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꿀 단 하나의 자동차 될까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04.21 19:19
  • 호수 1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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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 만에 32만5000건 예약 폭죽, ‘모델3’의 열풍 이끄는 테슬라의 혁신

지난해 10월14일, 독일 레닌겐에 연구센터가 하나 세워졌다. 지그재그로 엇갈리게 생긴 모습으로 눈길을 끄는 이 건물의 탄생을 축하해주기 위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직접 레닌겐을 찾았을 정도니 예사로운 빌딩은 아니었을 터다. 건물의 왼쪽 꼭대기에는 이 건물의 정체를 알려주는 ‘보쉬(BOCSH)’라는 로고가 입체적으로 박혀 있었다.

보쉬는 세계 1위의 자동차부품업체다. 이 흥미로운 건물은 보쉬가 3억1000만 유로, 우리 돈 약 4000억원을 들여 만들었다. 이 건물에는 약 1700명의 연구자가 모여 여러 가지 연구를 계획 중인데, 그중에는 전통의 자동차부품회사라고 보기 어려운 혁신적인 연구들이 진행된다. 자동운전 및 IoT(Internet of Things·사물인터넷), 전기자동차 등 폭넓은 분야를 파고들 계획이다.

ⓒ 시사저널 고성준

보쉬가 가진 연구소는 이게 전부가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보쉬가 거느리고 있는 자동차 관련 연구진과 기술진은 약 3만4000명이다. 그리고 이들 중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1만여 명이 흔히 말하는 소프트웨어와 관련한 일을 한다. 자동차부품회사에 소프트웨어 관련자가 왜 이리 많을까. 보쉬의 변화는 자동차의 변화다. 앞으로는 내연기관, 즉 엔진 대신 수천만 줄 이상으로 구성돼 있는 코드가 만들어낸 전기차가 대세가 될 거라는 흐름 말이다.

그리고 이런 혁신은 지금 ‘테슬라모터스’(테슬라)가 이끈다. 2003년에 설립된 미국의 전기자동차 전문 회사 테슬라는 편견을 파괴하고 다닌다. 지난 3월31일 사전 예약을 실시한 테슬라의 네 번째 라인업 ‘모델3’는 일주일 만에 전 세계에서 32만5000대의 예약을 받았다. 매출액으로 환산하면 약 16조원 규모다. 테슬라의 보급형 전기차가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말이다. 전기차 보급에 회의적이던 세간의 평가를 뒤집은 ‘도장 깨기’다.

무옵션의 경우 모델3의 가격은 고급 세단인 모델S의 절반 정도인 3만5000달러(약 4000만원)로 책정됐다. 이 차를 만약 미국에서 산다면 약 7500달러(약 850만원)의 정부 보조금이 제공된다. 우리 정부도 현재 전기차를 살 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올해 기준으로 1200만원이다. 테슬라에 보조금을 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이 예약 대열에 합류했다.

서울 상수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성국씨(38)도 그중 하나다. 1000달러의 보증금을 내고 아직 본 적도 없는 차를 테슬라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했다. 현대차 ‘그랜저HG’를 보유한 그는 “모델3만 들어오면 그랜저를 처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부를 나름 했다. 모델S의 축소형이라 그런지 디자인이 잘 빠졌다. 일산(이씨의 집)과 상수동을 왔다 갔다 하는 게 대부분이라 주행거리와 충전 여부 등을 고려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보급형이라고 하지만 이 차, 장난이 아니다. 차량 속도는 시속 60마일(약 시속 96km)에 도달하는 데 6초면 충분하다. 완충 시 주행거리도 346km에 달한다. 테슬라의 CEO(최고경영자) 엘론 머스크는 “대량 생산을 통해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는 자동차”라고 이 차를 정의했다. 이씨는 여기에 좀 더 덧붙일 만한 말을 했다. “저렴하지만 가격 이상의 상징적인 게 있다. 이걸 사면 앞서가는 기분이 든다.”


애플에서 테슬라로 이적하는 직장인들

현대차도 만들고, 닛산도 만들고, BMW도 만드는 게 전기차다. 다른 전기차도 많은데 유독 사람들은 테슬라의 전기차를 ‘핫(hot)’하게 생각한다. 마치 모두가 피처폰을 쓸 때 나 홀로 스마트폰을 쓰면서 느낄 수 있는 으쓱거림을 테슬라는 갖고 있다. 그리고 그게 성공의 요인이다. 과연 어디에서 오는 다름일까.

일단 테슬라는 욕망을 자극하는 마케팅에 능하다. 이미 시판된 테슬라 모델S는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급차 중 하나가 됐다. 미국 자동차 정보 사이트인 ‘에드먼즈닷컴’에 따르면, 2013년 조사에서 미국의 고소득 지역 중 8곳에서 자동차 시장 점유율 1위가 테슬라였다고 한다. 8곳 중 6곳이 실리콘밸리였고 2곳은 로스앤젤레스 근처였다. 실리콘밸리 중에서도 최고의 억만장자들이 모여 산다는, 미국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애서튼에서 테슬라의 시장점유율은 15%가 넘었다. 그냥 고급차라는 이유만으로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테슬라는 슈퍼리치들의 친환경 자부심을 자극했다. 실리콘밸리의 부호들 중에는 친환경 애호가가 많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차원에서 그런 사람도 있고 기업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 선택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테슬라의 CEO인 엘론 머스크 역시 슈퍼리치이자 친환경을 선호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그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었고, 친환경과 럭셔리를 잘 혼합한 테슬라의 브랜드 전략을 추구해 두터우면서도 부유한 ‘얼리어답터’ 층을 형성해냈다.

