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의 기억 심리부검] 오래전부터 ‘자살 징후’ 주변에 보냈다
  • 서종한 | 프로파일러 (사이몬프레이저대학 정신건강법 (.)
  • 승인 2016.04.14 18:45
  • 호수 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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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하던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사망 하루 전에도 자살 시도로 경찰에 연행돼

2007년 2월12일 새벽 5시30분쯤 한 60대 경비원이 자신의 근무지인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해 자살했다. 추운 아침 출근을 서두르던 입주민이 화단에 쓰러져 있던 그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다. 옥상에서는 그가 뛰어내리기 전 남겨놓은 유서 한 장이 낡은 구두와 함께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옥상 시멘트벽돌 두 장을 딛고 올라선 그 자리 주변에 선명하게 남겨진 족흔은 그의 신발 문양과 일치했고, 그가 잡았을 것으로 보이는 난관에 남겨진 지문도 역시 그의 것과 일치했다. 수사 결과는 몇몇의 참고 진술과 주변에 남겨진 증거로 봐 자살로 일단락됐고 시신은 곧 그의 가족에게 인수·인계됐다.

그가 죽은 지 6개월이 흘러 그의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필자는 아파트 경비원이었던 그가 자살한 이유를 좀 더 알고 싶었다. 사건 현장에서 만난 그의 부인 김복자씨에게 조심스럽게 심리부검의 취지를 설명했고 6개월 후에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로 약속했다. 다행히도 그녀와 연락이 됐고 그녀의 자택에서 22세 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 일러스트 임성구

‘자살 경로 분석’은 자살한 사망자가 죽기 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에 다다를 만큼 악화된 생애 경로를 보였는지 후향적으로 탐색해나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자살 사망자가 충분한 자살 의도를 갖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의도에 부합할 정도의 자살 방식·시간·장소를 선택했는지 여부를 알아낼 수 있다. 아래에 그가 죽기 전 자살에 이르게 된 자살 경로를 연대기적으로 정리해봤다.

후향적 자살 사망 경로

 자살 당일  대림아파트 2단지 102동 아파트 관리사무소 경비원으로 근무했던 김진만씨가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해 자살했다.

 자살 하루 전  김씨는 야간경비 업무를 마치고 아침 6시30분에 퇴근했다. 퇴근 후 관리소장으로부터 지하 보일러실 화재 책임에 따른 손해배상을 할 것을 종용받았다. 관리소장에게 항의하며 말씨름이 심하게 벌어졌다. 화재 책임에 대해 자신은 과실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다음 달 월급에서 발생한 손해 비용만큼 차감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김씨는 보일러 화재 사건과 관련해 “당신들이 믿지 않는다면 내 과실이 아님을 죽음으로써 보여줄 것이다”라고 거세게 항의하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관리소장은 김씨에게 다음 달부터 나오지 말라며 해고를 통보했고 화가 난 그는 기름통을 들고 경비실을 찾아가 자살하겠다며 난동을 부렸다.

 자살 이틀 전  아침에 출근한 후 나이 어린 소장에게 불려가 심하게 문책을 당했다. 주변 동료들의 진술에 따르면 “저녁에 있었던 화재 사고로 인해 인격적인 경멸과 모멸감을 느낄 정도의 심한 말을 들었다”며 김씨가 많이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자살 사흘 전  새벽 3시쯤 김씨가 야간경비 일을 하던 중 보일러 배관에 이상이 생겼고 기름을 담아두었던 보관통에서 기름이 누출되면서 화재가 발생했다. 119가 출동해 화재 진압을 했고 영하의 추운 날씨에 아파트 전체가 추위에 떨어야만 했다. 김씨도 손에 화상을 입었지만 상황이 너무 급해 치료를 받지 못했다. 이 소식을 들은 부인이 관리실로 찾아왔고 김씨가 입주자 대표와 관리소장에게 야단 맞는 장면을 목격했다. 본인도 상처를 입었지만 치료를 받지 못했고 사건 수습이 끝난 밤 9시가 넘어서야 퇴근을 했다.

 자살 나흘 전  김씨는 여느 때처럼 야간경비 업무를 하기 위해 저녁 6시쯤 식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전날엔 나이가 한참 어린 관리소장으로부터 경비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동료 경비원들 앞에서 핀잔을 듣고 포장마차에서 만취할 때까지 혼자 술을 마셨다.

 자살 닷새 전  경비 일을 보던 중 김씨에게 불만이 있었던 입주민 몇몇이 새벽에 경비실로 찾아와 횡포를 부렸다. 늙어서 분위기 파악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면서 여기서 계속 일을 하려면 인사성이 밝아야 한다고 욕설을 퍼붓고 음식을 얼굴에 던졌다.

 자살 2주 전  김씨가 귀가 후 부인에게 관리소장과의 관계에 어려움이 있어 힘들다고 토로했다. 경비원을 시작하면서부터 계속 자기만 못살게 군다며 울먹였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늦잠을 자 지각을 하게 되면서 관리소장으로부터 다시 경고를 받게 됐다.

 자살 3주 전  김씨가 설 명절에 고향 춘천을 갔다가 지인들에게 회사생활이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다. 아파트 관리소장이 김씨의 대리인으로 지정돼 있던 부인을 불러서 택배 분실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며 이에 대해 각서를 쓰도록 한 것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관리소장에 대한 불만을 가족에게 토로하며 경비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자살 1~7개월 전  관리소장이 김씨를 자주 불러서 업무상 과실이 반복된다고 문책을 했다. 김씨에게 각서를 쓰게 했을 뿐 아니라 대리인으로 부인을 지정하게 해서 부차적인 책임도 묻게 했다. 이후에도 불리한 조건을 담은 각서를 쓰게 하면서 동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무안을 줬다. 억울한 상황을 주변 동료들이 몰라주는 것에 대해 서운해했다. 이때부터 퇴근 후 혼자 술을 마시는 횟수가 많아졌다.

