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공항’ 인천국제공항의 민낯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06.13 11:36
  • 호수 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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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만 지키는 인천국제공항공사, 공항 주요 업무는 용역업체에 위탁

 

지난 6월4일 대한민국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에서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오후 7시15분 인천에서 오사카로 향하는 대한항공 비행기에 예약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탑승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사고는 대한항공 직원이 지적 장애인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발생한 일이었다. 하지만 공항 보안에 여전히 구멍이 뚫려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가짜 승객이 탑승권과 여권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출국장과 출입국 심사대 등을 모두 통과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에는 인천공항을 경유해 중국으로 향하던 중국인 부부가 상주직원 전용 출입문을 통해 유유히 빠져나간 사건도 발생했다. 같은 달 한 베트남인도 무인출입국심사대 게이트를 강제로 열고 밀입국했는데, 이러한 사실조차 23시간 동안 파악하지 못해 보안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11연패를 달성하고 5년 연속 ‘세계 최고 공항상’을 수상한 인천공항의 민낯이었다.

 

보안 사고가 반복되자 황교안 국무총리를 시작으로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과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줄줄이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했다. 이들 모두 보안 강화 대책을 주문했다. 그러자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중대 보안 사고가 발생하면 담당 용역업체를 자동으로 퇴출하는 내용의 대책을 내놨다. 정작 보안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인천국제공항의 잇따른 보안 사고 배경에는 아웃소싱 등의 구조적 문제가 있다.

 

공항에 정규직 직원은 없다?

 

외국을 찾거나 한국으로 돌아올 때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공항 직원들과 마주하게 된다. 서비스 안내부터 비행기표 발권, 수하물 검색, 출입국심사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 만나게 되는 사람 가운데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 직원은 찾아볼 수 없다. 인천공항공사 직원들은 여객터미널 주차장 건너편의 공항공사 건물에서 공항 건설이나 공항 운영, 마케팅, 경영지원 업무를 수행한다. 대부분의 대민(對民) 업무는 아웃소싱 업체에 맡겨져 있다. 흔히 공항 직원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은 용역업체 근로자나 비정규직인 셈이다.

 

 


 

인천공항공사는 거대한 비정규직의 일터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인천공항공사의 직원 7623명 가운데 정규직은 1106명(14.5%)에 불과하다. 반면 비정규직 인원(용역업체 정규직 포함)은 6517명(85.5%)에 달한다. 이들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여객터미널 운영, 탑승교 운영, 경비보안, 보안검색, 공항소방대, 환경미화, 토목시설 유지관리, 승강설비 유지보수, 통신 및 서버 운영 등 공항의 주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수하물을 검색하는 사람들은 모두 3개 용역업체에 소속돼 있다. 공항 치안을 담당하는 사람들도 여객터미널 층별로 나뉘어 3개 용역업체에 소속된 비정규직들이다. 층별로 보안업체가 다르다 보니 보안업무에 혼선이 발생하기도 했다. 소방업무마저도 외부 용역 근로자들이 담당하고 있다. 인천공항은 개항 이후 지속적으로 이용객이 증가하고 있지만 보안·검색·경비 분야를 담당하는 인력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실질적 업무를 맡은 비정규직 근로자의 절반 가까이는 근속연수가 2년 이하다. 근무 경력이 6개월 미만인 직원도 280명(26%)이나 됐다. 공사에서 용역업체를 바꿀 경우 새로운 회사에 재취업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때문에 13년간 공항에서 근무한 근로자가 신입사원이 되는 황당한 사건도 벌어졌다. 당연히 보안 전문성을 키우기 어려운 상황이다.

 

‘안전’보다 앞선 경영 논리

 

