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흑역사’, 어떻게 좀 해주세요"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05.1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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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힐 권리’ 대리하는 ‘디지털 장의사’ 김호진 산타크루즈 컴퍼니 대표

검색엔진 검색창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보자. 한 칸 띄우고 고향, 출신학교, 나이 등 자신의 인적 사항 하나만 더 적어 엔터(Enter)키를 눌러보자. 아마도 당신 중 누군가는 화들짝 놀랄 거다. "나의 '흑역사(지우고 싶은 기억)'가 여기 있다니…."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는 이처럼 포털에 남아있는 나의 '흑역사'를 지우자는 데서 시작됐다. 2012년 유럽연합(EU)은 2014년 발효를 목표로 잊힐 권리를 골자로 한 정보보호법 개정안을 확정했다. 세계적으로 ‘잊힐 권리’가 처음 '법'으로 등장한 순간이었다. 이는 온라인이 발달한 한국에도 금세 영향을 줬다. 올해 4월29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 요청권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이제 자신이 예전에 작성한 게시물을 경우에 따라 삭제 요청 할 수 있게 된다. 이 가이드라인은 6월1일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이 조치만으로 개인의 ‘흑역사’가 자취를 감추는 게 아니다. 당사자가 할 일이 많다. 첫째 직접 지우고 싶은 게시물이 어디 있는지 일일이 찾아야하고, 둘째 해당 게시물을 기록하고 있는 사이트(소유업체)를 파악해야한다. 번거로운 절차다. 이 때문에 수년 전부터 이 업무를 대리하는 ‘디지털 장의사’가 등장했다. 김호진 산타크루즈컴퍼니 대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디지털 장의사’ 업체를 세웠다. 시사저널은 서울 역삼동의 산타크루즈컴퍼니 사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디지털 장의사’는 아직도 생소하다. 어떻게 일을 시작했나.

 

원래 광고 모델 기획사를 운영했다. 2008년도 초등학교 5학년 소녀를 광고모델로 데뷔시킨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아이를 향해 악성댓글이 달렸다. 주로 미성년자들이 그 아이에게 ‘돌 던질 거야’, ‘재수 없다’며 온라인에서 공격했다. 안티카페도 생겼다. 그 아이는 충격을 받고 정상적인 학교생활에 지장을 받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래서 내가 포털과 안티 카페에 직접 연락해 게시물을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이 덕에 게시물은 지워지거나 블라인드처리 됐다. 안티카페도 없어졌다. 이를 본 광고주와 당사자인 소녀는 매우 기뻐했다. 그렇게 나의 일이 시작됐다. 2013년에 본격적으로 회사를 세워 업계에 뛰어들었다. 

 

누가 어떤 게시물을 지워달라고 하나. 

 

의뢰인은 다양하다. 미성년자도 많다. 13세부터 16세가 악성댓글을 많이 단다. 이들이 악성댓글의 60%를 작성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애들이 18세만 넘어도 자신이 쓴 글을 후회한다. 더구나 구설수에 오르고 민감한 내용이면 지워달라고 한다. 지워달라고 하는 기록은 댓글과 게시물이 많지만 영상물․사진도 적지 않다. 이런 사례도 있다. 중학생 소년이 또래 여자 친구와 사귀었다. 당시 호기심에 둘은 서로의 벗은 사진을 주고받았다. 2주 만에 여자 친구와 헤어진 소년은 왜곡된 심리로 이를 친구에게 자랑하며 메신저로 보여줬다. 그런데 피해자의 사진이 단체 채팅방으로 옮겨져 하루 만에 학교에 전부 퍼지게 됐다. 이 경우 ‘디지털 장의사’가 필요한 상황이 생긴다.

  

‘이미지’관리를 위해 찾아오는 경우도 있나.

 

그렇다. 악성 블로거 때문에 곤혹을 치른 업체나 과거에 특정사건으로 논란이 됐던 연예인이 의뢰하는 경우가 있다. 한 유명 국내 중견기업은 주기적인 평판관리를 아예 우리 업체에 맡겼다. 우리는 제품에 대한 허위정보를 올리는 시도를 실시간 모니터링으로 관리한다. 연예인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논란이 됐던 사건을 왜곡하는 경우 이를 블라인드 처리해달라고 요청한다. 최근 한 유명 여배우는 자신에 대한 악성루머를 관리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크면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자신에 대한 악성 루머를 보고 충격을 받을까 걱정해서다. 이외에 취업이나 결혼 전에 자신의 기록을 지우려고 찾아오는 이도 많다. 

 

의뢰 가격은 어느 정도인가.

 

천차만별이다. 개인은 50~200만원 수준이고 법인은 보통 1~3억원까지 다양하다. 동영상 유출의 경우 300만원을 받고, 매달 50만원 수준의 관리 비용이 들어간다. 과거 미성년자의 경우 무료로 작업해주기도 했다. 최근 요청이 쇄도해서 업무가 마비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돈 대신 사회봉사를 조건으로 삭제요청을 대리해준다. 

 

삭제요청을 하면 포털이 협조를 잘 해주나.

 

네이버는 미성년자 보호에 대해서 적극적인 편이다. 특히 성적인 문제로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대처해준다. 구글은 적극적인 대처가 없는 편이다. 의뢰인의 요청을 전달하면 캐시 값을 바로 지워주지 않는다. 원본을 삭제한 뒤 서서히 지워지게끔 한다. 페이스북 같은 경우는 국내에 서버가 없어서 협조가 어렵다.

 

‘잊힐 권리’가 갈수록 화제다. 이 업계의 전망은. 

 

인터넷 세계가 열린 뒤 20년이 됐다. 그 동안 우리의 기록이 인터넷에 남을 것이라 인식 못하고 살다가 이제 서서히 깨닫고 있다. ‘디지털 장의사’ 업계의 파이는 당연히 커질 거다. 처음 계획할 때 네이버의 3분의 1만한 회사를 만들자는 생각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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