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제품 판매만 했을 뿐 성분은 몰라”
  • 노진섭·김경민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05.19 11:06
  • 호수 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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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경 가습기 살균제 ‘인체에 치명적’ ... 정부 ‘특별대우’ 의혹

2010년 10월 미국 환경보호청(EPA)에 살충제 제품이 등록됐다.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아크 우드 프로텍션이라는 회사가 목조 주택과 가구에 생기는 벌레를 제거할 목적으로 개발한 제품이다. 이 업체가 EPA에 제출한 서류를 시사저널이 입수해보니 ‘건강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EPA는 관련법에 따라 살충제 등록을 취소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그만큼 이 제품은 건강에 유해하다는 것이다. 

 

이 물질이 눈과 피부에 닿으면 손상을 입을 수 있고, 심지어 흡입하는 것도 위험하다는 경고가 문건에 있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행동 요령까지 포함돼 있다. 예컨대 이 물질을 흡입한 경우 환자를 신선한 공기가 있는 곳으로 옮긴 후 호흡 곤란 증세를 보이면 911구조대, 독극물 통제센터, 의료진에게 연락하도록 돼 있다.

 

이 살충제의 주요 성분은 강력한 살충 물질인 CMIT(농도 10%)와 MIT(3.8%)다. 상당수의 한국인이 오랜 기간 가습기 물에 넣어 흡입해왔던 가습기 살균제(가습기메이트)의 주성분이다. SK케미칼(당시 유공)은 1994년 ‘가습기메이트’라는 제품을 개발해 시판하면서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까지 붙였다. ‘내 아기를 위해서!’라는 당시 광고 문구로 아이가 있는 가정의 필수품임을 강조했다. 이 업체는 CMIT·MIT를 0.5% 희석한 살균제로 가습기 물에 있는 콜레라·포도상구균 등을 100% 없앨 수 있고 인체에는 해가 없다고 발표했다. 2001년 애경산업이 SK케미칼로부터 제품을 납품받아 ‘애경’ 브랜드를 달아 팔아왔다. 

 

 

 


 

살충제를 가습기에 넣은 셈

 

시사저널이 입수한 질병관리본부의 살균제 흡입 시험 보고서에 따르면, 이 제품은 물 98%에 약 1%의 살균 성분으로 구성돼 있다. 화학 전문가에 따르면, CMIT·MIT는 20% 정도 돼야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 있는 1%가량의 농도로는 살균 효과를 얻을 수 없다. 그렇지만 적은 양이라도 사람에게는 건강상 피해를 줄 만큼 독성이 강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애경이 판매하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CMIT·MIT에 대해 1992년부터 2012년까지 20년 동안 유해성 심사를 면제해줬다. 1991년 제정된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시행 이전에 제조 또는 수입된 화학물질이 라는 이유에서다. 그렇더라도 유해성이 확인될 경우 유독물로 지정할 수는 있었다. EPA와 유럽연합이 1998년 이 물질에 대한 흡입 독성을 발표했지만 정부는 손을 놓은 채 10년이 흘렀다.

 

2011년 한 대학병원에서 원인 미상의 폐손상 환자들이 나왔다. 역학조사를 벌인 질병관리본부는 살균 물질인 PHMG(또는 PGH)가 들어 있는 옥시 제품은 폐 섬유화와 관련이 있지만, CMIT·MIT 성분이 있는 가습기메이트는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가습기메이트를 제외한, PHMG 성분이 있는 6개 가습기 살균제에 대해서만 수거명령이 내려졌다. 

