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포(車包) 뗀 넥센, 여전히 잘나가는 이유
  • 배지헌 엠스플뉴스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02 18:09
  • 호수 1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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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 후보 예상했지만 시즌 1/3까지 상위권 차지

 

강정호(미국 진출), 밴헤켄(일본 진출), 조상우(토미존 수술), 한현희(토미존 수술), 손승락(롯데 이적), 송신영(한화 이적), 박병호(미국 진출), 유한준(kt 이적), 스나이더(재계약 안 함), 박헌도(롯데 이적).

지난 2년 사이 넥센 히어로즈에서 빠져나간 선수들의 명단이다. 주전 유격수를 시작으로 선발 에이스와 불펜 에이스, 마무리 투수, 4번 타자에 주전 우익수까지 차례로 팀을 빠져나갔다.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이에 2016시즌을 앞두고 적지 않은 전문가가 넥센을 하위권 후보로 예상했다. 한 방송 해설가는 동아일보 인터뷰를 통해 “넥센보다 순위가 낮은 팀이 있다면 그 팀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시즌의 약 3분의 1을 향해가는 5월26일 현재, 넥센은 23승 1무 21패 승률 0.523으로 선전(善戰)하고 있다. 시즌 순위는 4위. 2위 NC 다이노스와의 승차는 1.5게임에 불과하다. 꼴찌 후보라던 팀의 성적이라기에는 놀라운 반전이다. 넥센보다 아래 있는 6개 구단이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넥센에 사람들이 보지 못한 뭔가 특별한 점이 있는 것일까. 

‘다득점’에서 ‘저실점’으로 전략 변화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야구의 기본적인 원리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야구는 상대보다 더 많은 득점을 하고, 더 적은 실점을 하면 이기는 경기다. 지난해까지 넥센은 주로 상대보다 많은 득점을 하는 방식으로 승리를 거뒀다. 상대가 7점을 내면 8점을 내고, 9점을 주고 나면 10점을 내는 식의 야구를 했다. 하지만 ‘병호도 없고, 한준이도 없는’ 올 시즌, 넥센은 ‘상대보다 적게 실점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특히 넥센의 새 홈구장인 고척스카이돔이 외야가 넓고 펜스가 높은 ‘투수 구장’이니만큼, 다득점에서 저실점으로의 전략 변화는 불가피한 면이 있었다. 실제 넥센은 실점을 줄이는 면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5월26일 현재 넥센은 팀 평균자책 4.34로 10개 팀 중 4위에 올라 있다. 지난해 4.95의 평균자책으로 리그 6위에 그치며 공격에서 얻은 점수를 수비에서 모두 잃어버린 것과 대조된다. 

“지난해보다 외야 수비가 부쩍 좋아졌다.” 염경엽 넥센 감독의 말이다. 중견수 자리에 수비 범위가 넓은 신예 임병욱을 기용하고 코너 외야에도 고종욱·박정음 등 발 빠른 선수들을 기용한 결과다. 지난해 넥센 외야진의 평균 대비 수비 승리 기여 수치는 -2.23으로 리그 8위에 그쳤다. 올해는 -0.09로 두산에 이은 리그 2위다. 여기에 강력한 운동 능력을 지닌 포수 박동원이 물오른 수비력을 보여주는 것도 플러스 요인이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내야진의 수비력은 외야와 포수에 비해 떨어진다. 이유가 있다. 넥센 홈구장인 고척스카이돔은 타구 속도가 빠르고 강하기로 악명이 높다. 그라운드볼이 흙에 맞고 튀는 순간 총알로 변하는 곳이다. 내야수들이 수비하기 쉽지 않은 여건이다. 그러나 넥센은 허슬플레이를 자랑하는 유격수 김하성을 중심으로 빠르게 적응해가고 있다. 다른 구단에 비해 시프트를 자주 활용하며 안타가 될 타구를 손쉽게 아웃 처리하는 장면도 자주 나온다. 

넓은 구장과 수비력 강화는 투수들의 자신감 있는 투구를 부른다. 홈런을 맞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공격적인 투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다. 넥센 투수진은 9이닝당 볼넷 2.68개로 10개 팀 중 유일하게 3개 이하의 볼넷만 내주고 있다. 넥센이 전통적으로 투수진의 제구력 난조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다. 이렇게 공격적인 피칭을 하면서도 9이닝당 홈런 허용은 0.81개로 최소 3위다. 잠실구장을 사용하는 LG와 두산 다음으로 적은 피홈런 숫자다. 

