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박 마케팅’은 집안싸움 민심 싸늘할 수밖에”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6.02.24 17:30
  • 호수 1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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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지역 정치부 기자들이 말하는 ‘진박 마케팅’ 실패 요인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9월7일 대구시 서문시장을 방문해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05년 4월 경북 영천시 국회의원 재선거가 있을 당시의 이야기다. TK(대구·경북) 내 다른 지역과 다름없이 영천은 한나라당 (새누리당의 전신) 텃밭이었다. 하지만 재선거를 앞두고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의 후보가 약진을 하며 영천은 일약 재선거 최대 격전지로 급부상했다. 한나라당 후보의 고전이 예상되자,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직접 나서 읍면 지역을 샅샅이 누비며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재선거에서 비(非)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은 없었다.

그런데 투표 당일인 4월30일, 지역 민심을 듣기 위해 현장 취재를 하던 기자에게 한 유권자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다. 남편과 투표를 마치고 나온 40대 후반의 이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만큼은 지역발전이라는 실리를 챙기기 위해 여당 후보를 밀어서 한나라당 일색인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투표소로 들어가니깐 박근혜 대표의 얼굴이 떠오르더라. 그래도 박 대표를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한나라당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진박 마케팅’ 실패는 전략 부재가 핵심”

TK는 명실상부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텃밭이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중반을 넘어섰지만, TK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도는 60%를 넘어서고 있다. 그런데 단적인 한마디 말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TK 지역의 우호적인 민심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이른바 ‘박근혜 효과’는 이성보다는 감성적인 측면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만큼 ‘박근혜 효과’는 과학적인 분석이 쉽지 않다. 그런 TK지역에서 4·13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효과’를 둘러싼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온다. 바로 ‘진박(眞朴·진실한 친박) 마케팅’의 효과를 두고 나오는 분석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고위 공직을 지내거나 진박 그룹에서 지원하는 예비후보들이 진박 마케팅에 불을 지폈다. 애초 4·13 총선을 앞두고 박 대통령이 ‘진실한 사람’ 발언을 할 때만 하더라도 진박 마케팅 효과에 대해선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실제 ‘진박 마케팅’은 별다른 효과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박 대통령에 열광하는 TK 지역에서 ‘진박 마케팅’이 오히려 미풍(微風)에 그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TK 지역 일간지 등의 정치부 소속 기자들에게 물어봤다.

시사저널이 ‘진박 마케팅’의 효과와 관련해 의견을 들은 TK 언론의 정치부 기자들은 ‘진박 마케팅’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한마디로 ‘진박 마케팅’이 지역 민심을 파고들어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오히려 ‘박근혜 팔기’라는 부정적인 여론을 더욱 키운 형국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반응이다.

20년 이상 TK 정치권을 출입한 A 기자는 “진박 후보들이 진박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것을 마치 영광스러운 훈장을 단 것처럼 여겼는지 모른지만 지역민에게는 ‘박근혜 대통령을 팔아서 표 장사를 하겠다’는 식으로 인식돼버렸다”면서 “결국 지역 민심은 진박이든, 비박이든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서 나오면 밀어주겠다는 인식으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진박 진영이 ‘진박 마케팅’을 조직적으로 벌여나가면서도 정작 지역 민심을 파고드는 구체적인 전략이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구일보 정치부 고정일 기자는 “‘진박마케팅’을 내세우면서도 사실상 그 내용과 준비 정도가 부족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면서 “진박 진영이 ‘진박 마케팅’을 벌이면서 주장했던 것이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심판이었지만 이러한 주장이 지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한 것도 ‘진박 마케팅’이 탄력을 받지 못한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진박 마케팅이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현역 의원과 경쟁할 만큼 지역에서 오랜 기간 합당한 능력을 검증받은 인물이 이른바 진박 후보로 나와야 했다”면서 “무작정 진박 후보를 밀어달라고 해서 지역민이 지지를 해줄 만큼 민심이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말했다.

일종의 당내 패거리 다툼이나 패권주의로 ‘진박 마케팅’을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선거를 앞두고 대구 지역에서 진박 후보를 자처하는 예비후보 6명이 ‘집단 회동’을 하고, 진박 진영의 좌장 격인 최경환 의원이 일부 진박 후보들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하는 등 ‘진박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대구 동구을·왼쪽 사진)과 같은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진 이재만 예비후보가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진박 마케팅’, 패거리 다툼 인식 강해”

지역 일간지 부장급 B 기자는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고정 지지층인 노년층을 중심으로 진박 후보들에 대한 지지율이 다소 상승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부정적인 의견이 대다수”라면서 “이른바 ‘패거리 정치’에 염증을 느낀 상당수 유권자들은 ‘너희들끼리 뭉치면 진박이고, 진박이 아니면 박 대통령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 것이냐’는 싸늘한 민심을 낳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나서서 튀는 성향을 싫어하는 지역민의 정서도 ‘진박 마케팅’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기저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역 일간지 정치부 소속 C 기자도 “‘진박 마케팅’을 두고 심판론을 거론하고 있지만 이것 자체가 당내 분열을 일으키는 행위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면서 “이는 진박과 비박으로 갈리면서 당내 권력다툼으로 인식되게 했고, 이에 염증을 느낀 민심을 자극하면서 오히려 역풍이 불어현역 의원들에게 반사이익을 주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고 말했다.

연합뉴스와 한국방송(KBS)이 여론조사 기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후 2월16일 발표한 조사결과(12~14일 조사·표본오차 95%수준의 ±4.4포인트)에 따르면, 대구 동구 을 지역 현역인 유승민 의원이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과의 가상 대결에서 48.1%를 얻어 이전 청장(21.0%)을 두 배 이상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승민계’로 분류되는 류성걸 의원이 출마하는 동구 갑에서도 류 의원은 40.2% 지지도를 기록해 19.6%에 그친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 이 전 청장은 ‘진박’(진실한 박근혜 사람)을 자처하고 있고 정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 각료 출신이다.

매일신문 정치부 모현철 기자는 “근본적으로 너무 편하게 대통령의 이름을 언급하며 진박이라는 테두리 안에 자신들을 가두려고 했던 것에 대한 반발 심리가 ‘진박 마케팅’에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시킨 것”이라면서 “이러한 반발 심리와 함께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반대하는 일부 지역 민심이 역(逆)선택을 하면서 진박 마케팅으로 공격받는 현역 의원들이 혜택을 보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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