 자살 1년 7개월 전  건강했던 어머니가 췌장암으로 갑자기 사망했다. 남겨놓은 재산 때문에 형제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고 이후 형제들 간 왕래가 완전히 끊어졌다. 재산 분할 소송이 이어지면서 평소에 믿고 의지했던 형의 비방과 친척들의 따돌림에 실망하며 괴로워했다. 야간 근무를 하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담배를 피우던 학생들에게 야단을 쳤다. 이후 입주민인 부모가 경비실을 찾아와서는 “무슨 자격으로 내 자식에게 간섭하느냐”며 욕설을 퍼부었다.

 자살 1년 6개월~2년 전  고인의 어머니가 췌장암이 발생한 이후 김씨가 병 수발을 도맡기 시작했지만 김씨도 평소 앓아왔던 고혈압이 악화되면서 2주간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두 아들에게 짐이 돼 미안하다며 빨리 죽고 싶다고 했다.

 자살 2년 전  형제들 중 고인이 가장 믿고 의지했던 여동생이 간경화가 심해져 투병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간 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증상이 악화돼 사망했다. 여동생의 사망 소식에 한동안 넋 놓고 힘들어하며 지냈다. 하나뿐인 여동생을 잃게 된 것에 상실감이 컸다고 한다.

 자살 3년 전  전기공사에 다니다 5년 일찍 명예퇴직을 하게 되면서 집에만 있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무기력하게 집에만 있던 남편이 기운이 없어 보이자 부인이 아파트 경비 일을 권유했다. 경비 일을 시작할 즈음에는 동료나 소장 과 사이가 좋았다.

 자살 13년 전  직장에서 일을 하다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당시 뇌수술을 받은 후부터 성격과 행동이 많이 바뀌었다. 평소 조용하고 사교성 있던 그였지만 수술 후에는 기분 변화가 심해졌고 사람들을 의심하며 공격적으로 변했다. 가족들 간에도 마찰이 심해졌고 부인과 갈등이 깊어졌다.

2014년 11월11일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열린 분신 경비원 이 아무개씨 노제에서 민주노총 관계자가 이씨의 마지막 근무지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자살 경로를 통해 확인한 위험 요인

 만성적 위험 요인 (CHRONIC RISK FACTOR) 

첫 번째, 2년 사이에 부모 및 형제가 사망해 느낀 상실 경험이 있었다. 형제들 중 가깝게 지냈던 여동생이 간 질환으로 갑자기 사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 또한 췌장암으로 사망하면서 심적 우울감이 심해졌다.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한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다. 2년 사이에 자신이 가장 믿고 따랐던 가족 구성원들이 죽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재산 분할 문제로 인해 형제들 간 다툼이 생겼다. 1년 넘게 재산에 대한 형제들 간의 법정 다툼이 벌어졌고 둘째였던 김씨는 형제들 간의 관계를 정리해보려고 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관리소장과의 관계 악화가 있었다. 김씨는 2년 넘도록 관리소장과의 관계로 힘들어했다. 그에게 업무상 과실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며 두 차례 이상 불리한 각서를 쓰게 했고 인간으로서 모멸감을 느끼게 했다.

 급성 및 촉발 위험 요인(ACUTE RISK FACTOR) 

김씨가 자살하기 3일 전 아파트 내 지하 보일러실에서 기름 누출로 화재가 발생했고 이 사건에 대해 관리소장이 그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돌리며 법률상 손배소를 제기하려고 했다. 김씨는 결백을 주장했지만 아무도 그를 믿어주지 않았다. 결국 해당 사건으로 인해 실직을 당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고 이로 인해 심한 분노와 배신감을 느꼈다.

미국자살예방센터에서 자살과 관련한 위험성을 평가하기 위해 만든 10가지 자살 위험 요인을 첫 글자만 따서 ‘IS PATH WARM’이라고 한다. 김씨는 사망 하루 전 경찰서에서 자살에 대해 언급하는 등 자살 관념이 분명 존재했다(Ideation). 최근 들어 술 마시는 것을 좋아했는데 알코올 중독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술 마시는 횟수가 급증하면서 귀가 시간이 늦어졌다(Substance abuse). 최근 경비 업무를 하면서 스트레스가 가중됐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면증 증세가 나타났다(Anxiety). 부인에게 관리소장의 의심과 형제들 간의 다툼과 관련해 현 상황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다고 표현했다(Trapped).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무망감(無望感)이 두드러졌다(Hopelessness). 친구와 회사 동료, 그리고 형제들과의 관계에서 위축되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Withdrawal). 최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신을 배척하는 형제들과 관리소장에 대한 원망과 통제력을 잃은 분노를 표출했다(Anger).

그렇다면 김씨는 왜 이 시간에 이 장소에서 자살을 선택한 것일까. 김씨가 사망 하루 전에도 아파트 근처에서 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직장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알게 됐다. 관리소장 및 동료들에게 자신의 결백과 분노를 표면적으로 보여주기 원했던 것이다. 아파트 직원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자살을 시도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김씨는 사망 하루 전에 벌인 자살 시도로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에서 그에 대한 위험 상황을 판단하고 정신과 및 전문 상담기관에 연계했다면 2차 피해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선 경찰관에 대한 자살 예방 교육 실시 및 상담기관에 대한 연계 정보 제공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김씨가 직장이나 가정에서 공공연하게 죽겠다고 말하며 자살 위험 징후를 드러내 보였지만 실제 자살을 시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직장 및 가족 내에서 자살에 대한 예방 교육이나 적절한 대처 방안을 알고 있었다면 자살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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