이후 처음이다. <사임당>은 조선시대 신사임당 삶을 재해석한 작품. 극 중에서 이영애는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대학 강사와 신사임당 1인 2역을 맡아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연기를 펼친다. 지난해 8월 촬영에 들어갔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100% 사전 제작된다. 올해 가을쯤 방영될 예정이다.

시사저널은 지난 1월28일 이영애를 만났다. 드라마 촬영으로 스케줄이 꽉 짜인 그녀는 “감기몸살이 겹쳐 힘들다”면서도 인터뷰 내내 표정과 목소리는 밝고 가벼웠다.

 

이영애가 1993년 드라마 에서 연기자로 데뷔할 당시 모습. ⓒ 시사저널 우태윤

드라마 촬영으로 요즘 바쁘시죠?

드라마 촬영으로 하루 일과를 보내니 제 생활이 마치 신사임당의 생활이 된 것 같아요. 그래도 틈틈이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하는 것은 꼭 챙기고 있어요.

2005년 <친절한 금자씨> 이후 10년 만에 연기하는데 어렵지 않나요?

아무래도 제가 가정이 있으니까, 주부로서의 역할도 중요하잖아요. 그런 걸 병행하기가 힘들죠. 10년 만에 대중 앞에 나서는 것도 부담되긴 하지만, 그건 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드라마 촬영과) 가정을 병행해야 하니까, 그게 조금 힘듭니다.

드라마 촬영 현장에선 힘들지 않나요?

드라마가 100% 사전 제작되기 때문에 시간에 쫓기는 게 덜해요. 그래서 제가 적응하는 데도 충분하고요. 그렇게 힘들진 않습니다.

이 작품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조선시대의 아이 교육 방법을 아는 계기가 될 것 같았어요. 유교사상이 생활의 기준이었는데 그러한 환경 속에서 신사임당이 어떻게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예술인으로서 처신했는가가 궁금했어요.

드라마 촬영은 어느 정도 진행됐나요? 작품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시죠.

촬영은 중반을 넘어선 것 같아요. 작품의 주요 내용은 결국 가족 이야기입니다. 과거와 현재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랑과 가족의 따뜻한 이야기를 전개하는 거죠.

과거의 신사임당과 현재의 대학 강사 1인 2역을 맡았는데, 동양 미인이나 서양 미인 어느 쪽으로 더 평가받고 싶으세요?

그냥 동서양이 다 합쳐졌다고 할까요(웃음). 제 이목구비가 뚜렷해 서양적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거든요. 그런데 <대장금>도 그렇고 <사임당>도 그렇고 한복을 입고 출연할 기회가 많아 동양적이라는 얘기도 많이 들어요. 동서양 둘 다의 이미지로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과거에 비해 한류 열풍이 잠잠해졌다고도 합니다. 

한류 열풍이 시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양태가 변하는 것 같아요. 초기에는 <가을동화>와 <대장금> 같은 드라마가 한류를 알렸다면 지금은 K-팝이 주도하고 있잖아요. 좁은 소견입니다만 한류 범위는 드라마와 K-팝을 넘어 매우 넓다고 생각해요. 문화예술, 스포츠, 전통 의류와 음식 등 다양하다고 봅니다.

“엄마가 되니까 아무 광고나 못하겠네요”

<대장금> 이후 드라마나 영화가 한류를 크게 이끌어가고 있진 못하죠.

한류의 바람을 더 강하게 일으킬 수 있는 분야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좀 더 노력하면 세계인의 이목을 얼마든지 한국으로 돌릴 수 있을 거예요. 삼바 댄스로 유명한 브라질에서 우리나라 아이돌 가수 노래와 춤을 젊은이들이 신나게 따라 부르고 몸을 흔드는 걸 보세요. 잠시 드라마와 영화가 주춤할 뿐입니다.

2003년 12월3일 MBC 드라마 촬영 현장 ⓒ 시사저널 임준선

한류에 대한 기대보다는 부담이 더 되죠. <대장금>을 시작할 때 작품이 너무 좋아서 많이 배우겠다는 심정이었어요. <사임당>도 마찬가지예요. 한류에 대한 기대 이전에 제가 10년 만에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작품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봐요. 그게 한류로 연결되면 더 좋겠죠.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 가운데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은 역시 <대장금>인가요?

