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탐지기’,범인의 마음 꿰뚫어본다
  • 정락인│객원기자 (.)
  • 승인 2016.04.07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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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마지노선 무너뜨려 사건 해결 열쇠 강제성 없고, 법정 증거로 인정 안 돼

진실과 거짓을 가려낸다는 ‘거짓말탐지기’는 범인을 잡는 데 얼마나 효과적일까. 지금까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거짓말탐지기가 숱하게 활용되고 있다.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청주 네 살배기 안승아양 암매장 사건에서도 거짓말탐지기 조사가 병행됐다.

이 사건에서는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승아양은 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친모 한 아무개씨(36)에게 살해당했다. 한씨와 계부 안 아무개씨(38)는 승아양의 시신을 이틀간 베란다에 방치하다 2011년 12월24일 새벽 충북 진천의 한 야산에 암매장했다.

3월22일 숨진 의붓딸을 암매장한 혐의(사체 유기)를 받는 안 아무개씨가 충북지방경찰청에서 거짓말탐지기와 범죄심리분석 조사를 마친 후 경찰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한씨는 “아이가 잘못된 것은 모두 내 책임”이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계부 안씨는 충북 진천의 한 야산에 암매장했다고 자백했다. 문제는 승아양의 시신을 찾지 못한 것이다. 경찰은 굴착기를 동원해 야산 16곳을 파헤쳤지만 끝내 시신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경찰은 안씨 진술의 신빙성을 가늠하기 위해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벌였다. 결과는 ‘거짓 반응’. 승아양의 시신 암매장이 거짓일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이 사건은 ‘시신 없는 살인’으로 재판에 넘겨지게 됐다.

거짓말탐지기가 성폭행범으로 몰릴 뻔한 한 남성을 구제하기도 했다. 이 아무개씨(남·41)는 인터넷 조건만남 사이트에서 알게 된 김 아무개씨(여·29)와 성관계를 가졌다. 그런데 김씨는 이씨에게 “성폭행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했고, 이씨는 졸지에 성폭행범으로 몰렸다.

경찰은 김씨의 주장에 무게를 두고 이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의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 김씨에게서 거짓 반응이 나오면서 극적 반전이 이뤄졌다. 결국 김씨는 무고 혐의로, 이씨는 성매매와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진실과 거짓을 가려낸다

‘한 개의 거짓말을 토한 사람은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스무 개의 거짓말을 생각해내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어떤 불리한 상황에 직면하면 그걸 만회하기 위해 거짓으로 상황을 꾸며내게 된다.

거짓말탐지기는 정상인이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게 되면 양심의 가책이나 거짓이 탄로 날까 봐 심리상태에 변동이 일어난다는 점을 활용한 기계다. 신체의 자율신경계는 의식적으로 조절되지 않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때는 교감신경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호흡·심장박동수·혈압이 변하고 땀이 나게 된다. 거짓말탐지기는 이런 신체 변화를 감지하고 거짓을 가려낸다.

검사는 방음 처리가 된 검사실 의자에 앉아 손에 장치를 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외부의 자극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조용한 방에서 다양한 신체 자극을 측정하고 분석한다. 심전도 검사처럼 생리적 반응을 체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를 위해 심혈관계 반응, 호흡 반응, 피부전기 활동(땀 분비)을 동시에 측정한다.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범인 진술의 진위를 가려내는 데도 활용되지만, 범인의 심경 변화를 이끌어 더 많은 진술을 끌어내려는 의도로도 쓰인다. 거짓말을 하다가 그것이 드러나면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회피하던 자기방어적 자세를 내려놓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건을 풀 수 있는 유력한 단서가 튀어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 2010년 전 국민의 공분을 샀던 부산 여중생 납치 살인사건이 그렇다. 범인 김길태는 당시 13세이던 여중생 이 아무개양을 납치·성폭행한 후 살해해 시신을 유기했다. 김씨는 경찰에 검거된 후 일관되게 범행을 부인했다. 이후 완강히 범행을 부인하던 김길태는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은 후 갑자기 태도를 바꾸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김길태는 이 조사에서 자신의 범행이 탄로 나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인지한 것이다.

그는 이양의 사망 추정 장소 한 곳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아느냐”고 물은 조사관에게 “모른다”고 답했지만 거짓말탐지기에는 ‘거짓’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김길태는 이어 이양을 성폭행한 곳으로 지목한 장소 중 한 곳을 보여주자 뇌파 움직임이 급변, 사실상 범행 장소를 알고 있음을 엿보게 했다. 경찰은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김길태를 강하게 압박하며 조사를 벌였고 결국 자백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몇 가지 현실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조사에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피의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진행할 수 없다. 피의자가 결백을 주장하면서 의도적으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회피할 수도 있는 것이다.

2010년 4월19일 인천의 한 모텔에서 윤혜원씨(당시 22세)가 낙지를 먹다 사망했다. 경찰은 단순 질식사로 보고 내사 종결했지만 4개월 후 윤씨가 생명보험에 가입했고 그 수혜자가 남자친구였던 김 아무개씨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가족들의 요청으로 재수사가 이뤄졌다.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범인 진술의 진위를 가려내는 데도 활용되지만, 범인의 심경 변화를 이끌어 더 많은 진술을 끌어내려는 의도로도 쓰인다. ⓒ Reuter


실체적 진실 밝힐 판단의 근거

검찰은 김씨를 살인 혐의로 재판에 회부하면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잔혹한 범죄”라며 사형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살인죄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씨가 법망을 빠져나가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김씨는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했고 이후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시신을 부검하지 않고 화장한 뒤여서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김씨는 ‘사형 구형-무기징역-무죄’에서 보여지듯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피의자 김씨는 경찰과 검찰 수사 과정에서 거짓말탐지기와 최면수사를 거부했다. 기계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2012년 12월24일 항소심 두 번째 공판이 열렸다. 당시 재판장이 김씨에게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요청했으나 김씨는 또다시 거부했다.

그러자 재판장은 “그동안 재판에서 거짓말이 진실로 나온 적은 있지만 진실이 거짓말로 나온 적은 없었다. 여자친구를 살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억울해하는데 그것이 진실이라면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재차 요구했지만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김씨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한 번도 이뤄지지 못했고 그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거짓말탐지기 분석 결과는 법정에서 공식 증거로 인정받지 못하고 단순 수사 참고 자료로만 활용된다. 검사 결과는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자율신경계의 생리 반응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거짓말 판독률은 94% 이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100% 정확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법원에서 직접적인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단, 범행 당시의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는 판단의 근거로는 삼을 수 있다.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가 법정에서 범행을 입증할 유력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성립돼야 하는데 첫째, 거짓말을 하면 반드시 일정한 심리 상태의 변화가 생겨야 하고 둘째, 그 심리 상태의 변화가 반드시 생리적 반응을 일으켜야 하며 셋째, 그 생리적 반응으로 피검사자 말의 진위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에 대한 엄격한 증거 능력 인정 조건 때문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비롯한 검사기관에서도 거짓말탐지기 조사 때 유의사항을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서울 일선 경찰서의 한 강력계 형사는 “강압 수사가 엄격하게 금지돼 있는 상황에서 거짓말탐지기는 범인의 자백을 받아내거나 거짓 진술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과학수사가 발전하는 만큼 범죄의 지능화도 병행되기 때문에 더욱 정교한 수사 기법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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