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아의 음식인류학] 천천히 음미하며 먹으면 위험 피할 수 있다
  •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10 17:56
  • 호수 1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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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오염의 인류학, ‘누굴 믿고 무얼 먹을까’에 대한 고민

 

19세기 유럽의 예지적 지성 포이어바흐가 “인간은 자신이 먹는 것이다(Man is what he eats)”라고 말했다지만, 인류 역사를 통해 볼 때 음식은 정말 다양한 국면에서 인간의 삶 속에 통합돼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음식이니만큼, 그 음식이 제대로 된 음식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일도 상당히 중요한 것으로 간주돼 왔다. 오랜 세월 전해져 내려오는 종교의 경전에는 대체로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하고, 또 먹지 말아야 하는지 기록돼 있다. 대표적인 것이 힌두교와 그 영향을 받은 불교가 육류를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유대교에는 ‘카쉬루트(Kashrut)’가 있고, 그 영향을 받은 초기 기독교 역시 구약의 ‘레위기’를 보면 ‘거룩한 음식’과 ‘부정(不淨)한 음식’을 확실히 구분하고 있다. 

 

이런 규정들을 보면 식품 자체에도 깨끗한 것과 부정한 것이 있다고 말하지만, 깨끗한 음식이라도 부정한 요소와 접촉하면 부정하게 된다고 보았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우리말 표현에도 ‘부정 탄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오염’된다는 것이다. 이런 기록들은 문자가 생기기 이전, 오랜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음식의 재료를 먼 곳에서 구해오는 교역이 발달하고, 음식을 만들어 팔아 이윤을 남기는 일이 시작되면서, 식품오염 문제는 또 다른 차원으로 껑충 뛰어오른다. 즉 이윤을 많이 남기기 위해, 인간이 먹어서는 안 될 것을 식품에 첨가하는 행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 전 로마제국에서는 본토에서 농사가 잘 안 돼서 북아프리카 평야지대에서 먹거리를 배로 실어 날랐다. 당시 빵을 오래 보존하고 포도주의 맛을 내기 위해 납을 첨가해서, 안 그래도 납중독이 심각한 로마 사회를 더욱 멍들게 했다. 17~18세기 유럽에서도 빵에 못 먹을 씨앗이나 석회분을 섞어서 부피와 무게를 늘리는 악덕 상인들로 인해 벌어지는 소동이 심심치 않게 기록에 남아 있다.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고 말한 건지는 몰라도, 1930년대 일제강점기의 한국 사회를 묘사한 영국인 교사 HB 드레이크는 엿장수가 메고 다니며 파는 엿이 사실 더러운 기름과 색소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전 국민이 대체로 신문을 읽게 된 1960년대, ‘석회가루를 섞은 두부’ ‘카바이드를 이용해서 빨리 익힌 홍시’ ‘미군 군화 제조용 쇠가죽을 끓여 만든 수구레(쇠고기의 젤라틴 성분을 끓여내어 식혀서 묵처럼 만든 전통 음식)’ 등의 식품오염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신문 사회면 톱을 장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요즘 생각하면 요순시대 같은 얘기다.

 

식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일이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 되면서부터는 식품오염 문제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피해를 줄 수 있는 전면적인 문제가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그 실체는 일반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되어가는 경향이 있다. 농약과 화학비료, 식품첨가물, 추수 후 농약 처리, 방사선 조사(照射), 생식조작, 유전자 변형 등등. 한 해가 다르게 식품오염의 이름과 얼굴이 바뀌어가지만, 사실 그중 어느 것도 일반인이 쉽게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제는 어떤 식품이 어떻게 오염되었는지, 그것을 전문으로 다루는 연구자나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통해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니, 현대의 식품오염 문제는 너무 광범위하고 다양해 전문가들조차도 오염실태의 전반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럼 도대체 누굴 믿고 무얼 먹고 살아야 하나?

 

 

 

‘좋은 음식’과 오염된 음식을 구분하는 게 갈수록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사진은 나쁜 기름을 사용한 닭튀김(위)과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를 이용한 점검 모습.

 

차분하게 음식 대하며 몸속 지혜 살려야

 

뜬금없는 것 같지만, 여기서 생각나는 역사적 일화가 하나 있다. 젊은 시절의 칭기즈칸이 사냥을 나갔다. 사랑하는 수렵용 매를 쫓아 빠르게 달리다 보니, 무리에서 떨어져 숲 속을 헤매게 됐다. 지치기도 하고 무엇보다 목이 너무 말라 두리번거리던 참에 높은 바위 위에서 흘러내리는 깨끗한 물줄기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허리춤에 차고 있던 표주박을 꺼내 물을 받아 바로 들이켜려는 순간, 어깨에 앉아 있던 매가 날아올라 표주박을 쳐서 떨어뜨렸다. 서너 번 그런 일이 반복되자 목이 심하게 말라 있던 ‘상남자’ 칭기즈칸은 칼을 빼어 매를 단번에 베어 죽였다. 그리고는 다시 물을 받아 마시려는데, 아무래도 떨떠름할 수밖에 없어 단번에 들이켜지 않고 조심히 입에 대는 순간, 물에서 뭔가 비릿한 기분 나쁜 냄새가 느껴졌다. 칭기즈칸은 흘러내리는 깨끗한 물을 바라보다가 그 물이 내려오는 바위 위로 올라가 보았다. 바위 위, 물이 고인 곳에 커다란 독사 한 마리가 죽어 썩어가고 있었다. 칭기즈칸은 그제야 자기를 살리려고 혼신의 힘을 다한 매의 충정을 깨달았다.

 

이 일화는 음식 속에 숨어 있는 오염도 참 가지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숲 속 바위에서 떨어지는 깨끗한 물. 겉보기엔 전혀 오염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었다. 우리가 접하는 많은 음식들, 그 음식이 보여주는 먹음직한 외관 속에 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까?

 

동시에 이 일화는 무엇이든 조금씩 천천히 음미해가면서 먹으면 의외로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 같다. 칭기즈칸이 목이 말라 단숨에 들이켰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자기 몸을 던져 위험을 알리려 했던 충성스러운 매 덕분에 차분히 물의 맛을 음미하게 됐기 때문에 칭기즈칸은 이후 인류 역사에 남는 대제국의 창건자가 될 수 있었다. 

 

이전 연재에서도 필자가 몇 차례 언급했지만, 우리 DNA 안에는 우리에게 맞는 좋은 음식을 알 수 있는 노하우가 담겨 있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는 요즘, 미디어에서는 각종 음식에 대해 쉬지 않고 정보를 쏟아내고, 그것이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돼간다. 그런 정보에 위축되지 않고 차분하게 음식을 대하며 우리 몸 안에 내재돼 있는 지혜를 살리는 것이, 어쩌면 그 정보의 홍수를 현명하게 헤쳐 나가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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