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최용수, 세상의 편견을 박차고 날아오르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5.23 14:54
  • 호수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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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 K리그 100승 달성…젊은 명장으로 우뚝 선 최용수

‘명선수는 명감독이 되기 어렵다’는 스포츠계의 속설은 지도자로 성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조직의 수장인 감독에게는 수십 명의 스태프와 선수들을 아우르는 섬세하면서도 단호한 리더십이 요구된다. 자신의 철학과 계획에 근거해 장악하고 통제하지 못하면 팀은 와해된다. 상대와의 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지략은 그다음 문제다. 선수 시절 자기 자신만 잘 관리하고 단련해 성공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실제로 ‘스타 플레이어’들 중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 감독으로 실패하는 사례가 많다. 

 

FC서울의 최용수 감독은 당초 명감독이 되기 어려울 것으로 분류된 스타 플레이어였다. 2006년 현역 생활을 마감하고 친정팀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할 때 주변에서는 그가 지도자로 성공할 수 있을지 물음표를 지녔다.

 

최용수 감독의 선수 시절 별명은 독수리였다. 골을 넣기 위해 골문으로 매섭고 용감하게 달려드는 모습에 그의 출신 대학인 연세대의 상징이 더해져 탄생한 별명이다. 하지만 대중과 축구계가 인식하는 독수리 최용수의 이미지는 둔탁하고 거칠었다. 말주변과 표현력이 부족해 인터뷰를 못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지도자로 성공하기 위해 지녀야 할 섬세함, 깊은 생각을 찾기 어려운 유형이었다.

 

 

 

최단기간·최연소 K리그 100승 달성

 

감독 최용수는 자신을 향한 둔탁한 이미지와 편견을 멋지게 깨 보이고 있다. 선수 시절과는 180도 다른 행보를 보이며 또래 지도자 중 가장 일찍, 그리고 가장 독보적인 성공 신화를 써가는 중이다. 지난 5월14일 최용수 감독은 K리그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선두 싸움 중인 성남FC를 상대로 서울은 3-2 역전승을 거뒀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박주영을 조기 투입한 최용수 감독의 용병술은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그의 100승은 K리그 역대 최단 기간인 193경기(100승 49무 44패) 만에 달성한 기록이다. 기존에 최단 기간 기록을 보유했던 전북의 최강희 감독보다 31경기나 앞섰다. 42세 8개월 4일의 나이로 100승을 달성, 이 부문 최연소 기록도 그의 차이가 됐다. K리그 통산 100승을 달성한 16명의 감독 중 가장 높은 64.5%의 승률도 기록 중이다. 

 

2011년 4월 황보관 전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물러나자 감독대행으로 서울을 이끌게 된 최용수 감독은 이듬해 K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2013년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진출했고 월드컵 우승을 경험한 이탈리아 출신의 명장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광저우 헝다와 명승부를 펼쳤다. 아쉽게 우승을 놓쳤지만 그해 AFC 선정 올해의 감독상을 거머쥐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지난해에는 자신의 두 번째 우승 타이틀인 FA컵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올 시즌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최고의 선수들을 쓸어 모은 전북 현대와의 경쟁에서 앞서며 K리그 클래식 1위를 달리고 있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조기에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선수 시절의 이미지로 감독 최용수를 바라보던 세상의 시각도 달라지는 중이다. 지난해까지 포항을 이끌며 최용수 감독의 서울과 치열한 경쟁을 펼쳤던 선수 시절 선배이자 파트너 황선홍 감독은 “솔직히 용수가 감독으로 이렇게 잘 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감독 6년 차인 올해 명장의 길로 접어든 데 대해 최용수 감독은 “아직 멀었다. 무수한 경험과 실패로 나를 단련했다. 이제 감독이 뭔지 조금 알 정도다”라며 겸손한 자세를 취했다.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이 성공 이끌어”

 

 

오늘의 성공을 만든 것은 코치로서의 6년이었다. 2006년 플레잉코치로 시작해 2011년 수석코치까지 차근차근 경험을 쌓았다. 최용수 감독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으로 지냈다. 다만 눈은 분명히 뜨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 6년 동안 조광래·이장수·세뇰 귀네슈·넬로 빙가다 등 국내외 쟁쟁한 감독의 지도법을 벤치마킹했다. 그는 “늘 펜과 수첩을 들고 있었다. 워드와 파워포인트로 선수단에 보여줄 자료도 만들었다. 선수 시절이었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크게 웃었다. 