신재영, 박주현 등 신예들 활약 눈에 띄어 

특히 마운드에서는 젊고 신선한 얼굴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시즌 초반 센세이션을 일으킨 사이드암 신재영(27)을 비롯해 패스트볼 위주의 공격적인 피칭이 장점인 박주현(20)이 밴헤켄과 조상우의 공백을 훌륭하게 메우고 있다. 불펜에서도 마무리 손승락이 떠난 자리를 만년 기대주였던 김세현이 대신하고 있다. 5월26일 현재 김세현은 12세이브, 롯데 손승락은 7세이브를 기록 중이다. 그 외에도 불펜에서 김상수·하영민·김택형 등 20대 투수들이 위력적인 구위를 앞세워 호투하는 중이다.

큰 폭의 하락이 예상된 공격력에서도 넥센 타자들은 비교적 선전하고 있다. 5월26일 현재 넥센의 팀 득점은 238점으로 리그 5위다. 2위 삼성(243득점)과는 불과 5득점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지난해보다 훨씬 실점은 적게 하면서, 득점력에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리그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넥센의 타석당 홈런 숫자는 작년 3.49개에서 올해 2.11개로 줄었다. 대신 3루타가 18개로 리그 1위를 기록 중이며, 작년 8위에 그친 팀 도루도 40개로 롯데(47개)에 이은 2위다. “점수를 내는 방법이 홈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즌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넓은 구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자고 주문했다.” 넥센 한 코치의 얘기다. 

넥센 구단은 야구를 바라보는 관점이 창의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진보적인 야구 통계 분석인 세이버메트릭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선수 스카우트와 육성에서도 다른 구단과는 차별화된 시스템을 구축했다. 염경엽 감독을 비롯한 ‘학구파’ 코칭스태프도 새로운 이론과 야구관에 개방적인 입장이다. 

“구단이 체격 조건과 운동 능력이 좋은 선수들을 잘 발탁하는 것 같다.” 다른 구단 스카우트의 넥센에 대한 평이다. “그런 선수들을 데려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들고, 퓨처스에서 충분한 경기 경험을 쌓게 한 뒤 제대로 준비가 됐을 때 1군에 올려 기회를 준다. 그만큼 성공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훈련도 일부 다른 구단처럼 무조건 강훈련을 고집하지 않는다. “우리 팀에서는 특타나 야간 타격연습을 하는 선수가 없다. 시즌 중에 많은 훈련을 하는 건 선수나 지도자 스스로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지풍 넥센 트레이닝 코치의 말이다. 일정 레벨에 오른 프로 선수에게 시즌 중 과도한 훈련은 불필요하다. 심지어 장기 레이스를 치르는 데는 해가 될 수도 있다. 넥센은 과도한 훈련으로 체력을 낭비하는 대신, 비시즌에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시즌 중에는 적절한 휴식으로 컨디션을 관리하며 144경기를 준비한다. 선수들의 표정과 움직임에 활력이 넘치고, 덕아웃 분위기도 밝고 활기차다. 언제나 최상의 컨디션으로 경기를 준비하기 때문이다. 부상자 관리도 철저하게 이루어진다. “우리 구단만큼 트레이닝 파트의 의견을 잘 수용하는 팀도 없다”고 이지풍 트레이닝 코치는 말한다.

물론 모든 게 계획대로 순조롭게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넥센은 서건창의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시즌 중반 어려움을 겪었다. 올해도 시즌 전 조상우의 토미존 수술 악재가 닥쳤고, 개막 직후에는 거포 윤석민이 부상으로 이탈했다. 국내 투수들의 호투에 비해 외국인 투수진의 활약이 미진한 것도 아쉬운 점이다. 앞으로 남은 시즌을 치르는 동안에도 또 어떤 어려움이 생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넥센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독창적인 발상과 철저한 준비, 특유의 합리성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앞으로 또 어떤 난관이 닥칠지 모르지만, 넥센은 그때마다 답을 찾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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