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 눈물로 국책은행 배 불린다?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02.17 15:24
  • 호수 1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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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증권 매각에 숨겨진 진실…금융권 최초 LBO 방식 인수에 논란 증폭
대우증권 노동조합과 대우증권 소액주주 모임이 2월5일 대우증권 본사 지하강당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KDB대우증권(이하 대우증권)이 미래에셋 증권(이하 미래에셋)의 품에 안기게 됐다. 미래에셋은 1월25일 한국산업은행과 본계약을 체결하고 대우증권의 지분 43%(보통주 1억4048만주)를 2조3853억원에 매수하기로 했다. 대우증권은 2000년 산업은행에 넘어간 이후 16년 만에 새 주인을 맞는다. 오는 4월 인수 절차가 마무리되면 대우증권과 미래에셋은 국내 1위의 메가 증권사로 재탄생하게 된다.

당초 미래에셋은 대우증권 인수전에서 상대적 약체로 평가받았다. 탄탄한 자금력을 앞세운 KB금융과 대형 증권사 인수·합병(M&A) 노하우를 지닌 한국투자증권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봤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미래에셋은 경쟁자들보다 더 과감한 베팅에 나섰다. 지난해 8월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을 포기한 후 대우증권 인수에 매진한 것이다. 9561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해 ‘실탄’도 마련했다. 결국 2조원 초반대를 써낸 경쟁자들보다 2000억원이상 더 높은 인수 가격을 써내 최종 승자가 됐다. 증권가에서는 미래에셋이 시가총액이나 자기자본 면에서 몸집이 더 큰 대우증권을 인수하자 ‘새우가 고래를 삼킨 꼴’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봉이 김선달’ 뺨치는 LBO의 함정

대우증권 매각은 증권업계에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 증권업계에서는 3조~4조원 규모의 증권사들이 경쟁을 하고 있다. 자기자본 4조4000억원 규모의 대우증권과 3조5000억원 규모의 미래에셋이 합병하게 되면 자기자본 6조원 이상의 메가 증권사가 탄생한다. 자기자본 4조7800억원으로 몸집이 가장 컸던 NH투자증권을 순식간에 제치고 독보적인 국내 1등 증권사로 발돋움하는 셈이다. 결국 경쟁사들도 매물로 나온 현대증권 인수 등에 나서면서 몸집을 키우려 할 개연성이 크다.

그런데 미래에셋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업계 1위를 코앞에 둔 ‘잔칫집’이라고 하기에는 잡음이 심하다. 2월5일 열린 대우증권의 주주총회 모습이 이를 대변한다. 이날 주주총회에서 대우증권의 소액주주들은 매각 방침에 반발하면서 홍성국 대우증권 사장에 대한 해임안을 제출하려고 했다. 대주주였던 산업은행을 향해 미래에셋과의 계약을 파기해달라고 하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들은 국책은행의 배를 불리기 위해 소액주주들의 손해를 외면했다고 강조했다. 완전고용 보장을 약속받은 대우증권 노동조합도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1월4일부터 6일까지 진행된 내부 투표에서 98%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파업 결의까지 해놓은 상태다. 이들이 이처럼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우증권 인수 논란의 핵심은 미래에셋의 인수자금 마련 방식이다. 미래에셋은 대우증권을 인수하기 위해 지난해 유상증자를 통해 9600억원을 쌓아뒀고 자기자산 처분 등을 통해 6400억원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를 합쳐도 인수금액(2조3853억원)에서 8000억원가량 부족한 상황이다. 미래에셋은 이 돈을 대우증권 주식을 담보로 한 LBO(Leveraged Buy-out·차입 매수) 방식으로 신한은행으로부터 충당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미래에셋 측은 "현재 현금성 자산 2조3000억원 등 인수 자금을 독자적으로 마련할 수 있으나 입찰 시 자금조달 계획의 신뢰성 향상을 위해 8000억원의 인수자금 약정을 체결한 것"이라며 "인수금융 8000억원을 전부 차입할지 여부는 재무적 경영전략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권 최초의 LBO 인수를 놓고 대우증권 안팎은 물론 금융계 전반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LBO는 법적 개념이 아니라 경영학 용어다. 기업 인수를 위한 자금을 인수 대상 기업이 가진 부동산이나 주식, 현금을 담보로 제공해 마련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적은 돈으로 큰 기업을 사들일 수 있게 된다. 다만 LBO에 대해서는 새로운 금융 기법이라는 긍정 평가와 신종 사기라는 부정 평가가 공존한다. LBO는 실적을 내지 못하는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수월하게 한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반면 단기 차익만을 노린 사모펀드들이 멀쩡한 기업을 사들여 공중분해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제조업체를 인수한 후 부동산이나 공장 등을 팔아먹고 청산하는 사례가 나타난 것이다.

미래에셋은 정확히 말하자면 담보형 LBO가 아닌 합병형 LBO 방식을 선택했다. 대우증권의 자산을 담보로 제공하지 않고 앞으로 보유하게 될 대우증권의 주식을 담보로 인수 자금을 마련한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미래에셋이 자기 소유 자산을 갖고 빌리는 셈이다. 하지만 대우증권 노조 측은 두 회사가 합병한 이후 합병 회사에서 빚을 갚아야 한다는 점에서 대우증권의 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금융기관의 경우 고객의 돈으로 운영되는 특수성을 고려해 LBO 방식의 매각을 원천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권에서 LBO 방식의 기업 매각이 추진 된 사례는 단 한 차례 있었지만 그마저도 실패했다. 2005년 리딩투자증권이 브릿지증권의 지분 86.9%를 1310억원에 인수하려고 시도한 사례다. 리딩투자증권은 계약금 20억원만 먼저 지불한 후 187억원은 인수권을 담보로 은행에서 빌리고, 나머지 1103억원은 브릿지증권을 사들인 후 이 증권사가 보유한 자산을 팔아 갚기로 했다. 리딩투자증권의 이 같은 계획은 결국 금융당국의 합병예비인가 불허로 무산됐다.