 

신문과 책을 읽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최용수는 무식하다’는 세상의 편견을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았다. 그래서 신문 사설과 정치·사회·경제 기사를 꼼꼼히 읽었다. 인문학 서적을 즐겨 읽으며 인생의 지침이 될 만한 문구는 따로 메모를 했다. 경기도 구리에 위치한 클럽하우스 2층 감독실에 가면 그의 자리에는 늘 유명인의 인터뷰나 해외 기사가 프린트된 종이가 한 가득 쌓여 있다. 최용수 감독은 “축구를 가르치는 건 자신 있었다. 20년간 해온 게 그거였다. 다만 표현하고 소통하는 것이 문제였다. 세련되게, 그리고 상대가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내가 가진 게 부족하다면 남의 것을 흡수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고 말했다.

 

서울 구단 관계자와 선수들은 최용수 감독을 ‘밀당(밀고 당기기)의 고수’라고 표현한다. 일방적으로 윽박지르지 않는다. 치밀한 심리전으로 선수들과 팀의 변화를 이뤄낸다. 그렇게 은퇴를 결심했던 차두리를 데려와 성공적인 마무리를 도왔다. 2013년 최용수 감독의 설득으로 서울에 입단한 차두리는 말년에 다시 한 번 국가대표로 맹활약했고 2015년 모두의 축하 속에 현역 생활을 마쳤다. 유럽 생활에 강한 미련을 갖고 있던 박주영도 지난해 서울로 복귀시켰다. 최용수 감독의 배려 속에 박주영은 최근 부활의 시동을 걸고 있다. 엄청난 득점력으로 올 시즌 서울의 질주를 이끌고 있는 브라질 공격수 아드리아노는 이전 소속팀에서 통제 불능의 문제아로 통했지만 서울로 온 뒤 변화했다. 최용수 감독은 팀 정신을 강조하고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며 아드리아노를 아시아 무대 최고의 공격수로 성장시켰다.

 

그런 밀당 능력은 2001년 일본 J리그로 진출한 뒤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통해 배웠다. 최용수 감독은 “일본으로 가기 전의 나는 나만 아는 제멋대로의 선수였다. 하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문화가 있는 일본에서 자연스럽게 의식이 바뀌었다”며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와 식사 자리에서 물을 따르고 수저를 놓는 내 모습을 보고 코칭스태프와 선배들이 놀라던 모습이 생각 난다”고 말했다. 30대에 접어들고 지도자로서의 꿈을 꾸면서 변화는 더 적극적이었다. 6년간의 코치 생활로 준비된 감독이었던 그는 2011년 기회를 얻자마자 두각을 나타냈다. 

 

독수리의 비상보다 더 큰 꿈을 품다

 

감독 최용수의 가치는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7월 중국 슈퍼리그의 장쑤 세인티(현 장쑤 쑤닝)가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세계적인 감독과 선수들이 모이는 무대로 변신한 슈퍼리그로의 진출을 고민했다. 기본 연봉만 200만 달러에 달할 정도로 금전적 유혹도 컸다. 하지만 그는 선수 시절부터 몸담았던 친정팀에 대한 의리를 강조하며 서울에 남았다. 그렇게 해외 진출을 미룬 그는 올 시즌 서울을 이끌고 챔피언스 리그에서 막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감독으로서의 가치를 한 번 더 높이고 있다. 

 

밀당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전술·전략도 한층 진화하고 있다. ‘수비 축구’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2년 전부터 tm리백 시스템을 다시 가동했다. 사실 그런 변화는 세계 축구의 흐름을 파악한 결과였다. 이탈리아 세리에A를 중심으로 세계 축구 전술은 다시 스리백으로 넘어가는 단계다. ‘선수빨’이라던 비판도 주축 선수들이 꾸준히 빠져나간 2014년과 2015년에 성과를 내자 쏙 들어갔다. 최용수 감독은 “프로에서는 결과가 최고의 리더십이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결과로 완성하지 못하면 조직의 구성원들은 나를 믿지 않는다. 어떤 조건에서든 결과를 내서 나의 방향과 철학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며 자신을 향한 편견과 비판을 이겨낸 힘을 소개했다. 

 

성과·내용·기록에서 모두 최고의 지도자로 올라서고 있는 최용수 감독은 이제 차기 국가대표 감독 후보로도 거론된다.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2년 전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선임하며 “외국인 감독은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란다. 향후에는 국내 지도자가 대표팀을 끌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용수·황선홍·신태용 감독이 차기 국가대표팀의 수장으로 어울리는 능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최용수 감독은 손사래를 치며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 한다. 평가는 내가 아니라 밖에서 하는 거다. 나는 늘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며 웃음을 지었다.

 

최근 최용수 감독은 금연에 나섰다. 판단력과 느낌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다. 그런 변화는 모두 더 큰 성공과 승리를 꿈꾸기 때문에 가능하다. K리그 100승 달성 후 “지금까지 어떻게 해 왔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닌 선수들이 만들어준 승리다. 낮은 자세로 늘 공부하고 노력하겠다”고 말한 최용수 감독. 독수리는 지금까지의 비상보다 더 큰 꿈을 그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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