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조선업계에 위기의식 있는지 의문”
  • 박성의 시사비즈 기자 (sincerity@sisabiz.com)
  • 승인 2016.04.28 18:00
  • 호수 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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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해양산업 전문가 5인 긴급 진단 “유가 오르더라도 혁신 없으면 회생 난망”

조선·해양산업의 세계 최강이라던 대한민국의 체면이 요즘 말이 아니다. 세계무대를 호령하던 위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조선 대형 3사(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는 지난해 영업손실 8조원가량을 기록했다. 사상 최대 적자 폭이다. 조선 3사가 조 단위 적자를 내기는 처음이다. 이 와중에 일본은 ‘엔저(低)’를 등에 업었고, 중국은 저가 수주 공세에 나섰다. 장밋빛 미래를 자랑하던 해양플랜트는 조선사 실적 악화의 주범으로 전락했다. 게다가 저유가 기조 탓에 발주마저 말랐다.

조선 대형 3사는 올해 흑자 전환을 노린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올 1분기에 국내 조선업계는 고작 선박 9척을 수주하는 데 그쳤다. 대형 조선사 중엔 현대중공업만이 6척을 수주했다. 나머지 대형 조선사들은 한 척도 수주하지 못했다. 중소 조선사인 연수중공업이 3척을 수주했다. 국내 조선·해양 전문가들은 이 같은 위기가 장기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국제유가는 당분간 반등을 기대하기 힘든 형편이고, ‘선복량(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총량)’ 과잉도 심각하다는 분석이다.

3월8일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크레인을 이용해 선박 블록을 탑재하는 등 건조 작업이 한창이다. ⓒ 연합뉴스


“中·日 추격에 지나치게 겁먹을 필요 없어”

양종서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올해 조선사 수주 상황이 예상보다 좋지 않다. 선박 공급이 과잉 상태이고 물동량도 전 세계적으로 둔화되고 있다. 선박의 경우, 2010년부터 수요보다 공급이 더 많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홍성인 산업연구원(KIET) 연구위원은 “전방 산업인 해운산업이 불황이다. 선복량 과잉이 심각해 컨테이너선과 벌크선의 운임과 용선지수가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선복 과잉이 해소돼야 신규 선박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경제가 고속 성장기를 지나 중고속 성장기, 이른바 ‘신창타이(新常態)’ 시대에 접어든 영향도 국내 조선 경기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 경제 상황에 따라 해상 물동량이 감소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다만 중국 국영 조선소의 경쟁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강종수 한국해양플랜트전문기업협회(KAOPE) 회장은 “중국은 국가 정책으로 자국 장비 탑재를 요구하고 있다. 생산이 불가능한 장비도 중국 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고수한다. 중국이 5~10년 내 해양플랜트 시장에서 세계 1위로 도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양종서 선임연구원은 “(중국에) 겁먹을 것 없다. 중국 벌크선 부문은 경쟁력이 있지만, 한국이 신경 쓸 수준은 아니다. 특히 해양산업은 현장 인력 노하우나 기술력이 중요하다. 중국은 그 부분이 부족하다. 기자재와 물류도 한국보다 처진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조선·해양 기술력도 한국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 양종서 선임연구원은 “일본은 1980년대 후반 조선사를 통폐합하면서 해양플랜트와 연구·개발 부문을 포기했다. 그에 따라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한국 조선소 기술을 따라잡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일본 조선사는 아베 정권 들어 엔저를 등에 업고 가격 경쟁력을 무섭게 끌어올렸다. LNG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에서 일본이 한국의 강력한 라이벌로 부상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홍성인 연구위원은 “일본 중형급 업체들은 벌크선에 집중하고 있다. 미쓰비시·미쓰이 등은 해양산업 진입 의사가 없어 보인다. 다만 이마바리·JMU·쓰네이시 등이 자국 물량을 기반으로 LNG선, 극초대형 컨테이너선 등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강종수 회장은 “해양플랜트에는 상당한 고급 기술과 생산 인력이 필요하다. 특성상 아웃소싱할 수 없는 건조 공법이다. 신규 투자비용이 많이 든다. 이 때문에 일본은 고부가가치 특수 선박에 집중할 듯하다”고 전망했다.


“적자 경영 책임지고 물러난 임원 있나?”

전문가들이 꼽은 조선·해양산업 회복의 키워드는 ‘유가 60달러’다. 유가가 언제 반등할지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선까지 올라야 주요 선주와 석유회사들이 선박을 신규 발주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양종서 선임연구원은 “현재는 고급유(油)가 가스보다 저렴할 정도로 유가가 바닥이다. 선주들이 LNG선을 발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유가가 60달러 선을 회복하면 LNG선을 비롯해 선박 발주도 회복세를 탈 것”이라고 밝혔다. 강종수 회장은 “해양산업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60달러다. 유가가 배럴당 60달러를 넘지 못하면 주요 석유업체들이 해양산업 발주를 보류할 가능성이 크다. 내년 원유 생산량 감축안이 나오지 않으면 유가가 배럴당 50달러를 밑돌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조선·해양산업의 위기가 비단 유가 때문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정부와 기업 모두 외부 환경이 호의적으로 바뀌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자세를 버리고, 위기를 내부 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보원 카이스트 교수는 “지금 조선업계가 진정으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지 의문이다. 적자경영을 책임지고 물러난 임원이 거의 없다. 직영 업체는 외부 업체에 문제를 전가시키고 있다. 조선사가 대주주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 이사회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핵심 기술을 개발하거나 국산화할 수 있어야 한다. 경영자들은 외국 기업 관계자들과 수주 협상을 벌일 때 계약서에 불리한 조항을 넣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정부는 장기적이고 일관되게 조선사를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조선업계는 정신 차려야 한다. 조선 3사의 운명은 2년 내에 결정될 것이다. 국내 조선사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새 시장을 창조할 수 있는 혁신을 시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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