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부업체들, 정치권 싸우는 동안 600억원 챙겼다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03.09 10:23
  • 호수 137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상 초유의 ‘금리 공백’ 사태… 1~2월 신규 대출자 최고 7%P 금리 추가 부담
여야는 3월3일 본회의를 열고 금융기관의 금리 상한선을 27.9%로 정하는 대부업법을 처리했다. 대부업법은 이날 긴급 국무회의를 거쳐 곧바로 시행됐다. © 연합뉴스

사상 초유의 금리 공백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해 말 금융기관의 금리 상한선을 정한 대부업법(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의 일몰이 도래했다. 여야는 지난해 12월 금융기관의 금리 상한선을 27.9%로 낮추기로 합의해놓고도 해당 법안을 해를 넘긴 3월3일에야 처리했다. 두 달간 최고금리 상한선이 사라진 것이다.

정부는 이 기간 동안 행정지도를 통해 기존의 금리 상한선 34.9%를 유지하고자 애썼다. 다행히 대부업체들도 금리 상한선이 폐지됐다고 해서 터무니없는 금리로 돈을 대출하진 않았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실효 기간 동안 최고금리가 34.9%를 넘는 사례는 없었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만일 이런 사례가 발생했다면 해당 대출은 무효”라고 밝혔다.

정치권 늑장 입법에 저신용자만 피해

문제는 1~2월 사이에 대부업체를 이용한 사람들이다. 법 처리 지연으로 인해 7%포인트의 금리를 추가로 부담해야만 했다. 정부 또한 기존 대출에 대해 소급 적용을 할 수 없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기간 동안 대부업체가 대출자들에게 7%포인트의 금리를 더 적용해 추가로 얻은 수익만 6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어쩔 수 없이 고금리를 감당해야만 하는 저신용자들의 눈물로 대부업체가 배를 불린 셈이다.

지난해 새 직장으로 옮긴 박 아무개씨(남·35)는 지난 1월 한 대형 대부업체를 찾았다. 저축은행에서 빌렸던 돈을 갚아야했지만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직장인 신용대출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박씨는 지난해 여야가 대부업체 금리를 20%대로 내리기로 합의했다는 뉴스를 떠올렸다. 기존 저축은행에서 빌린 금리가 25%였던 점을 감안하면 큰 차이가 없다고 여겼다.

박씨가 찾은 대부업체에선 처음에 큰 문제 없이 2000만원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수입이 명확해 대출에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출계약서를 접한 박씨는 놀랐다. 계약서에 찍힌 금리가 연 34.9%에 달했기 때문이다. 담당자에게 따졌지만 대출 금액과 신용등급, 연체기록 등을 고려해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박씨가 부담해야 하는 이자만 매월 50만원에 달했다. 1금융권에서 3%의 금리로 2억원을 빌린 사람보다 이자를 더 많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박씨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말처럼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6월 대부업법상 최고금리를 연 34.9%에서 29.9%로 낮추겠다며 개정안을 제출했다. 야당은 최고금리를 연 25%수준으로 정하자고 주장했다. 줄다리기를 계속하던 여야는 지난해 12월 새해 예산안처리를 앞두고 금융기관의 연간 최고금리를 27.9%로 설정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문제는 여야의 복잡한 셈법이었다. 새누리당은 중점 처리 법안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노동관계법·테러방지법 등과 연계해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부터 대부업법 일몰 시점이 도래해 최고금리 공백 상태가 발생했지만 새누리당은 꿈쩍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정상화된 2월 국회에선 소관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에서 대부업법을 처리했다. 그러나 선거구 획정안을 담은 공직선거법과 테러방지법을 둘러싼 ‘필리버스터(filibuster·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의사진행 방해)’ 정국이 도래하면서 또다시 벽에 부딪혔다. 결국 대부업법은 필리버스터가 끝난 직후 3월3일 새벽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정부는 이날 곧바로 국무회의를 열고 대부업법을 공포했다.

정부는 위헌적 요소를 고려해 기존 대출자에 한해 소급 적용하지 않기로 정했다. 신규 대출에 한해 최고금리 연 27.9%를 적용하기로 했다. 결국 박씨처럼 1~2월에 대출을 받은 신규 대출자들은 최고 연 34.9%의 금리를 그대로 적용받게 됐다. 2000만원을 빌린 박씨가 내야 할 이자는 해당 법안이 지난해 12월 처리만 됐어도 10만원 이상 줄어들 수 있었다.

