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이 지경인데 당 잘 돌아간다”
  • 남상훈│세계일보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02 01:02
  • 호수 1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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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친박·비박 간 공천 룰 갈등 격화에 일침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왼쪽)와 서청원 최고위원이 공천 룰을 둘러싼 갈등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새누리당의 4·13 총선 공천전쟁이 시작됐다. 비박(비박근혜)계 김무성 대표와 친박(친박근혜)계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공천 룰 적용을 놓고 정면충돌했다. 공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양 계파가 가세하면서 계파 갈등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친박계는 ‘내 사람 심기’를 위해 전략공천 ‘길트기’에 올인하고 있다. 반면 비박계는 이를 차단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이 위원장이 선공을 했다. 이 위원장은 2월16일 다른 공관위원들과 사전 조율 없이 우선추천지역을 17개 광역시·도별로 1~3개씩 지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공천 신청자들의 경쟁력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되는 곳을 우선추천지역으로 선정하겠다는 얘기다. 전략공천의 우회통로가 될 수 있는 ‘우선추천’ 확대 방침을 밝힌 것이다. 공천전쟁의 최대 화약고에 불씨를 던진 셈이다.


이한구, 공천전쟁 최대 화약고에 불씨 던져

우선추천 확대엔 TK(대구·경북)와 강남벨트에 ‘진박’(진실한 사람+친박) 후보를 내리꽂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친박 인사를 국회에 대거 입성시켜 당내 수적 우위를 점하겠다는 전략의 일환이란 얘기다. 청와대와 친박계가 이위원장을 공천 총괄책임자로 낙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일찌감치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 위원장은 원내대표를 지내 의원들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있는데다 소신이 강해 ‘공천 칼잡이’로 적합하다는 게 친박계의 판단이다.

김 대표는 이 위원장에게 즉각 반격했다. 그는 2월17일 비공개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당대표 직인은 내가 갖고 있다. 공천관리위원회가 당헌·당규에 위배되는 결정을 하면 그것이 최고위원회에서 의결되더라도 대표로서 나는 (후보자들의) 공천장에 도장을 못 찍어준다”고 말했다. 우선추천은 여성·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자를 추천하기 위한 목적에 한정돼야한다는 지적이다. 상향식 공천을 공언한 그가 ‘공천장 수여 거부’ 카드로 엄포를 놓은 셈이다. 김 대표는 그러면서 “의원총회를 소집하겠다”고도 했다. 전체 의원들을 통해 공정 공천에 위배되는 이 위원장의 구상을 저지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공천 내분은 계파의 세(勢) 대결로 확전됐다. 2월18일 열린 최고위원회의는 친박의 재반격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친박계 최고위원들이 김 대표를 융단포격해서다. ‘신박’(새로운 친박)인 원유철 원내대표가 선봉에 섰다. 원 원내대표는 김 대표를 겨냥해 “당헌·당규를, 공천 관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그대로 운영하는 것이 쓸데없는 분란과 갈등을 막는 길”이라고 일갈했다. 이인제 최고위원도 “공관위가 자율성과 독자성을 가지고 당헌·당규 정신을 받들어 운영하면 된다”고 김 대표의 개입 자제를 요청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김 대표는 표정이 굳어졌다. 말문을 연 그는 “과거에 있었던 미운 놈을 쳐내고 자기 사람을 심는 공천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략공천 불가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면서 “공관위가 당헌·당규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자 친박 좌장 격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그러한 언행도 분명하게 용납하지 않겠다”며 “당이 대표 독선이나 독단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고 김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발끈한 김 대표는 “그만하세요! 회의를 그만하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김태호 최고위원은 “당 잘 돌아간다. 나라가 이 지경에 처했는데 지도부는 계속 이런 모습을 보이느냐”고 개탄했다.


한때 ‘친박계 중진들 살생부’ 나돌기도

이 위원장의 돌직구는 이어졌다. 그는 2월21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대표가 공천 심사에 나오지 않으면 공천을 보류하겠다”고 날을 세웠다. 자신이 공천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점을 각인시킨 것이다. 김 대표는 “면접에 응하겠다”고 확전을 자제했다. 불쾌하지만 공관위의 원칙을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를 인정하고 일단 참기로 한 것이다.

당이 시끄러워지자 김 대표는 전략을 바꿨다. ‘정치적 침묵’ 카드를 꺼내 이 위원장과 친박계의 도발을 간접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김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연이어 발언을 하지 않았다. 김태호 최고위원이 “공관위원장을 임명했으면 거기에 걸맞은 역할과 권한을 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김 대표를 압박했지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침묵의 이유도 설명하지 않았다. 당 대표의 발언으로 계파 갈등이 증폭되는 것에 부담을 느낀 듯하다. 그러나 이위원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보물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몇 명 찾았다. (이들이) 잘되도록 머리는 써볼 생각”이라며 우선추천 활용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입을 닫았던 김 대표는 이 위원장의 독주를 간접 비판했다. 그는 당 대표실 회의장에 걸려 있던 ‘개혁’ 슬로건이 사라진 것과 관련해 “정치 개혁을 하기 위해 국민공천제를 확정한 바 있는데, 지금 현재 공관위가 하는 것이 별로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아마 개혁이란 말을 쓰기가 부끄러웠던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공천 내전에 ‘살생부’까지 나돌면서 당이 발칵 뒤집혔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퍼진 루머는 이 위원장이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바둑의 격언으로 자신의 말이 산 다음에 상대의 돌을 잡으러 가야 한다는 의미) 전법’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이 비박계 현역 의원들을 물갈이하기 위해 우선 ㄱ, ㅅ, ㅅ, ㅇ, ㅎ, ㅎ 등 친박계 중진들부터 컷오프시킬 것’이란 내용이 루머의 핵심이다. 3선 이상의 친박계 중진 의원들의 실명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친박 중진들도 현역 물갈이를 공언한 이 위원장의 공천 칼날을 피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 대표에겐 이 위원장 말고도 다른 고민거리가 있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서 당내 공천도 지연돼 물리적으로 경선을 치르지 못해 전략공천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새누리당은 당초 2월23일 선거구 획정안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처리되면 오는 3월4일부터 경선에 돌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개정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3월9일로 미뤄지게 될 전망이다. 당원에 대한 안심번호는 확보됐지만 일반 국민에 대한 안심번호는 선거구 획정 후 선관위를 통해 확보해야 한다. 이 과정은 통상 10일 정도 걸린다. 따라서 선거구 획정이 늦어질수록 경선 후순위 지역은 경선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 전략공천을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2월22일 이를 막기 위해 야당과 선거구 획정을 우선 합의했다. ‘노동 4법 등 쟁점 법안과 연계 처리’라는 청와대 지침을 어기면서 내린 결단이다. 친박계가 촉박한 경선 일정을 빌미로 전략공천을 하지 못하도록 차단막을 친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상황은 녹록지 않다. 야당이 정의화 국회의장의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을 계기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이어가면서 공직선거법 개정안 처리에 암운(暗雲)을 드리우고 있어서다. 김 대표는 이런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특단의 방안을 찾아야 할 처지에 몰렸다. 그의 묘수 찾기 여부가 공천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것으로 점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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