전기차는 친환경이다. 그럼 럭셔리는? 생산량이 적고 새로운 기술을 사용한 제품의 가격은 당연히 높다. 보통 배터리가 큰 전기차는 가솔린차보다 무겁고 주행거리가 짧기 때문에 전통의 자동차 메이커들은 소형 타운카, 즉 ‘친환경 소형차’를 시장에 내놓는다. 반면 테슬라는 거꾸로 ‘폭발적인 가속이 가능한 최고급차’를 첫 생산품으로 내놓았고, 이게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의 유명 인사들에게 먹혔다. 2008년 등장한 스포츠카 ‘로드스터’부터 2012년에 내놓은 고급 세단 ‘모델S’는 이런 전략 아래 상류층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테슬라의 브랜드도 덩달아 고급화됐다.

상품만 어필한 게 아니다. 회사도 매력적으로 다가섰다. 당장 이력서를 들고 테슬라로 몰려드는 지원자가 수없이 많았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테슬라가 캘리포니아 프리몬트에 위치한 테슬라 공장을 개방하고, 일자리 박람회를 개최하기로 했더니 난리가 났다. 이른 아침부터 취업을 원하는 수백 명이 줄지어 서 있었고, 행사장으로 향하는 고속도로가 정체에 시달렸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자 테슬라는 취업박람회를 중지하고 인터넷에서 접수를 받는 방법으로 급히 바꿔야 했다. 이 정도로 수많은 젊은 인재가 테슬라로 향한다. 그 사람들은 테슬라에서 ‘비전’을 본다.

취업준비생뿐만이 아니다. 애플의 혁신적인 신사옥으로 출근하는 걸 동경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그런 애플 이상으로 매력적인 곳이 요즘은 엘론 머스크의 테슬라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을 관두고 테슬라로 이동하는 직원의 수가 적지 않다고 한다. 2013년 10월 애플의 더그 필드 제품개발담당 부사장이 테슬라로 이적했다. 이 사람, 맥북에어나 맥북프로 등의 하드웨어를 디자인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인데, 엘론 머스크가 부르자 지체 없이 옮겼다. 필드 부사장의 이동은 실리콘밸리에서 큰 화젯거리가 됐다. 테슬라의 격이 상당하다는 증거가 됐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애플에서 테슬라로 옮긴 직원 수가 150명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테슬라의 비전만큼 중요한 건 그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다. 실리콘밸리의 우수한 기술자들에게 엘론 머스크 CEO는 단연 매력적인 인물이다. 블룸버그는 “본래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머스크 CEO와의 최종 면접에서 그의 직관 능력과 섬세함에 순식간에 매료돼 테슬라 이적을 결단한 기술자도 있다”고 전했다. 잡스가 없는 애플의 기술자들에게는 머스크가 이끄는 테슬라 쪽이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뜻이다.

2015년 12월2일 파리에서 열린 COP21(기후변화협약 관련 최종 의사결정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는 엘론 머스트 테슬라 CEO. 그 역시 슈퍼리치이자 친환경주의자다. ⓒ AP 연합


잡스 없는 실리콘밸리에 머스크가 있다

아이폰을 만든 잡스에게서 사용자들이 뉴디바이스의 미래를 보듯 머스크에게서도 비슷한 걸 찾는다. 자동차의 미래다. 머스크는 잡스보다 더 과감한 방법으로 전기차 양산 시장을 대세로 만들려고 한다. 손에 쥔 것들을 내려놓는 형태를 택했다.

“전기차 기술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래서 결정하게 됐다.” 2014년 6월12일 테슬라는 자사가 보유한 약 200개의 특허를 개방한다고 발표했다. 실리콘밸리가 술렁일 만한 일이었다. 전기차는 그동안 닛산이나 제너럴모터스(GM), 미쓰비시 등 자동차업체들의 차기 먹거리로 추진돼왔다. 하지만 연간 1억대 정도가 팔리는 전 세계 시장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확산의 가장 큰 장애물은 충전 인프라였다.

테슬라는 배터리 충전 시간이라는 취약점을 해결하기 위해 무료 급속충전소인 ‘슈퍼차저 스테이션’을 구축하고 있다. 주유소 수준으로 이런 스테이션을 세계 전역에 설치하려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세빈로젠펀드의 스티브 도미니트 투자 전문가는 “이대로 테슬라 혼자만 인프라 투자를 계속할 경우, 회사 경영이 될 수 없다. 자신들의 특허를 다른 기업들이 사용해 연구·개발 비용을 억제하는 대신, 전기차 생산을 증가시켜 이런 충전 인프라 정비를 가속화하기 위해 머스크가 특허를 내려놓는 결단을 했다”고 분석했다. 머스크라는 카리스마형 리더가 어떤 식으로 비전을 보여주는지 알 수 있는 사례다.

