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 조선, 해법 말하다]① 김용환 서울대 교수 “해양산업 2년 안에 결판난다”
  • 박성의 기자 (sincerity@sisapress.com)
  • 승인 2016.04.05 16:0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양산업은 ‘공장’ 아냐...다각도로 보는 시각 가져야”

대한민국 조선해양산업 체면이 말이 아니다. 세계무대를 호령하던 위용은 온데간데 사라졌다. 일본은 엔저를 등에 업었고 중국은 저가수주공세에 나섰다. 장밋빛 미래를 자랑하던 해양플랜트는 저유가에 발주가 말랐다. 조선 대형 3사는 올해 턴어라운드를 노리고 있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 이에 본 기획에서는 교육, 금융, 경영 등 각계 전문가로부터 조선해양산업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찾아본다. [편집자주]

지난달 22일 서울대학교 슬로싱실험동에서 만난 김용환 교수는 조선해양산업의 위기를 진단하려면 산업특성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 사진=박성의 기자

지난해 12월 30일 영국 왕립공학학술원(RAE)이 2015~2016년 유명 방문석학(DVF)을 발표했다. 영국 왕립공학학술원은 매년 공학분야의 세계적 석학 30명 정도를 대상으로 영국 방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단 한명만이 DVF 자격을 얻었다. 김용환(52)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가 주인공이다. 김 교수는 국내 공학기술 분야 최고 권위 단체로 알려진 공학한림원 2016년 신입 회원으로도 선발됐다. 김 교수의 해양유체학은 국내·외 학계 모두에서 주목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서울대학교 슬로싱실험동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오후 3시를 갓 넘은 시간, 김 교수의 전화기는 연신 울려댔다. 김 교수의 스케줄은 한림원 세미나와 산업계 자문, 학부생 지도 등으로 빼곡하다. 하루 동안 쏟아지는 전자우편만 300여 통에 이른다.

어렵게 마주한 김 교수에게 국내 조선업에 대해 물었다. 김 교수는 씁쓸한 미소와 함께 “참 어렵고도 복잡하게 꼬였다”며 국내 조선 대형 3사, 학계, 정부가 처한 상황에 대해 소상히 설명했다. 몇몇 질문에는 심경이 복잡한 듯 깊은 한숨과 함께 답을 잇지 못했다. 김 교수는 국내 조선업에 대해 깊이 우려하면서도 희망의 끈은 놓지 않았다.

김 교수는 “해양플랜트 위기는 예고돼 왔다. 다만 정부와 산업계가 조선해양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에 타격은 더 컸다”며 “위기를 풀어갈 컨트롤타워는 부재하고 현장에 투입될 전문가들은 이제야 양성과정에 들어갔다. 해양의 위기는 인지하는 순간 풀어낼 수 있는 단기적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국내에서 해양공학을 너무 단순화해서 생각한 게 문제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국내에서 주요 사용하는 해양플랜트라는 용어는 외국에서 쓰이지 않는다. 플랜트(plant) 즉, 공장을 뜻하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해양 프로젝트에 얽힌 다양한 이해관계를 너무 축약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산업계와 정부 모두 해양 기초교육 등은 간과하고 생산물에만 치중하게 됐다.

김 교수는 “해양플랜트라는 용어는 국제 학계에서는 생소한 개념이다. 플랜트는 최종산출물(end product)에 집중한 용어다. 이 같은 개념은 기초학문을 연구하는 대학이 사용해선 안된다. 플랜트는 공정이나 화학공학 같은 개념이 부각된다. 사실 해양부문은 단순 시설뿐만 아니라 석유 탐사, 시추 등을 아우르는 융합적인 개념이 맞다”고 했다. 즉, 해양산업이 부상하자 국내 관련업계가 해양에 대한 전통적 정의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성급히 뛰어들었다는 지적이다.

그는 국내 해양산업 회생을 위해서 학계는 적재적소의 인력을 양성해내야 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산업계는 창의성을 발휘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 조선 대형사의 회생 한계선은 2017년이라고 못 박았다. 2년 안에 해양 수주가뭄을 해갈하지 못한다면 유동성에 문제가 발생해 회사가 존폐기로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조선 대형3사가 무너진다면 학계 역시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용환 교수는 조선해양산업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 대학과 정부, 기업이 장기적인 관점을 지녀야 한다고 했다. / 사진=박성의 기자

국내외 조선해양 학계 모두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외국에서 바라보는 국내 조선해양 학문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현재 한국에는 수십 개의 조선해양 관련 학과가 있다. 반면 일본과 영국, 미국은 2~5개다. 한국 조선해양대학 중 상당수가 2000년대에 생겼다.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국내 정부와 산업체, 학계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해양플랜트인데 사실 외국 대학에 플랜트학과라는 건 없다. 외국에서는 대신 오프쇼어 엔지니어링(offshore engineering)이나 오프쇼어 플랫폼(offshore platform) 등으로 부른다. 플랜트는 최종산출물(end product)에 집중한 용어인데, 이 같은 개념은 기초학문을 연구하는 대학이 사용할 말은 아니다. 북해유전을 갖고 있는 영국이 에버딘 대학에 오프쇼어 엔지니어링과 관련한 교육 프로그램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만큼 해양산업을 플랜트라는 표현 하나로 학문화하기 어렵다. (대학에 해양플랜트 학과가 있는 것이) 전통적인 모습은 아니다.”

