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인공지능이 자각하는 날
  • 박영철 편집국장 (everwin@sisapress.com)
  • 승인 2016.03.17 18:53
  • 호수 1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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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이세돌 9단과 알파고 간의 제2국까지의 결과만 놓고 3월11일에 쓰는 글입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저희 잡지를 받아보실 때쯤에는 구문(舊聞)이 돼 있을 공산이 큽니다. 지금이 총선 정국이긴 하지만 국내용 총선 이야기보다 지구촌 차원의 화제인 이 바둑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더군요.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는 바둑을 전혀 모릅니다. 이번에 이세돌-알파고 대국 기사를 보니 ‘우상귀’ ‘소목’ 같은 바둑용어가 저를 괴롭히더군요. 결국 저 같은 문외한이 관심을 갖는 것은 승패 외엔 없습니다. 일반 바둑 같으면 눈길도 안 줬겠지만 이번 시합이 ‘세기의 대결’이라고 하니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었습니다.

저는 바둑을 모르기 때문에 예상은 전적으로 기사의 영향을 받습니다. 3월9일의 첫 시합을 앞두고 기사를 죽 읽어보니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예상하는 기사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9단의 승리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대부분의 기사는 틀렸습니다. ‘인간 지능’과 ‘인공지능’의 대결에서 인간은 패했습니다.

 

3월9일 첫날엔 ‘이세돌 패(敗)!’ 소식을 듣고 시쳇말로 ‘심쿵’했습니다. 이제 인간은 컴퓨터한테 못 이기는구나 하는 절망감이 엄습하더군요. 초등학생 때 봤던 일본 만화 <바벨2세>의 줄거리도 다시 떠올랐습니다. 외계인으로부터 초능력을 전수받은 소년이 지구를 노리는 다른 초능력자와 싸운다는 내용이죠. 이 만화에 나오는 바벨탑은 전지전능한 초고성능 인공지능입니다. 악한 존재라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을 정도이지만 다행히 이 바벨탑은 착합니다.

 

사람들이 이세돌 9단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패배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이 기계(인공지능)에게 지배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비롯됩니다. 이미 연산 능력을 비롯한 각종 능력에서 인공지능은 인간을 능가한 지 오랩니다. 아직은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는 수준에 머물러서 그렇지 인공지능이 자신의 능력을 자각하게 되는 그날이 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현재의 발전 속도로 보면 이런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것들이 나중에 실현되는 게 한둘이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이런 인공지능이 출현한다고 전제하고 이에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는 별개로 ‘알파고(AlphaGo)’라는 이름에서 한국이 노력을 더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영어사전을 보면 go는 ‘가다’라는 뜻도 있지만 ‘바둑’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영어사전의 고(go)는 바둑을 뜻하는 일본어 고(ご·碁, 棋)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바둑은 한·중·일 3국의 공통 문물입니다. 흔히 바둑의 발상지는 중국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서양인들이 인식하는 바둑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일본 것’입니다. 중국의 G2 등극으로 동아시아는 갈수록 지구촌적 관심을 받을 게 확실합니다. 공통 문물이 많은 동아시아 3국 간에는 향후 불꽃 튀는 원조(元祖) 경쟁이 펼쳐질 것입니다. 국가 차원의 선점 전략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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