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경쟁이 자숙의 룰 기준마저 허물었다
  • 정덕현 | 대중문화 평론가 (.)
  • 승인 2016.05.05 18:30
  • 호수 1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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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복귀한 탁재훈 논란 원칙 없는 ‘물의 연예인 복귀’ 과연 괜찮을까

최근 탁재훈이 방송에 다시 복귀했다. 2013년 불법 도박 혐의로 모든 방송에서 하차해 2년여의 자숙기간을 보낸 탁재훈이다. 그런데 탁재훈의 복귀는 마치 준비된 시나리오라도 있는 듯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했고, tvN <SNL코리아>에 호스트로 나오더니, 채널A의 새 예능 프로그램인 <오늘부터 대학생>에 고정으로 투입되었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방영된 <음악의 신2>는 5월 중에 방영 예정이다. 사실 다른 연예인들이 자숙 후 복귀했던 기존 방식을 떠올려보면, 지금의 탁재훈은 그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대체로 케이블이나 종편 채널을 우회하는 방식을 쓰지도 않았고, 거의 동시에 지상파·케이블·종편을 아우르며 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상파가 그를 서둘러 복귀시키는 모양새는 낯설게 다가왔다. 과거 김구라가 자숙기간을 거쳐 복귀할 때도 많은 이들이 <라디오스타> 합류를 원했지만, 그는 케이블과 종편 JTBC를 거친 후에야 MBC에 입성했다. 이수근도 마찬가지다. 역시 불법 도박 혐의로 2년여의 자숙기간을 거친 그는 KBS N SPORTS의 <죽방전설>로 다시 활동을 시작해 tvN 인터넷 방송 <신서유기>와 JTBC <아는 형님>을 거치면서 비로소 KBS <동네스타 전국방송 내보내기>로 들어왔다.

ⓒ m·net


비지상파에 밀리는 예능 생태계 현상

케이블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지상파에서 물의를 일으켰던 예능인들의 복귀 수순은 확실히 이전보다 과감해지고 있다. 우회하지 않고 바로 지상파로 뛰어들게 된 사정은 역시 방송사 간의 경쟁 때문이다. 비(非)지상파 우회 전략은 결과적으로 비지상파 예능을 강화시켜주는 경우도 있었다. 김구라가 대표적이다. 그는 <썰전> 등을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 중 하나인 시사적 감각을 예능과 엮어내는 참신함을 보여주면서 JTBC 예능에 일조하고 있다. 지상파와 비지상파에 놓여 있는 어떤 차등적인 틈새는 이제 거의 사라져버렸다. 이러니 비지상파로 우회하는 복귀 예능인들을 바라보는 지상파 예능 제작자들의 시선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탁재훈의 복귀 과정이 이렇듯 전 방위적이고 빠를 수 있는 건 그만큼 달라진 예능 생태계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방송사들의 사정일 뿐, 대중들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다. 지상파는 어쨌든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공영적 성격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을 저질렀던 예능인들의 복귀 시점을 놓고 지상파들이 마치 스카우트(?)하듯 달려드는 모양새는 자칫 ‘도덕적 해이’를 은연중에 전파할 위험성이 있다.

요즘은 여기서 더 나아가 물의를 일으키고도 자숙하지 않고 활동을 강행하는 연예인도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장동민이다. 그는 지난해, 과거 팟캐스트 방송에서의 여성 비하 발언과 삼풍백화점 사고 생존자 비하 발언으로 엄청난 논란을 야기했다. 그래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사과만 했을 뿐, 자숙기간을 갖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당시 그는 KBS <나를 돌아봐>에서만 하차했을 뿐, 종편·케이블인 <코미디 빅리그>나 <크라임씬2> <방송국의 시간을 팝니다> <더 지니어스> <할매네 로봇> <엄마가 보고 있다> <집밥 백선생2> 등에 계속 출연했다. 이른바 방송을 통해 웃음을 주는 것이 자신의 자숙 방식이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이런 그에게 <코미디 빅리그>는 ‘갓동민’이라는 캐릭터까지 부여해주었다.

하지만 올해 <코미디 빅리그>의 ‘충청도의 힘’이라는 코너에서 한자녀 가정 아이를 조롱하는 내용이 방영되면서 자신이 말했던 ‘자숙 방식’이 얼마나 자의적인 변명에 불과했는가가 드러났다. 마침 KBS는 그를 다시 <나를 돌아봐>에 합류시키는 수순을 밟고 있었다. 이게 가능했던 건 <나를 돌아봐>의 외주제작사인 ‘코엔’이 바로 장동민의 소속사였기 때문이다. 결국 장동민의 <나를 돌아봐> 복귀는 무산되었지만, KBS 역시 자숙 없이 방송을 강행해온 그를 슬쩍 받아주려 했다는 혐의를 피할 수 없었다. 장동민은 이번 논란에서도 그저 해당 프로그램에서 하차했을 뿐 다른 프로그램들은 그대로 강행했고, 심지어 새로 만들어진 <오늘부터 대학생> <렛츠고 시간탐험대3>에 연거푸 출연하고 있다. 형평성에도 맞지 않고 또한 힘이 있다면 잘못을 저질러도 아무런 제재가 없는 사회의 모습으로 비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가수·배우들은 자숙기간조차도 없어

형평성 문제는 또 있다. 예능인들은 방송에서 하차하는 게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지만, 가수나 배우는 방송이 주 무대가 아닐 수 있기 때문에 하차나 자숙기간이 의미가 없어진다. 예를 들어 강호동이 세금 문제로 논란이 됐을 때, 같은 세금 문제로 논란을 겪은 인순이는 자숙기간이라는 것이 딱히 없었다. 음악 활동을 계속했고, 그러다 음악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모습을 보였다. 배우도 마찬가지다. 사생활 스캔들로 큰 논란을 일으켰던 이병헌은 아무런 자숙기간이 없었다. 그는 국내외를 오가며 할리우드 영화 <터미네이터 제네시스> <협녀: 칼의 기억> 등으로 얼굴을 내밀었고, <내부자들>에서 인상적인 조폭 연기를 통해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사실 자숙과 기간, 그리고 복귀 방식에 있어 정해진 룰 같은 건 없다. 중요한 것은 대중의 사랑을 통해 살아가는 연예인들이 적어도 논란을 일으켰을 때는 그만한 대가를 치르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점이다. 그래도 몇 년 전까지는 논란이 생기면 스스로 하차하고 자숙기간을 갖는 것이 하나의 정해진 룰처럼 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그 룰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상파와 비지상파 구분 없이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경쟁과, 새로운 예능인들을 발굴하기보다는 한때 물의를 일으켰어도 기성 예능인에 집착하는 방송의 안일함 등이 뒤섞여 은연중에 지켜지던 룰이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된 균열은 어쩌면 엄청난 대중들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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