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에도 ‘빈익빈 부익부’
  • 원태영 시사비즈 기자 (won@sisabiz.com)
  • 승인 2016.04.21 19:23
  • 호수 1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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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넷마블·엔씨 등 ‘빅3’가 장악…RPG 게임 편중 탓에 중소업계 개발환경 더 악화

국내 게임업계도 다른 업종처럼 양극화라는 중병에 시달리고 있다. 대형 업체와 중견·중소 게임업체 간 실적 차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의 양극화는 심각하다. 중소업체가 설 자리가 아예 사라지고 있다. 모바일 게임 시장이 대형 역할수행게임(RPG) 위주로 재편된 탓이다. 자본력과 유통망을 보유한 대형 업체들이 대형 RPG들을 개발·출시해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중소 게임업체들은 이를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애니팡’ ‘쿠키런’ 대박 이후 모방 게임 쏟아져

과거 퍼즐 게임 등 여러 장르가 골고루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3~4년 전만 해도 중소 게임사가 만든 모바일 게임들이 매출 상위권을 차지했다. 대표적인 게임으로는 ‘선데이토즈’가 2012년 출시한 ‘애니팡’을 꼽을 수 있다. 애니팡은 모바일 퍼즐게임으로 한때 하루 1000만명이 즐길 정도로 대성공을 거뒀다. 이에 힘입어 선데이토즈는 2012년 238억원에서 2013년 476억원, 2014년 1441억원으로 매출을 늘렸다.

선데이토즈의 성장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애니팡을 모방한 게임들이 쏟아지면서 승승장구하던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선데이토즈는 지난해 매출 797억원을 거뒀다. 매출이 전년 대비 44.7%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255억원으로 58.1%나 줄어들었다. ‘데브시스터즈’의 횡방향 어드벤처 게임인 ‘쿠키런’도 사정이 비슷하다. 2013년 출시되자마자 매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지난해 매출은 195억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71.9%나 줄어들었다. 영업손실도 41억원을 기록해 적자로 반전했다.

반면 넥슨·넷마블 등 대형 게임업체는 모바일 게임을 기반으로 영업이익을 크게 늘렸다. 넥슨은 지난해 매출 1조8086억원, 영업이익 5921억원을 거뒀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10%와 37%씩 늘어났다. 넥슨은 지난해 3월 모바일게임사업실을 본부로 승격시키며 모바일 게임 사업 역량을 강화했다. 지난해 11월 액션 RPG ‘히트’를 출시했다. 이 게임은 내려받기 누적 횟수 500만건을 넘겼다. 구글플레이에서 매출 5위를 기록하고 있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도미네이션즈’ 역시 내려받기 누적 횟수가 2000만건을 돌파했다. 넥슨의 모바일 게임 매출은 지난해 전년 대비 23% 증가했다. 특히 4분기 매출이 총매출의 29%를 차지했다.

넷마블도 지난해 사상 처음 매출 1조원을 넘겨 넥슨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2014년 출시된 ‘세븐나이츠’는 내려받기 누적 횟수 1350만건을 넘어섰고, 총매출 1위를 38일이나 기록했다. ‘모두의 마블’ 역시 글로벌 내려받기 2억건, 누적 매출 5000억원 등을 기록하며 넷마블 영업실적을 견인했다. 이 밖에도 컴투스와 웹젠은 대표 모바일 게임 ‘서머너즈워’와 ‘뮤오리진’을 출시해 흥행에 성공했다. 두 회사의 영업이익은 각각 64%(1659억원)와 425%(747억원)로 급증했다.

현재 국내 게임업계는 매출액 기준으로 ‘빅3’인 넥슨, 넷마블게임즈, 엔씨소프트 등이 이끌고 있다. 빅3가 상위 게임업체 20개 매출 총합의 60%가량을 차지한다. 업계에선 앞으로 대형사와 중소형사 간 격차가 더 벌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모바일  게임은 PC 온라인 게임에 비해 수명이 짧다 보니 신작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대형사가 유리하다.


“대형 업체들, 자금난 중소업체 상대 횡포도”

최근에는 액션 RPG가 인기를 끌면서 중소업체들의 여건이 더 악화되고 있다. RPG는 이용자가 게임 속 캐릭터로 분해 레벨을 높이고 아이템을 획득한다. 경쟁 요소를 강조해 게임 장르 중 1인당 결제율(ARPU)이 가장 높은 장르로 꼽힌다. 마케팅업체 ‘애드웨이즈’에 따르면, 지난해 구글플레이 매출 상위 100개 게임을 조사한 결과, RPG 이용자들은 하루 평균 1481원을 소비했다. 퍼즐 장르(158원)에 비해 9.3배나 높았다. 국내 중소업체들은 액션 RPG를 개발하기가 어렵다. 개발 인력과 비용이 많이 투입되는 탓이다. 특히 동시다발적으로 모바일 게임을 쏟아내는 대형 업체에 비해 게임 1~2개에 사활을 거는 중소업체 입장에서는 하나라도 실패하면 회사 존립 자체가 힘들어진다. 한 중소업체 게임개발자 김재형씨(가명·29)는 “유료 아이템을 개발하기 쉽고 마니아층이 많다 보니 RPG가 주류를 이루게 됐다”며 “비슷한 종류의 게임들이 등장하면 결국 광고 싸움으로 이어지는데 중소업체들이 대형 업체들의 물량 공세를 이기긴 어렵다”고 밝혔다.

게임업계 전문가들 상당수는 대형 게임업체들이 국내 게임 시장 여건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대형 업체들이 국내 게임 개발사에 투자하기보다는 싼 맛에 중국 게임들을 한국에 들여와 유통하는 데 더 혈안인 탓이다. 또 대형 업체들이 무리한 조건을 요구하기 일쑤라 중소 게임 개발사들이 여기에 휘둘리는 경우도 많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대형 업체들이 게임 유통을 주도하다 보니 중소업체들은 대형 유통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황성익 모바일게임협회 회장은 “대형 게임업체들이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업체들을 상대로 횡포를 부리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황 회장은 또 “업계 양극화가 극에 달한 상황”이라며 “정부와 투자업체가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대형 게임사에만 집중 투자하고 있어 경쟁력 있는 중소 게임업체들이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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