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과 일합’ 태세 갖추는 野 잠룡들
  • 김현 뉴스1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0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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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안동·부산·인천 광폭행보…안철수는 복잡한 속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5박6일 방한이 남기고 간 대망론(待望論)의 불씨가 야권의 대권주자들에게도 옮겨 붙고 있다. 야권의 대권 잠룡들은 반 사무총장이 방한기간에 보여준 행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지만,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돌아간 이후 잠룡들의 발걸음이 이전보다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치권에선 반 사무총장의 방한이 대권 경쟁의 시계를 앞당긴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文-安’ 양강 구도에서 3강 구도로 바뀌어

반 사무총장이 방한 일정을 마치고 유엔으로 돌아간 이후 야권은 반 사무총장을 향해 날 선 반응을 보였다. “반기문 대망론은 너무나 턱없는 소리이자 재앙이다. 대통령이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시궁창에 버리는 이름이 될지도 모르겠다”(이종걸 전 더불어민주당(더민주) 원내대표), “반 사무총장은 청와대와 여권이 만들어준 꽃가마를 탄 기분이었을 것인데, 반 사무총장이 너무 나간 것 같다”(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 “반 사무총장은 한 번도 검증을 받은 바 없다”(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등 반 총장의 행보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야권의 이 같은 반응은 ‘여소야대’ 정국으로 귀결된 20대 총선 이후 야권에 유리한 흐름으로 전개되던 대선 구도 자체가 뒤집어졌기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실제 MBC가 5월28~29일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대선후보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결과, 반 사무총장은 31.6%를 얻어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16.2%),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11%)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총선 이후 형성돼오던 문재인-안철수 양강 구도가 깨진 것이다. 여기에 ‘3강’으로 분류됐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4위로 밀려나게 됐다.  

 

이에 따라 20대 총선 이후 소강상태를 보여왔던 야권 잠룡들의 보폭이 커지기 시작했다. 김철근 동국대 사회과학대 교수는 6월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대로 놔뒀다간 자칫 반 사무총장에 대한 대세론이 형성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야권 주자들의 발걸음이 빨라질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더민주 핵심 인사는 “야권 내에선 막연하게 반 사무총장이 본격적인 검증 무대에 올라가면 한 방에 훅 갈 것이라는 얘기가 많지만, 과거 사례와는 다르다는 지적도 많다”며 “이는 결국 기존 여권 후보들에 비해 앞서 있던 야권의 대선주자들에겐 자극제가 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당장 눈길을 끄는 사람은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다. 문 전 대표는 20대 총선에 불출마한 데다 당직도 맡고 있지 않아 ‘자유인’이 된 상황이다. 문 전 대표는 ‘조용한 행보’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전국 각지를 방문하는 등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문 전 대표는 5월27일 안동 등 경북 지역을 방문한 데 이어 28일 부산 당원들과 등산, 6월1일 충북 청주, 2일 인천 등을 찾았다. 특히 5월29일 반 사무총장이 방문할 예정이었던 경북 안동을 이틀 전에 찾은 것과 6월1일 반 사무총장의 고향인 충북 지역을 방문한 것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문 전 대표는 “제 일정대로 움직인다”고 선을 그었지만, 반 사무총장을 겨냥한 행보로 읽히고 있어서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당장 반 사무총장을 견제하기 위한 행보는 하지 않고 있지만, 그 속내는 복잡해 보인다. “반 사무총장이 본격적으로 나서면 그 피해를 안 대표가 제일 크게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의 지적처럼, 여권 후보로 거론됨에도 보수적 이미지도 상대적으로 약한 반 사무총장의 행보는 중도층 공략에 주력하고 있는 안 대표에겐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MBC의 여론조사에서도 더민주 지지층 중 반 사무총장을 지지한 비율은 16.1%에 불과한 반면 국민의당은 26.1%나 반 사무총장에게 옮겨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안 대표는 조만간 전북을 방문하는 등 본격적인 행보에 나서면서 지지율 끌어올리기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충청 방문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안 대표는 자신이 강점을 갖고 있는 IT(정보기술)를 중심으로 한 경제문제 해결능력과 원내 제3당으로서의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는 모습이다. 국민의당 당직자는 “반 사무총장을 의식한 행보를 하기보단 안 대표가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고, 그간 주장해온 정치혁신을 실천하는 쪽으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박원순 충청行 연기…안희정 ‘충청 대망론’

대권주자 지지도 순위가 내려앉은 박원순 서울시장도 ‘반기문 바람’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이를 의식한 듯 박 시장은 반 사무총장의 방한에 앞서 “유엔 결의안이 존중되는 게 바람직하다”며 강한 견제구를 날린 바 있다. 박 시장은 당초 6월3~4일 1박2일간 반 사무총장의 고향이 있는 충청을 찾을 예정이었지만, 예상치 못하게 발생한 구의역 사망 사고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사태 수습을 위해 충청 방문을 일단 연기했다. 박 시장 측은 “구의역 사고도 있어서 지켜봐야 할 것 같아 일단 충청 방문을 연기한 것”이라며 향후 다시 찾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와 달리 야권에선 안희정 충남지사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반기문 대망론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충청 대망론’에 있어 야권에서 내놓을 수 있는 유력한 카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더민주의 한 핵심 당직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은 안 지사가 열심히 뛰어줘야 하는 시기다. 일단 지역적으로만 보면 야권에서 반 사무총장에 대한 대망론을 견제할 수 있는 유효한 카드가 안 지사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안 지사도 최근 ‘불펜투수론’을 거론하며 대선에 직접 나설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안 지사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김종민 의원은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 지사는 충청 분들에게 지역 사람으로서 지지나 신뢰를 받기보단 새로운 리더십으로 선택받는 것을 원하고 있다”며 70대의 반 사무총장과의 차별화에 무게를 뒀다.

 

야권의 대선주자들이 ‘반기문 바람’에 맞설 대항마가 되기 위해선 자신들의 강점을 얼마나 부각하고 반 사무총장과 차별화를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야권의 한 중진 의원은 “반 사무총장이 여권 후보가 될지는 끝까지 지켜봐야겠지만, 어찌 됐든 야권 주자들로선 반 사무총장을 염두에 둔 행보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앞으로 야권의 주자들이 본선에서 맞설 수 있는 반 사무총장과 어떻게 대결구도를 그릴지 차분하게 준비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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