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세계 전략]④ 북·남미, 대형차가 끌고 소형차가 밀고
  • 박성의 기자 (sincerity@sisapress.com)
  • 승인 2016.03.25 17:28
  • 호수 1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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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과도한 대출, 브라질은 불안정한 환율이 위험 요인
하반기 미국시장 출시 예정인 대형 세단 G90. / 사진=현대차그룹

글로벌 완성차 업체라면 누구나 ‘콜럼버스’를 꿈꾼다. 북미는 안정적인 자동차 수요와 준수한 도로망을 자랑한다. 남미는 시장잠재력이 크다. 아메리카 대륙에 이름을 새기는 건 모든 완성차사의 꿈이 됐다.

현대·기아차는 북미시장은 대형차로, 남미시장은 소형차로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전망은 낙관적이다. 방향성도 확실하다는 평가다. 문제는 예측할 수 없는 양국의 경제 변수다. 전문가들은 아메리카 시장이 돈이 되는 만큼 ‘큰 폭탄’ 하나씩을 안고 있다고 진단한다. 현대·기아차에게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 북·남미 준수한 판매량

현대·기아차는 북미시장 진입 초기 ‘저가의 저품질 차량’ 이미지가 있었다. 현대·기아차는 악명을 떨쳐내기 위해 미국 시장 수출차종에 많은 공을 들였다. 효과는 있었다. 현대차 미국법인에 따르면, 현대차는 미국의 브랜드 가치 조사기관인 브랜드키즈가 실시한 '2016 고객 충성도 조사'에서 자동차 부문 1위에 올랐다. 현대차는 이 조사에서만 7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주력 모델 판매량도 준수하다. 특히 현대차가 성장 동력으로 점찍은 고급세단 성장세가 돋보인다. 제네시스(DH)는 지난달 미국에서 2532대 판매돼 2362대가 팔린 벤츠 E클래스를 따돌리고 현지 판매량 2위를 기록했다.

다만 지난달은 벤츠가 신형 E클래스 출시를 예고한 시점이다. 판매량은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그럼에도 제네시스 미국 진출 초기와 비교하면 괄목할 성과다. 2008년 미국 시장에 첫 진출한 제네시스는 초반 10위권 내에도 들지 못하며 고전했다. 2009년부터는 판매량이 3~8위로 요동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남미시장에서는 이제 막 가속을 시작했다. 현대차는 지난달 브라질 시장에서 전년 같은 기간보다 6.3% 증가한 1만3922대를 판매했다. 판매대수가 전년 동기보다 증가한 것은 지난해 3월 이후 11개월 만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4월 판매량이 11.7% 감소한 뒤 올해 1월까지 감소세를 이어갔다.

현지 전략형 소형 해치백 모델인 HB20이 성장을 견인했다. 현대차는 2012년 브라질에 연산 15만대 규모의 생산공장을 건립하면서 현지 전략 모델인 HB20을 생산·판매해왔다. HB20은 지난달 전년보다 16.6% 증가한 1만1542대가 팔렸다. 브라질 2월 자동차 시장 규모가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전년보다 20.5%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크게 성장했다.

◇ 제동은 없다...신(新) 성장 동력 확보

현대·기아차는 북미 시장에서 더 이상 복병이 아니다. 투싼과 엘란트라 등 준중형 라인업 판매량이 고르게 성장하고 있다. 브랜드 이미지는 일본, 미국차와 비교해 손색이 없다. 현대차는 이제 북미 고급차 시장을 노린다. 독일 브랜드가 차지한 고급차 부문에 신차를 출시, 영업이익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대차그룹은 오는 하반기 제네시스 브랜드의 주력 모델 G90(국내명 EQ900)를 북미시장에 출시한다. G90는 국내 출시 3개월만에 누적 계약 2만대를 넘어섰다. 1억원 내외의 고가 차량으로 이례적 판매량이다. 북미시장은 한국보다 고급 내수시장 규모가 크다. 현대차가 기대를 거는 이유다.

북미에서 대형차가 주력이라면 남미시장은 소형차를 전면에 내세웠다. 주인공은 브라질 전용 모델 HB20이다. 현대차 브라질공장에서 생산되는 소형 해치백 HB20을 파라과이로 수출할 계획이다. HB20이 브라질 외에 다른 국가에서 판매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차는 파라과이 외에 다른 남미 국가에 대한 수출도 추진할 계획이다.

기아차는 멕시코에 현지 공장을 건설 중이다. 멕시코 누에보레온에 건설한 공장은 연간생산 30만대 규모다. 지난 2014년 10월 착공을 시작해 올 하반기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 준중형급 K3(수출명 포르테) 양산을 계획 중이며 소형차 엑센트 생산도 검토되고 있다.

◇ 크게 얻기 위해서는 큰 리스크 감수해야

북·남미 시장은 시장 규모가 크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경제 상황이 다르다. 현대·기아차가 두 시장 모두를 잡기 위해서는 현지에 맞는 전략차종 출시가 중요하다. 현대·기아차 역시 이 점을 간파하고 남과 북 다른 전략을 추구하고 있지만, 업계 전망이 갈린다. 무엇보다 현대·기아차가 통제할 수 없는 경제 변수가 많다.

브라질과 멕시코 등 남미 자동차시장은 미국과 비교해 걸음마 단계다. 시장 규모도 작고 경제력도 떨어진다. 인구수가 많고 자원도 풍부해 성장잠재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경제 불황골이 생각보다 깊다. 자원과 관광사업이 발달했지만 기후적 특성으로 전염병 창궐이 잦다. 최근 지카 바이러스가 유행하자 관광사업이 주저앉으며 경기가 요동치기도 했다.

브라질에 진출해 있는 외산 브랜드들도 이런 변동성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이 탓에 최근 생산물량을 조절하는 등 소극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반면 현대·기아차는 공장 증설을 시도하는 등 확장정책을 펴고 있다. 브라질 등 남미 경기가 회복되면 현대·기아차가 경쟁 브랜드보다 더 큰 수혜를 누릴 수 있다. 다만 남미 경제가 더 추락할 시 그만큼의 리스크를 떠안아야 한다.

미국 시장은 금융 위기가 지적된다. 미국 자동차수요는 증가하고 있지만 그만큼 자동차 대출시장도 같이 커졌다. 즉, 돈을 빌려 차를 사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미국 신용평가기관 에퀴팩스(Equifax)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자동차 대출시장 규모는 1조 달러에 육박한다. 우리 돈 1170조 규모인데 이 중 20%가 신용도가 낮은 서브프라임(비우량) 대출이다. 자동차 대출시장이 무너진다면 자동차 전체 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고급차는 수익률이 높다. 현대차그룹이 미국시장에서 제네시스를 출시한 이유다. 다만 브랜드를 정상궤도로 올리려면 투자비용과 광고비 등을 같이 끌어올려야 한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브라질과 멕시코 등으로도 현대·기아차가 진출을 모색하고 있지만 경제상황이 안 좋은 게 변수다. 단기적으로 판매량이 늘더라도 환율이 무너지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결국 아메리카 양 시장 모두 높은 이윤을 기대할수록 리스크 관리가 필수적이다.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속도조절이 필요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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