그렇죠. 가장 애착이 가고 고마운 드라마는 저를 세계적인 한국 배우로 알려준 <대장금>입니다. 그러나 기억나는 드라마는 (1996년 방영된) <동기간>이에요. 고생을 많이 했는데 시청률이 안 나온다고 해서 조기 종영됐어요.

<대장금 시즌2> 제작이 논의되다 무산됐죠.

저도 안타까워요. 요즘은 ‘응답하라’처럼 시즌제가 많이 나오잖아요. <대장금>도 원, 투, 쓰리 시즌제로 갈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콘텐츠가 있는 작품이라 보고 (출연을) 긍정적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작의 완성도가 조금 결여돼 있었고 저도 (출연을) 결심할 만한 시간이 부족했어요. 조금 안타깝긴 한데, 그게 완전한 엔딩(ending)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대장금>에 좀 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면 저는 마음을 열어놨어요. 얼마든지 (출연) 할 수 있을 거예요.

“일과 가정 병행하기 조금 힘드네요”

최근 큰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보셨나요?

계속 보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나면 봤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한창 민감한 청소년 때의 이야기라서 옛날 일들이 생각나더라고요. 그래도 그 시절이 조금 힘들고 험했지만 가족들 간에는 더 따뜻한 정감을 나눈 것 같아 잠시 향수에 젖었던 것 같아요. 특히 간간이 들려주는 추억의 노래들이 좋았어요. 남편은 <걱정말아요, 그대>라는 노래를 잘 따라 부르면서 요즘 들국화의 전인권씨 콘서트를 가보자고 해요.

<응답하라 1988>에 ‘이영애 립스틱’이 나오는데 보셨나요?

네. 나중에 모바일로 봤어요. ‘1988’과 제 립스틱은 약간 시간적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감독님과 작가님이 ‘산소 같은 여자’ 화장품 광고 등에 제 입술이 빨간색으로 강조됐었기 때문에 ‘이영애 립스틱’을 등장시킨 것 같아요. 하여간 예쁜 대상으로 비교돼서 기분은 좋네요.

광고도 많이 찍으셨죠, 몇 편이나 되나요?

정확히 몇 편인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그러나 제가 모델을 하면서 일류 브랜드로 성장한 제품과 회사는 기억합니다. 론칭 초기 때부터 5년 이상 모델을 했거나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정치요? 관심 없어요”

요즘 중소기업 제품 광고 모델도 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중소기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남편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중소기업이 대기업 광고 예산보다 적잖아요.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중소기업이 저에게 모델을 제안한 적이 거의 없었어요. 2009년 결혼을 하고 나서 한 중소기업에서 모델 제안이 왔어요. 처음엔 생소해서 거절했는데 하루는 남편이 이러더라고요.

‘한류 스타들은 거의 대기업 광고 모델에 관심을 보인다. 그런데 유명한 한류 스타가 그 인지도를 중소기업의 좋은 제품과 접목해 브랜드화에 성공하면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 또 세계 속에 한국의 일류 상품이 새롭게 탄생하는 기회가 될 것 아니냐’고 강력히 추천하더라고요. 그래서 출연하게 됐죠.

어떤 제품들인가요?

처음엔 주방가전업체였어요. 그 회사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고 사장님을 만나 보니 신뢰가 가기에 중소기업 제품 모델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다행히 그 회사 매출이 3000억원 규모로 잘 성장해 기분 좋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양면 프라이팬으로 잘 알려진 회사에서도 모델 요청이 왔어요. 그 회사에선 제가 까다로운 모델이라는 소문을 들었다며 제품의 소재와 제조공정을 설명해줬고 주방기구를 보내와 1년 가까이 직접 사용해보니 좋더라고요. 그 회사 사장님이 어려서부터 남대문시장에서 고생하며 회사를 일궈낸 이야기도 가슴을 짠하게 했어요. 고생하며 기업을 일군 사람이면 무조건 오케이(OK)입니다(웃음).

대기업 광고 모델 제안도 들어오긴 하죠?

네. 계속 들어오긴 해요.