LBO 방식의 인수·합병에 늘 따라붙는 배임죄 이슈도 등장할 조짐이다. 소액주주를 중심으로 배임죄 혐의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LBO에 따른 배임죄 논란은 지난 2001년 S&K월드가 법원에서 회생절차를 밟고 있던 중견 건설업체인 신한을 인수한 사건에서 촉발됐다. 당시 김춘환 S&K월드 회장은 LBO 방식으로 인수에 나섰다가 2008년 대법원으로부터 배임이 인정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0억원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반면 2006년 동양메이저산업의 한일합섬 인수 사례를 보면 한일합섬 주식과 회사채를 담보로 인수대금을 마련하는 합병형 LBO의 경우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사법부는 합병형 LBO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소액주주권리찾기모임 측은 “담보형 LBO인지 합병형 LBO인지 여부를 떠나 피인수 회사의 실질적 자산이 유출돼 다른 주주들이 피해를 입었는지가 핵심”이라며 “법적 대응을 통해 적극적으로 따져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리사주조합은 소액주주들과 함께 삼성물산 분쟁 당시 엘리엇 측의 법률대리인이었던 넥서스를 통해 매각 무효를 주장하는 가처분 소송장을 제출할 계획이다.

비난의 화살은 産銀에 집중

대우증권 소액주주 모임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LBO 방식의 인수·합병은 산업은행과 미래에셋만 이익을 보고 소액주주는 손해를 보는 불공정 거래”라고 주장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대우증권 본사. © 시사저널 임준선

우리사주조합을 중심으로 한 소액주주들은 대주주였던 산업은행을 원망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챙긴 경영권 프리미엄이 지나치게 많다는 입장이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결국 소액주주의 손실로 이어지는데도 국책은행이 자기 잇속 챙기기에 급급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미래에셋이 대우증권을 인수하기 위해 지불하는 돈은 2조3853억원이다. 이 가운데 미래에셋이 인수하게 될 대우증권 지분 43%(보통주 1억4048만주)의 가격은 입찰 마감일(2015년 12월21일) 종가를 기준으로 1조5443억원, 본계약 체결일인 2월5일 종가를 기준으로 하면 1조1196억원까지 떨어진다. 산업은행의 2014년 말 기준 장부가는 1조7758억원이다. 6000억~1조2000억원가량을 경영권 프리미엄으로 지불하는 셈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오너 체제인 미래에셋이 지나치게 높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책정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자용 대우증권 노조위원장은 “미래에셋이 대우증권을 인수한 후 합병하게 되면 산업은행에 지불한 경영권 프리미엄은 합병 법인의 지분율만큼 기타주주가 부담하게 되지만 그 이득은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독점하게 된다”며 “산업은행은 미래에셋이 차입한 인수자금을 대우증권에서 대신 갚도록 하는 방식(LBO)을 수용해 소액주주 등 기타주주의 손실만큼 매각대금을 부풀려 받고자 함으로써 국책은행으로서의 책임을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우리사주조합의 의뢰로 대우증권 주주 가치를 평가한 정동회계법인의 보고서에 따르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1조원가량 지불했을 경우 대주주를 제외한 기타주주의 가치는 약 5000억원가량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에셋 측은 "미래에셋과 대우증권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 미래에셋의 우량자산에 따른 경제적 이득도 공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합병비율의 결정, 주주총회 특별결의,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등을 통해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에 대한 보호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래에셋과 산업은행의 계약대로 인수가 진행될 경우 산업은행은 1주당 1만7000원에 주식을 판 셈이다. 반면 소액주주들이 가진 대우증권 주식 가치는 최근 1주당 8000원 이하로 떨어졌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당시 주가 1만1000원보다 3000원(27%) 이상 손해를 본 셈이다. 영국이나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경우 소액주주의 손해를 방지하기 위해 의무공개매수제도·주식매수청구권 등을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도입했지만 기업 부담 등을 이유로 지난 1998년 폐지했다.

미래에셋과 대우증권 인수·합병의 최종 관문은 금융위원회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다. 대우증권 노조와 소액주주들은 금융위에 엄격한 심사를 요구하고 있다. 이자용 노조위원장은 “미래에셋 지배구조상 합병 후 미래에셋캐피탈이 미래에셋대우증권(가칭)의 대주주가 되는데 직원 5명의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하다”며 “박현주 회장 및 특수관계인이 78%의 지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미래에셋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는 것은 금융위 역시 미래에셋의 인수 방향성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졌다는 의미”라며 “중요한 걸림돌이 될 문제였다면 이미 심사 과정에서 쟁점이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래에셋 측은 "미래에셋캐피탈은 작년 3분기말 기준 자산 54조원, 자본3조원의 대형여신전문금융회사"라며 "여신전문금융업법을 둘러싼 논란도 자본 확충 등을 통해 해결해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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