실제로 지난 1월 중국인 부부가 직원 전용 출입문을 통해 빠져나갈 당시 공항 보안요원은 이 모습을 지켜봤다. 하지만 잠금장치를 9분 동안 흔들어 손상시키는 동안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워낙 대범하게 흔드는 모습에 문을 수리하거나 청소하는 사람들일 것으로 착각했다는 게 보안요원의 해명이었다. 이미 2층 출입국 심사대에서 환승자격 입국을 거부당한 상태여서 업무 공유만 제대로 이뤄져 있었더라면 현장에서 막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인천공항은 2014년에 두 차례 이뤄진 항공보안 불시평가에 모두 실패했다. 당시 항공보안 불시점검 자료에 따르면, 인천공항은 검색 과정에서 모의 다이너마이트 및 은닉 칼 등을 적발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천공항공사는 2014년 3월12일 상주직원 휴대물품의 엑스레이 판독에 실패했고, 지난 4월24일 모의 폭발물, 위해물품 적발능력 보호구역 출입통제에도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인천공항을 비롯해 국내 공항에서 일하는 보안검색 요원들의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것이 사실”이라며 “인천공항 밀입국 사건 이후 보안검색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처우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문제는 국회 국정감사의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문병호 전 국민의당 의원은 2012년 국감에서 “윤리적으로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중간착취와 차별이 심하고 이중관리에 따른 낭비와 비효율도 심각하다”며 “(인천공항공사가) 외형적 인건비 효율성에 얽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2013년부터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인천공항공사의 고용구조 문제가 국감에서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인천공항공사는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정규직 인원을 더 늘렸다. 인천공항공사의 한 팀장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대규모 인력 증가에 따른 관리비용이 증가하고 기존 직원과의 임금격차 축소 요구, 복지 혜택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며 “오히려 파업이 공항의 안정적 운영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천공항공사 측은 “세계 주요 공항 역시 전문업체를 통한 아웃소싱을 적극 활용 중”이라며 “비핵심 업무에 대한 아웃소싱은 공항산업에서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소방·구조·보안·검색 업무를 모두 아웃소싱 형태로 맡긴 네덜란드의 스키폴 공항을 예로 들었다. 공사 측은 “여객규모 대비 공항인력 비교 결과, 해외 선진 공항의 평균 수준”이라고 밝혔다.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5월11일 집회를 열었다.

 

“공항 운영 맡겨놓고 감독하는 기관 같다”

 

최근에는 부채를 줄이겠다며 인력을 축소하려는 움직임까지 포착되고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2014년 3월 국토교통부에 2017년까지 1732억원의 부채를 감축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부채감축계획안을 제출했다. 부채감축계획안을 보면 인천공항공사는 위탁용역비(아웃소싱비) 절감을 비용절감의 한 축으로 삼고, 2014~17년 4년 동안 공항운영인력 최소화를 통해 총 1732억원을 절감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전국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관계자는 “최근 인천공항 부채감축안 관련 용역을 진행하고 있는 연구자들이 노조의 각 지회를 조사하면서 몇몇 지회의 인원을 ‘10~20% 감축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경영 논리의 힘이었을까. 인천공항공사의 실적은 외형적으로 화려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1조8785억원, 당기순이익은 7716억원을 기록했다. 개항 당시 166%에 이르던 부채비율도 42.3%로 낮아졌다.

 

덕분에 1인당 평균 연봉은 8000만원(2014년 결산 기준)에 육박한다. 전국 14개 공항의 운영을 담당하는 한국공항공사와 비교해 1000만원 가까이 더 많은 수준이다. 대졸 사무직 기준 신입사원 초임도 4000만원이 넘어 2014년까지 6년 연속 초봉이 높은 공기업으로 선정됐다. 

 

이를 바라보는 공항 관계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정작 ‘현장’을 모르는 인천공항공사의 탁상행정으로 인해 현장에서 불편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한 예로 인천공항공사는 잇따른 보안 사고에 강화 조치를 내놨는데 이 가운데 보안구역 출입증 문제도 포함됐다. 하지만 이 조치로 인해 인천공항에 면세품을 배달하는 배송기사들은 일자리를 잃게 됐다. 상주업체에 소속된 사람에게만 출입증을 발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을 이용하는 항공사의 불만도 적지 않다. 한 항공사 직원은 “공사가 제2여객터미널을 건설하면서 항공사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관계자들을 불렀지만, 공사가 정한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항공사의 의견은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항공사 직원은 “지난 1월 대규모 수하물 지연 사태가 발생한 이후에도 수하물 처리시설의 고장이 잦아 불편이 심하다”며 “공사 측에 보수를 요청했지만 직원이 나와 보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한 용역업체 소속 근로자는 “인천공항공사는 공항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운영을 맡겨놓고 감독하는 기관 같다”며 “근로자 위에는 용역회사, 그 위에 공항공사와 국토부(국토교통부)가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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