 


최고금리 적용하는 대부업체의 ‘배짱 영업’

마냥 비난의 화살을 정치권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대부업체들은 여력이 있으면서도 대다수 대출자에게 최고금리를 적용하고 있었다. 대부업체의 평균 대출금리는 지난해 9월 기준 30.2% 수준이다. 전체 대출자 가운데 20%에 불과한 4~6등급의 중신용자, 전체 10%에 불과한 담보대출 등을 빼면 대부분 최고금리를 적용했다는 추정이 가능해진다. 은행이나 저축은행 등 1·2금융권은 조달금리에 적정 이윤과 가산금리를 붙이는 방식으로 금리를 정한다. 반면 대부업체는 일단 법정 최고금리 수준으로 부과한 뒤 사후 금리 결정 요소들을 짜맞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대부업체들은 금리가 높은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꼽는다. 우선 주 고객층의 신용이 낮아 부실률이 높다는 것. 떼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금리도 올라간다는 이야기다. 대부업체 측은 수신(예금자의 예금을 통한 조달)이 불가능해 조달금리가 높다는 이유도 댄다. 대출 규모에 비해 영업활동을 위한 마케팅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도 고려대상이다.

하지만 대부업체가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해 생기는 부실률은 잔액 기준 4.5%에 불과하다. 김기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리 인하 여력이 없다는 대부업체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최고금리 인하와 더불어 일괄적으로 고금리를 매기는 영업 행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부업체의 조달금리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2014년 말 전체 대부업체의 총 차입금은 약 6조3000억원.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의 김정배 회계사가 상위 10개 업체의 차입금을 분석한 결과, 대부업체들은 주로 국내 저축은행, 특수관계자 등으로부터 연 5~10% 수준의 이자를 제공하고 돈을 빌려왔다. 이 돈으로 연 30%의 고금리로 다시 빌려준 셈이다. 이렇게 해서 상위 10개 업체의 이자 수익은 약 2조원(2014년 기준)에 달했다. 김 회계사는 “대형 대부업체의 경우 제2금융권으로부터 자금 조달이 수월하고 대출금리와 차입금리의 차이가 약 20% 이상 발생해 수익성이 대폭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부업체들은 최고금리를 낮출 경우 부실을 초래해 법망을 피해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이동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대부금융협회는 최고금리가 27.9%로 인하돼 상위 40개 대부업체의 경우 연매출이 약 7000억원 줄어들고 연간 4000억원가량의 적자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4년 기준 대부협회가 집계한 상위 40개 대부업체 순이익은 약 3437억원으로 나타났다. 대부업계는 최소한 업체를 유지할 수 있는 원가금리를 30.65%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는 “대부업체의 법정 최고 이자율이 2002년 66%에서 2014년 34.9%로 낮아졌지만 대부업체의 수익성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대부업체는 고금리를 바탕으로 급성장했다. 상위 10개 업체의 누적 평균 수익률은 약 681%에 달했다. 2014년 말 기준 자본금 2075억원으로 업계 1위 업체인 아프로파이낸셜대부는 4.3배가 넘는 8924억원의 이익잉여금을 쌓고 있다. 특히 200억원으로 설립된 산와머니는 자본금의 527배에 달하는 1조 544억원의 누적 수익을 기록하고 있다.

“배 불리는 대출중개업자 규제 필요”


대부업계와 저신용자들 사이에서 잇속을 챙기는 대출중개업자는 최근 더욱 분주해졌다. 최고금리가 낮아지자 기존 대부업 이용자들에게 27.9%의 신규 대출로 갈아타게끔 유도하고 4% 안팎의 수수료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최고금리를 적용받는 대부업 이용자의 경우 대부분 중도상환 수수료가 별도로 없기 때문에 대출 전환은 더욱 손쉽다.

중개업자들은 이미 금리 인하가 예고된 지난해부터 대부업체와 저축은행의 신규 대출 확장에 발 벗고 나서면서 상당한 수익을 남겼다는 후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등록된 대부중개업자는 2000여 명이 넘는다. 이들이 중개한 대부·대출 금액은 2조350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45% 늘어났다.

물론 대출 이용자들이 더 많은 금리 인하 혜택을 볼 수 있다면 환영할 일이다. 다만 이용자들의 장기적인 안정성보다는 당장의 수수료를 위해 불리한 대출을 권유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실제로 한 중개업체에서 일했던 이 아무개씨(남·28)는 “업체에서 수수료가 높은 일부 대부업체의 대출을 사실상 강요받았다”며 “성과를 위해 업체에서 정해준 대출로 전환하도록 유도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저축은행에서 대출이 가능한데도 ‘첫 달이자 면제’ ‘첫 거래 이자율 인하’ 등을 미끼로 대부업체 대출을 권유하는 경우가 있다”며 “대부업체를 이용한 순간부터 오히려 저축은행 대출이 어려워져 늪에 빠지는 꼴”이라고 밝혔다.

금융위 관계자는 “대부중개업체에서 과도한 연대보증을 요구한 후 보증 의사 확인에 소홀하거나 동일인에 대해 분할 중개를 통해 과도한 대출을 유발하는 등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부중개업자의 불건전 영업 행태를 중점 점검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