이 같은 모습이 국내 해양산업 위기를 촉발시킨 하나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해석한다면 비약인가.

“원인이라기보다는 그만큼 우리나라가 해양산업을 바라보는 깊이가 얕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회사와 정부 입장에서는 수익이 중요할 수 있지만 해양은 공장의 개념이 아니다. 오프쇼어 엔지니어링은 시설 뿐 아니라 석유 탐사, 시추 등을 아우르는 융합적인 개념이다. 해양산업이 부상하자 한국 정부와 대학이 맞춤형 교육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보니 한국은 지금 해양플랜트가 학문처럼 자리잡아가게 됐다. 물론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성화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적재적소에 맞는 인력배출을 위한 것이다. 잘만 시행된다면 산업계와 학계 모두에게 이득이다. 다만 교육 현장에 특성화된 강사들도 많지 않아 관련 커리큘럼의 완성도가 대학마다 편차를 보인다. 아쉬운 점이다.” 

대학이 단기적인 성과에 치중해 부실한 커리큘럼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학계가 정부와 산업계에 종속된 모습이다. 서울대는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나.

“조선·해양산업은 급격하게 변했다. 2011년 해양은 조선산업의 25% 수준이었다. 그런데 2012년 50%로 급증하더니 2013년 이후 75% 수준으로 치솟았다. 학계가 이런 변화를 먼저 예측하고 커리큘럼에 반영하는 것은 어렵다. 또한 산업변화를 읽고 커리큘럼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개설 교과목 심의 등을 거쳐야 한다. 커리큘럼을 신설하려면 (예전 커리큘럼을 수강한) 기존 학부생 역시 고려해야 한다. 또 서울대는 인프라나 학과운영에 있어서 정부의 의지와는 독립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는 해양위기가 촉발되기 전인 2013년부터 관련 전문가를 교수로 초빙했고 2014년 해양부문 커리큘럼을 강화한 상태다. 영국 로이드선급협회는 10년째 서울대에 기부금 형식으로 조선해양연구비를 지원하고 있고 대우조선해양은 시흥캠퍼스에 투자를 결정했다. 이런 투자들이 모이면 장기적으로 (서울대 조선해양학과가) 큰 그림을 그리는데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해양플랜트 발주를 급감시킨 원인은 유가하락이었다. 유가는 일정하게 변동하기에 조선 대형 3사가 하락세를 예측하고 대비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내에서 해양플랜트가 부상했던 시기, 장기적인 장밋빛 전망만을 보고 단기적인 리스크를 간과한 부문은 분명 있다. 다만 유가는 2~3년 주기로 변화하는데 정확한 하락시점을 예측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유가에는 수많은 변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미국의 냉전이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전쟁이나 천재지변도 유가변화 원인이 될 수 있다. 이 탓에 영국 해양연구기관인 클락슨(Clarkson) 등이 해양산업 관련 자료를 주기적으로 공개하고 있지만 예측은 늘 어렵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어느 단체나 전문가가 예측할 수 있었겠나. 해양은 금융산업보다 예측기관이 적다. 지금도 2020년 유가에 대해 관측 갈리는 상황이다.”

정부가 조선해양산업에 대한 중요성만을 역설하고 정작 행정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학계만 놓고 봤을 때, 정부가 지원하는 (조선해양) 연구비는 선진국과 비교해도 많은 편이다. 예전에 비해 연구비가 늘었기 때문에, 전문가 인력풀을 양성하기에는 좋은 기회다. 다만 연구비용과 별개로 거버넌스(governance)를 지휘할 주체가 없다.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인력배출이 자판기처럼 투입과 동시에 산출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산업발전을 위해서는) 정부와 대학 등이 이런 특성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따라서 정부 내 조선·해양산업과 연관된 모든 기관을 통솔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절실하다. 인력양성사업의 경우 어느 기관이 주도해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평가할지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책이 일관성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실천돼야 산업체도 힘을 낼 수 있다.”

위기는 이미 닥쳤다. 대한민국 조선·해양산업의 미래를 전망해 본다면.

“학교는 현장에 특화된 인력을 배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편일률적인 교육 커리큘럼으로는 불가능하다. 교수진이 급하다고 회사 실무진으로만 꾸리는 행태도 지양해야 한다. 조선해양 기초 연구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전문적인 강의진이 필요하다. 정부는 장기적인 플랜을 가져야 한다. 플랜이 세워졌다면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주는 게 정부의 의무다. 산업체는 정신 차려야 한다. 서로 싸우지 말고, 자기들이 최고라는 자만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무엇보다 산업체가 무너지면 조선·해양 학문도 같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조선 3사의 운명은 2년 내 결정될 것이다. 조선은 프로젝트 규모가 작아서 단기적으로 회복이 가능하지만 해양은 2017년까지 수주가 안 된다면 유동성에 문제가 생긴다. 조선 3사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새로운 마켓을 창조할 수 있는 혁신을 시도해야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