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 방송음악 제작사의 갑질 백태
  • 고재석 기자 (jayko@sisapress.com)
  • 승인 2016.03.17 13:57
  • 호수 137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로이엔터테인먼트, 사문서 위조 의혹까지

“예술을 만드는 예술가보다 예술을 배달하는 유통업자가 예술의 주인처럼 되어가고 있다.” 소설 ‘소수의견’을 쓴 작가 손아람의 분노다. “전형적인 헬조선의 예시다.” 어느 건축가의 자조다. “학계랑 똑같네.” 젊은 사회과학자의 냉소다. 모두 한 방송음악제작사의 갑질을 두고 뱉은 말이다.

로이엔터테인먼트(이하 로이)는 응답하라 1994‧1997, 프로듀사, 삼시세끼 등 예능‧드라마 방송음악을 제작한 국내 대표적인 외주제작사다. 로이의 민낯은 더러웠다. 16일 피해자들이 공개한 형사고소 내용과 공정위‧국세청 신고내용, 노동청 진정내용은 충격적이다.

형사고소 내용에 따르면, 로이는 지난해 3월20일 작곡가들에게 조건부양도계약서에 날인하라고 강요했다. 계약서 요지는 작곡가들이 창작한 음악저작물을 로이에게 영구 귀속한다는 내용이다. 작곡가들이 서명을 거부하자 로이 측은 작곡가들 도장을 임의로 새겨 계약서에 찍었다.

작곡가들은 이날 계약서를 공개했다. 한 작곡가는 자기 도장과 계약서에 찍힌 도장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사문서위조 혐의가 짙다. 로이는 이 계약서를 한국음악저작권 협회 직원에게 제출했다. 이 엉터리 계약서에 영화 ‘조선명탐정2:사라진 놉의 딸’과 드라마 ‘프로듀사’ OST 수록곡 다수가 포함됐다고 작곡가들은 전했다.

작곡가들은 tvN 응답하라 1997, 1994에 삽입된 배경음악 다수를 창작했다. 하지만 로이 측은 작곡가 실명을 방송 크레딧에 넣지 않았다. 음악 사용여부를 미리 알리지도 않았다. 피해작곡가 김인영 씨가 응답하라 1997 1회 재방송을 보다가 ‘SAD MOVIE’와 코믹송 2개가 삽입된 사실을 먼저 발견했다. 이후 김 씨는 팀장을 통해 크레딧 표기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로이 측은 저작물 뿐 아니라 저작물 변형에 대한 권리도 행사했다. 저작물 계약서에 변형 권리도 적어놨기 때문이다. 작곡가들 권리를 대리행사한 셈이다. 또 한 배경음악 작곡가는 로이를 세금탈루 혐의로 국세청에 제보했다. 

피해 작곡가들은 월 80만원 받았다. 그 전에는 30만원이었다. 김인영 작곡가의 경우 30만원을 받은 시점은 입사 1년이 지난 후였다. 김 작곡가는 2013년 4월30일 월급이 100만원으로 인상됐다고 말했다. 2015년에 팀장이 되어서야 겨우 최저임금에 가까운 월 130만원을 받았다.

노동청 진정 내용에 따르면 한 피해 엔지니어는 월 80만원을 받으며 주당 평균 6일 이상 일했다. 방송업의 특성상 재작업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 엔지니어는 사실상 업무시간이 하루 24시간이었다고 밝혔다. 심지어 프리랜서 계약을 강요받아 고가의 장비도 스스로 구매해야 했다. 연장근로 수당, 야간근로 수당, 휴일근로 수당, 근로자의 날 유급휴일수당, 연차휴가 미사용수당, 퇴직금 모두 받지 못했다. 

이 회사가 jtbc드라마 송곳의 음악도 제작했다. 송곳은 국내 방송가에서 흔치 않게 비정규직 노동쟁의를 다뤄 평단과 대중의 광범위한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그 드라마의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들은 비정규직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던 셈이다.

지난해 11월 피해작곡가들과 소설가 손아람 등은 페이스북페이지 ‘유령작곡가들-로이엔터테인먼트 대응모임’을 개설했다. 유령처럼 곡을 썼던 작곡가들이 송곳처럼 뚫고나와 불공정을 고발했다. 예술창작물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제 법원이 답해야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