 

2015년 8월 경찰이 제조업체를 기소해 검찰에 넘길 때도 애경은 그 대상에서 제외됐다. 또 유해성을 확인하는 동물실험에서도 가습기메이트는 ‘특별대우’를 받았다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화학 전문가는 “정부가 최근 동물실험을 할 때 옥시 제품 위주로 시작했고 뒤늦게 애경 제품을 추가했다. 쥐로 3가지 독성 실험을 했는데 옥시 제품은 이 3가지 실험을 모두 했고, 애경 제품은 마지막 1가지 실험만 한 후 폐 섬유화와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낸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CMIT 입자의 크기는 초미세먼지(2.5μm(마이크로미터))보다 작은 1nm(나노미터)다. 1nm는 1μm를 1000분의 1로 자른 크기다. 매우 작은 입자이므로 CMIT는 폐손상은 물론 전신 질환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가습기메이트로 피해를 봤다는 피해자들은 기관지염·후두염·천식·편도염·인두염 등 폐 질환 외의 다양한 병을 앓아온 것으로 정부 조사 결과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임종한 인하대병원 산업의학과 교수는 “태아에게 독성이 전달됐다는 것은 살균 성분이 폐뿐만 아니라 혈액을 따라 다른 장기로도 이동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며 “CMIT는 PHMG보다 입자가 작아서 폐 질환 외에 다른 질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들 “애경 제품으로 27명 사망 추정”

 

 

부산에 사는 박영철씨의 쌍둥이 딸 나원이와 다원이는 지난해 4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의 가장 높은 등급인 1등급(관련성 확실) 판정을 받았다. 태어난 지 100일 즈음부터 사용한 가습기메이트가 원인이었다. 제품을 사용한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다원이에게 호흡기 이상증세가 나타났다. 계속된 기침과 호흡곤란으로 병원을 찾은 다원이는 ‘기흉(폐에 구멍이 생김)’ 진단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나원이의 기관지에도 문제가 생겼다. 숨을 쉬기 어려워했고 결국 폐 섬유화증 진단을 받았다. 

 

2012년 12월 두 살도 되지 않은 나원이는 기관절개술을 받고 기도에 튜브를 삽입했다. “아이들 건강에 좋다고 해서 3~4개월 동안 가습기메이트를 2통 썼다”고 말했다. 가습기메이트 피해자들은 대부분 정부의 피해 조사에서 3등급(가능성 낮음)과 4등급(가능성 거의 없음)으로 분류됐다. 1~2등급 피해자들과 달리 치료와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2015년 8월 애경 제품만을 사용하다 정부의 2차 피해 조사에서 2등급(가능성 높음) 판정을 받은 대구 거주 성인 환자가 사망한 사례가 처음 발생했다. 여기에 나원·다원 자매가 1등급 판정을 받으면서 CMIT·MIT 성분의 위해성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임흥규 환경보건시민센터 팀장은 “정부의 1~2차 조사결과, CMIT·MIT를 원료로 삼은 가습기메이트를 쓰다 사망한 사람은 27명, 생존환자 101명 등 모두 128명의 피해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가습기메이트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에 대해 도의적 책임은 인정한다. 그러나 애경은 완제품을 공급받는 판매원이기 때문에 원료나 재료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제조사인 SK케미칼에 있다. 애경은 제조성분에 대해서는 제품에 표기된 것 이상으로는 아는 바가 없다.” 애경은 가습기메이트의 성분에 대한 책임을 제조사인 SK케미칼로 돌렸다. ‘CMIT·MIT 성분의 유해성에 대해 알고 있었느냐’는 물음에 대해 애경 측은 “성분에 대해서는 제조사에 문의하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그래도 자사의 상호가 붙어서 판매된 제품인데 위해(危害) 성분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게 책임 있는 기업의 태도인가’라는 질문에는 다소 억울하다는 듯한 답변이 돌아왔다. 애경은 판매원으로서 제조사가 공급하는 제품의 안전성에 대한 평가를 믿고 거래했다는 것이다. 애경 관계자는 “유통업체가 자신이 판매하는 모든 상품의 성분까지 일일이 위험성 평가를 할 수는 없다. 이마트도 판매하는 모든 제품의 성분을 확인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순익을 낸 애경은 현재까지 피해자 가족들에게 단 한 차례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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