그런데 몇몇 제품 광고엔 출연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아이 엄마가 된 후부터는 선뜻 아무 제품이나 광고 모델로 응하게 되지 않더라고요. 특히 합성화학 성분이 함유된 식품과 일반 주류의 모델 제안은 가능한 한 피하고 있어요. 카지노 게임과 일부 금융 관련 모델은 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죄송스럽지만 거절하고 있고요.

“대통령과 ‘이란’에 못 갈 가능성 크다”

중국·베트남 등 아시아 여러 국가에 학교를 지어줬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장금>을 사랑해주시는 나라들이잖아요. 감사의 뜻도 있습니다. 어린아이 교육 지원 사업에 관심 있는 것은 아이 엄마가 되고 나서 더욱 아이들의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에요. 올바른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건전한 생활이 무엇인지 깨우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능한 한 기회가 생긴다면 열심히 지원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다문화 가정의 아동 의료비 지원과 군·경 자녀의 장학금 기부 등 선행 활동을 많이 하시는데.

요즈음은 다문화 가정과 북한에서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남으로 오셔서 새로운 삶의 터를 꾸리신 가정의 자녀들 교육 지원 사업에도 신경을 쓰고 있어요. 모두 행복과 자유를 그리며 오신 분들이니 행복과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어서요.

전쟁 등 험난한 환경 속에서 거친 삶을 사는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평화롭게 뛰어노는 제 아이들을 바라보게 되더군요. 우리 쌍둥이의 행복한 삶은 우리나라가 전쟁과 재난으로부터 안전해야 보장되는 것인데…. 나라를 지켜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와 존경을 표해야 국민의 도리인 것 같아서요. 이분들에 대한 후원 활동은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아내, 엄마로 행복한 가정 꾸려나갈 것”

선거철이 다가와서인지 정치에 참여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기도 했습니다.

(웃음) 그 얘기 듣긴 했는데 그냥 ‘찌라시’라 생각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특정 정당에서 영입 제안을 받은 적도 없나요?

그런 건 없습니다.

예전에도 없었나요?

없었습니다(웃음).

최근 핵협상이 타결되면서 서방의 경제 제재가 해제된 이란에서 <대장금> 시청률이 90%에 육박했다고 합니다.

예전에 방영된 건데 아직도 좋아해주셔서 경이롭죠. 드라마를 통해서 우리나라 이미지까지 좋아졌다고 하니까 배우로서 뿌듯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란 방문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혹시 청와대에서 이란에 같이 갈 의향이 있는지 연락 온 게 있나요?

그런 건(제안은) 없었어요. 재작년인가요, 애기 아빠가 ‘주한 이란대사관에서 우리나라 설날과 같은 대축제 행사를 하는데 간곡히 초청을 하더라. 이란 팬들에게 인사드리는 게 어떠냐’고 해서 그 행사에 참석한 적은 있어요. 큰 환영을 받아 고맙고 뜻깊었죠. 예전에 이란 현지에서도 행사 등에 초대했는데, 아기를 돌보느라 찾아뵙지 못했어요. 그래서 너무 미안했죠. 앞으로 우리나라와 이란이 활발한 문화 교류를 했으면 좋겠네요.

만일 대통령 방문 때 동행하자는 제안이 오면 갈 의향은 있나요?

아이고, 지금 할 일도 많고…(웃음). 지금 중요한 건 드라마니까요. 드라마도 그렇고 엄마 역할도 그렇고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못 갈 가능성이 크겠죠.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앞으로의 계획이라면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서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을 잘 꾸려나갈 수 있도록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겁니다. 그것이 제가 특별히 관심을 갖는 분야이고요. 그리고 배우로서도 저의 재능이 소외된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도록 소임을 다할 계획입니다.

끝으로 시사저널 독자께 새해 인사 부탁드립니다.

심란하고 어지러운 세상이지만 언제나 희망은 있는 것 같아요. 어렵지만 힘내시고 새해에는 걱정과 근심이 다 날아가길 바랄게요. 늘 행복하시고 즐거운 웃음이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파이팅!

2013년 2월13일 이영애가 한국 홍보 전문가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기획한 미국 뉴욕타임스 비빔밥 전면광고의 모델로 섰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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