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규슈에서 만난 ‘한국’
  • 일본 가고시마현=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2.18 15:55
  • 호수 1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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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초 국립공원에서 가장 높은 산 ‘가라쿠니다케(韓國岳·한국악)’

지난 1월22일 찾은 일본 규슈(九州) 남부의 가고시마(鹿兒島)현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며칠 전 이례적인 폭설이 내려 성인의 종아리 높이까지 눈이 쌓인 탓에 거리에는 차도 사람도 많지 않았다. 이 일대는 일본 활화산 지대 중 하나다. 기리시마(霧島)시에서는 어디를 둘러봐도 적갈색 화산암과 화산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곳곳에서 수증기와 함께 구릿한 유황 냄새가 피어오른다.

화산 폭발 당시 터져 나온 용암과 분석(화산이 분출할 때 나오는 굳은 용암 조각이나 암석 파편 등)들이 화산 지형인 칼데라와 화산성 고원을 만들어냈다. 화산섬으로 알려진 사쿠라지마(櫻島) 중턱에서도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쿠라지마는 약 77㎢ 면적의 화산섬으로 기타(北)다케·나카(中)다케·미나미(南)다케 등 3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 기리시마시 사람들은 언제나 화산 분화의 위험과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가라쿠니다케 정상에서 내려다본 에비노고원. 편도 2㎞가 조금 넘는 트레킹 코스를 오르다 뒤돌아보면 이같이 드넓은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 이재우 제공

 


‘한국악’ 이름 ‘가야(가락국)’와 연관 추측

눈 아래 묻힌 가고시마현 북동쪽 기리시마시는 겉보기에는 평온했지만, 그 가운데 알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한동안 잠잠하던 화산 활동이 임박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현지 안내를 담당한 히가시 다카미치(東多佳道)는 “사쿠라지마가 최근 3개월간 화산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조금씩 연기가 나거나 가스가 분출하는 것도 없다. 조짐이 수상하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2주 후인 지난 2월5일 사쿠라지마가 분화했다. TV 화면으로 접한 기리시마 일대는 회갈색 재로 덮여 있었다. 일본 NHK 보도에 따르면, 사쿠라지마 분화구에서 나온 연기는 약 2200m 높이까지 솟아올랐으며 분석이 화구에서 1㎞ 떨어진 곳까지 날아갈 정도로 상당한 폭발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2011년 1월26일, 300년 만에 분화한 신모에다케(1421m) 역시 여전히 화산 활동 중이다. 2011년 당시 분연은 화구 둘레로부터 약 2000m나 솟았으며, 25시간 동안 지속됐다고 한다. 분화가 시작된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신모에다케를 중심으로 반경 2㎞의 시시코다케(1428m)·오하타야마(1353m)·나카다케(1332m)의 입산을 규제하고 있다.

1934년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기리시마 국립공원에는 23개의 산이 해발 1200m의 화산성 고원인 에비노고원(えびの高原) 위로 꼬리에 꼬리를 문 채 늘어서 있다. 기리시마연산(霧島連山)이라 부르는 지형이다. 일본을 건국한 천손(天孫)이 내려왔다는 신화가 전해지는 다카치호미네(1574m), 일본 최대이자 최고(最高) 화구 호수인 오나미이케(1411m), 유황산이라는 뜻의 이오야마(1310m)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한국인들에게 유독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이름의 산이 있다. 기리시마 연산지대에서 가장 높은 산 가라쿠니다케(韓國岳·1700m)다. 한국의 가야(가락국)와 연관이 있다는 가라쿠니다케는 한자로 ‘한국악(韓國岳)’이라고 표기한다. ‘한국악’이라는 명칭은 일본 역사서 <고사기(古事記)>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사기> 중에서 신들의 활약상을 소개하는 천손강림 설화 가운데 ‘이곳은 한국을 향하고 있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한·일 역사학자들은 이를 ‘한국악’으로 해석했다.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는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지명이) 한국과 연관이 있음이 분명한데 천손강림은 단군신화와 비슷하고 또 가야 김수로왕의 7왕자 이야기와도 비슷해 신화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고 썼다.