이런 마케팅과 매력만으로 테슬라 바람을 설명할 수 있을까. 뒤따르는 기술력이 필요하다. 전기차의 핵심이자 생명선은 배터리다. 실용적인 주행거리, 그리고 안전성이 뒤따라야 한다. 전자신문 미래기술연구센터(ETRC)와 특허 분석 전문 기업인 ‘광개토연구소’가 공동 발행한 IP노믹스 보고서 ‘테슬라, 거품인가?’에 따르면, 테슬라 특허 160건 중 111건 이상이 배터리 관련 기술이었다. 테슬라 특허의 총 인용 중 약 65%도 배터리 특허 인용이었다. 그만큼 테슬라의 배터리 기술에 관심이 높다는 얘기다. 알기 쉽게 비교해보면 답이 나온다. 닛산의 전기차 리프의 주행거리는 249km, BMW i3의 주행거리는 132km다. 6월에 출시될 현대차의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180km다. 반면 테슬라의 모델3는 346km다.

열풍이 거세면 의문도 따르는 법. 지난해 테슬라의 출고 차량 수는 5만658대였다. 이미 받은 예약만 32만5000여 대나 된다. 올해 1분기 역시 테슬라의 목표치인 1만6000대에 모자란 1만4280대를 출고했다. 부품 공급에서 차질이 빚어졌다는 게 테슬라 측의 설명이다. 그렇다 보니 생산량을 크게 늘릴 수 있는 해법에 물음표가 나온다. 설혹 생산의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전기차를 미래로 규정한 벤츠나 구글, 애플 같은 IT(정보기술) 기업의 거인들이 연신 전기차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엘론 머스크는 모델3를 두고 전기차의 대중화를 앞당길 것이라며 “이 자동차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고 말했다.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그 출발대에 테슬라가 섰다.


 

 

ⓒ AP 연합

테슬라에 대한 국내 정보는 꽤나 빈약하다. 실물 없이 마치 인터넷 쇼핑을 하듯 예약을 한 사람도, 살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도 정보에 목말라 한다. 그렇다면 포브스의 한 미국 기자가 쓴 ‘내가 테슬라와 함께 보낸 6개월에 관한 이야기’가 참고 자료가 될 수 있겠다. 실제 경험이니만큼 궁금증은 해소된다. 단, 여기서 등장하는 차는 모델3보다 윗급인 모델S다.

 

1. 터치스크린 테슬라의 상징인 센터에 탑재된 아이패드처럼 생긴 대형 터치스크린이야말로 최고의 기능이다. 전화와 지도, 선루프의 개폐, 인터넷 검색, 음악 재생 등 대부분의 기능을 컨트롤할 수 있다.

2. 놀라운 정숙성 로켓처럼 빠른 가속력은 테슬라가 주는 놀라움이지만 그걸 돋보이게 해주는 것이 정숙함이다.

3. 운행 거리 누구나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충전의 불편함, 그리고 한 번의 충전으로 갈 수 있는 거리다. 모델S는 386km(모델3는 346km)인데, 이것이 충분한가의 문제다. 슈퍼차저에서의 충전은 무료로 100% 충전하는 데 30~40분 정도 걸린다. 집에서 충전하는 데 필요한 전용 콘센트는 550달러(약 62만원)에 설치할 수 있고 하룻밤 정도면 충전이 완료된다. 플러그인하는 데 5초도 걸리지 않는다.

4. 고속도로 주행 고속 운전에서는 배터리가 빨리 소모된다. 캘리포니아 고속도로에서 일반적인 80마일(약 시속 130km)로 주행하면 배터리 소모가 빨라지는 걸 알 수 있었다.

5. 스마트폰 앱 앱을 사용하면 멀리서 미리 에어컨을 켤 수 있고, 겨울에는 출발 전에 차량을 따뜻하게 할 수 있다.

6. 실내 공간 기자는 13세 미만의 자녀가 3명인데, 뒷좌석에 함께 편안하게 앉을 수 있었다(모델3는 이것보다 작다). 테슬라는 기존 자동차 엔진룸이 비어 있기 때문에 트렁크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트렁크가 전면과 후면에 2개 있는 셈이다.

7. 뛰어난 디자인 테슬라에서 내리면 주위의 시선이 느껴진다. 기자의 아내는 “에르메스 가방을 가지고 마을을 걷는 것과 비슷하다”고 비유했다.

8. 자동운전 기능 테슬라를 구입했을 때 영업맨이 자동운전 패키지를 추천했는데 운전의 스릴을 포기하지 못하고 거절했다. 앞으로 마음이 바뀐다면 무선통신을 통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하면 된다. 3000달러를 지불하면 자동운전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하루면 사용이 가능하니 다음 날 아침에는 원격 조종을 통해 주차장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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