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미디어 제국 건설 꿈꾸는 마윈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6.04.07 19:2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알리바바, 홍콩 최고 일간지 ‘SCMP’ 인수에 이어 ‘명보’ 매입설도 나돌아

지난해 12월부터 홍콩 언론계는 중국의 한 슈퍼리치의 행보에 긴장하고 있다. 그가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를 사들였고, 중문지 ‘명보(明報)’를 인수한다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SCMP와 명보는 홍콩인들이 가장 신뢰하는 홍콩 최고의 일간지다.

SCMP를 사들인 이는 중국 최고 부자인 마윈(馬雲) 알리바바그룹 회장이다. 알리바바가 SCMP를 20억6060만 홍콩달러(약 3160억원)에 인수했던 것. 알리바바는 신문뿐만 아니라 잡지, 디지털 자산, 옥외 광고 등까지 사들여 SCMP의 핵심 자산을 모두 인수했다. 대표적인 반(反)중국·친(親)서방 매체가 중국 기업에 팔리자 홍콩 사회는 경악했다. 수일간 시민단체 주도로 SCMP 사옥 앞에서 매각 반대 시위가 벌어졌을 정도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왼쪽 사진)의 행보가 거침없다. 마윈 회장은 언론사 인수를 통한 콘텐츠 미디어 제국을 건설하려 하고 있다.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AP·EPA연합

최근에는 알리바바의 명보 인수가 임박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지난해 7월부터 알리바바와 명보 측이 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양측이 합의 단계에 들어섰다는 얘기다. 이번 협상도 마윈이 직접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알리바바가 대표적인 반중(反中) 매체들을 사들이는 상황은 홍콩 언론계의 극심한 운영난을 여실히 반영한다. 홍콩은 아시아에서 보기 드문 언론 자유의 천국이다. 인구는 724만명밖에 안 되지만, 10여 개의 일간지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 중 SCMP와 명보는 단연 돋보이는 매체다.

SCMP는 1903년 영국인 알프레드 커닝햄이 설립했다. 한때 대륙에서도 ‘남화조보(南華早報)’라는 중문지를 내며 명성을 떨쳤다. 최전성기 SCMP의 발행부수는 20만부에 달했고, 1971년에는 홍콩 증시에 상장했다. 특히 베일에 싸인 중국 정계를 이해하는 창구 역할을 수행해 전 세계 언론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런 지명도에 매력을 느꼈던 루퍼트 머독은 1987년 SCMP를 사들였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일어나 홍콩의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머독은 1993년 SCMP를 로버트 쿠옥에게 되팔았다.

중국의 경제 매체 ‘차이신’도 인수 추진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SCMP의 영향력은 점차 떨어졌다. 중국 정부에 대한 비판이 갈수록 무뎌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지난해 발행부수는 10만부에 불과했고, 매출은 전년 대비 8% 감소했다. 다른 홍콩 신문들처럼 구독률 하락과 광고 판매 감소로 재정난에 빠진 상태였다. 이런 현실에서 알리바바에 인수된 것은 생존을 위한 자구책이나 다름없다. 앞으로 알리바바의 막대한 자금력에 기댈 수 있고 중국 시장에 진출할 여지가 생겼다.

마윈이 인수를 추진 중인 명보는 1959년 중화권 최고의 무협소설가 진융(金庸)이 설립했다. 1989년 판매부수가 18만부에 달해 정점을 찍었다. 1991년 홍콩 증시에 상장할 즈음에는 주간지·월간지·출판사 등을 거느린 종합 미디어그룹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1994년 진융이 명보를 떠나고, 캐나다 화교 위핀하이(于品海)에게 인수되면서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말레이시아 재벌 퉁휴킹(張曉卿)이 운영하는 미디어 차이니스 인터내셔널이 명보를 인수했다. 현재 알리바바는 명보 측과의 인수 협상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SCMP에 대한 인수도 소문으로만 떠돌다가 전격적으로 발표됐었다. 따라서 홍콩 언론계에선 조만간 빅딜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홍콩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경제 매체의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경제·금융·비즈니스 등의 뉴스와 분석을 제공하는 차이신(財新)이 그 대상이다. 차이신은 뉴스 사이트 ‘차이신넷’, 주간지 ‘신세기(新世紀)’, 월간지 ‘중국개혁’ 등을 거느린 미디어그룹이다. 신세기는 매월 발행부수가 22만부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서는 구독자가 190만명에 달한다. 또한 차이신은 중국 국가통계국이 매달 발표하는 구매관리자지수(PMI)의 스폰서이기도 하다.

미국 ‘블룸버그’는 “차이신은 짧은 기간 내 경제지표, 통계 데이터, 금융 리서치 등을 제공하는 매체로 급성장해 마윈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마윈이 SCMP를 사들이고 명보 인수를 추진하는 배경과 일맥상통한다. 마윈은 이들 매체가 지닌 막대한 양의 콘텐츠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 마윈은 알리바바의 사업 영역을 전자상거래에서 콘텐츠와 미디어로 확대하고 있다. 2014년 3월 홍콩 영화사를 인수해 알리바바픽처스를 설립했다. 4월에는 6000만명의 IPTV 가입자를 보유한 미디어플랫폼 화수(華數)미디어그룹의 지분 20%를 10억500만 달러(1조2300억원)에 인수했다. 그 후 중국 최대 동영상 사이트인 유쿠·투더우(優酷·土豆)의 지분 18.5%를 매입하더니, 지난해 11월에 남은 지분을 45억 달러(5조3600억원)에 사들였다. 지난 3년간 마윈과 알리바바가 투자한 미디어나 콘텐츠 기업은 적어도 25개에 달한다.

언론 통해 알리바바 이미지 개선 꾀할 듯

미디어의 여론 장악력은 마윈에게 아주 매력적이다. 홍콩에서는 2014년 행정장관(정부 수반)의 완전 직선제를 주장하는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는 등 중국 정부와 홍콩인들 사이 긴장이 커지고 있다. 마윈은 SCMP와 명보를 통해 홍콩 사회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마윈의 최측근인 차이충신(蔡崇信) 알리바바 부회장은 한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서구 언론들이 중국의 통치 방식을 수긍하지 못해 중국에 대한 보도 시각이 오염돼 있다”고 비난했다.

마윈이 ‘중국의 루퍼트 머독’을 꿈꾸지는 않는다. 중국은 언론 자유가 제한되는 독재국가다. 그저 마윈은 언론의 힘을 빌려서 알리바바에 대한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고 중국 정부로부터 특혜를 받아낼 가능성이 크다. 실제 알리바바는 SCMP를 인수한 후 “전 세계 독자를 더 확보하고 중국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며 핵심 사업에 도움이 되도록 뉴스 사이트의 유료 구독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수년간 자사의 오픈마켓 타오바오(淘寶)가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지적재산권 침해, 모조품 판매 등으로 공격받아왔던 것을 방어하려는 의도다.

SCMP는 당분간 과거 논조를 유지하겠지만, 갈수록 마윈의 입김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마윈이 SCMP의 반중 색채를 빼내서 중국 정부의 환심을 사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마윈의 행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알리바바에 부족한 대중 신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호평했지만 우려 또한 크다. 파이낸셜타임스는 “SCMP가 중국공산당 노선에 너무 근접하면 서방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