‘한국악’의 일본식 발음인 ‘간코쿠다케’가 아니라 굳이 ‘가라쿠니다케’라 부르는 이유에 대해서도 오래전부터 많은 추측과 이야기들이 얽혀 전해져왔다. 한국이 ‘가야(가라국)’를 뜻하며 이 봉우리에 올라서면 한국이 보이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었다. 그러나 남규슈 지역에서 한반도의 끝자락이 보인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때문에 한반도에서 기리시마로 건너온 사람들이 한국을 그리워하며 올랐던 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재야 사학자 이종기 선생은 저서 <가야 공주 일본에 가다>에서 일본 건국 시초가 된 여왕 히미코가 사실은 국내에서 흔적이 사라진 가야 김수로왕의 딸 중 한 명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즉, 이 일대를 지배한 이가 한국에서 건너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장 높은 곳에 가야, 가락국을 의미하는 ‘가라쿠니’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해석이다.

“일본 최대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야후재팬에 들어가 ‘가라쿠니다케’를 검색해보면 이 명칭에 대해 불만인 일본 여론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입장 바꿔서 우리나라에 ‘일본산’이란 산이 있다고 생각해봐라. 우리라면 그걸 가만 두고 볼까.”

① 가라쿠니다케 정상에 꽂힌 ‘한국악’ 팻말. 1980년대 처음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이 팻말은 이후로 한 번도 관리되지 않았다.② 가라쿠니다케 정상에서 남동쪽을 향해 서면 사쿠라지마 화산섬(점선 표시 부분)이 보인다. 2월5일 분화 직전의 모습. ⓒ 이재우ㆍ고인순 제공


“‘한국악’ 명칭 지키는 건 한국인들 몫”

최근 몇 년 새 일본 내 혐한(嫌韓)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일각에서는 ‘한국악’이란 표기를 둘러싸고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됐다. 기리시마시의 한 시민단체에서 수년 전부터 가라쿠니다케를 일본식 발음을 그대로 한자로 표기한 ‘空國岳’으로 표기하자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가라쿠니다케 트레킹 코스를 여행상품화한 스토리투어의 조현제 대표는 “결국 ‘한국악’이라는 명칭을 지키는 건 우리 한국인들의 몫”이라며 “더 많은 한국인이 이곳을 찾고 이 지역 관광산업의 주요 고객이 되면 일본 정부도 함부로 명칭에 손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지역의 주요 산업은 화산지대답게 온천 관광업이다. 온천과 트레킹 코스를 찾는 여행객들이 주요 재원이었으나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여행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때문에 한때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던 관광호텔들은 텅 빈 채 겨우 명맥만 유지해오고 있는 경우도 많다. 기리시마 시청 관광부의 나카시마 다이스케(中島大輔)는 “기리시마는 한국과의 접점이 많다”며 “관광업 활성화를 위해 시 차원에서도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가라쿠니다케에 대한 인지도는 상당히 낮다. 한국인들 가운데는 그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경우가 많으며 안다고 하더라도 직접 가본 사람은 많지 않다. 기리시마 국제공항을 통해 기리시마시를 찾았다는 한 관광객은 “가라쿠니다케라는 이름은 들어봤지만 직접 가본 적은 없다”며 “기리시마에 와서도 일본 업체 측에서 홍보하는 유명 신사들을 찾아갔지 이런 곳에 올 생각은 못했다”고 말했다.

가고시마의 가라쿠니다케에 한국 관광객이 뜸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 가운데 가장 주요한 이유로 접근이 어렵다는 점이 꼽힌다. 현재 한국에서 가고시마 공항으로 들어가는 항공편은 인천국제공항발 대한항공편이 유일하다. 그나마 주 3회 운항이 전부다. 후쿠오카행 항공편이 하루 15편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후쿠오카로 들어가 가고시마에 가려면 비행기에서 내려 신칸센을 타고 한 시간 가까이 이동을 해야 한다. 관광업체들은 “좋은 여행 코스를 개발해 관광객을 데려가고 싶어도 교통편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항공사는 항공사대로 “무턱대고 항공편을 늘릴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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