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사’와 게임 ‘스토리’는 다르다
  • 이은선 ‘매거진 M’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16 15:26
  • 호수 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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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원작 영화화한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이 혹평에 시달리는 이유

 

모든 대작 영화에는 사연이 있다.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역시 갖은 진통 끝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경우다. 이전에 게임 원작을 영화화한 경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의 대형 프로젝트가 발표된 경우는 드물었다. 이 영화는 태생부터 게임 ‘워크래프트’가 일궈놓은 성과라는 거대한 왕관의 무게를 버텨야 하는 운명이었다. 원작은 1994년 출시, 현재까지 4개의 시리즈와 8번의 확장팩 발표로 전 세계 1억 명 이상의 유저를 거느린 인기 게임이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넓혀온 세계관은 웬만한 판타지 소설을 뛰어넘고도 남는 하나의 거대한 서사(敍事)를 자랑한다.

 

여기에 깃발을 꽂은 건 할리우드 제작사 ‘레전더리픽처스’다. 이들은 무려 10년 전인 2006년에 ‘워크래프트’의 영화화를 공식 발표했다. 게임 제작사인 ‘블리자드’가 영화 제작에 합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팬들의 기대는 부풀어 올랐다. 영화화 방향을 놓고 감독과 제작사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제작에 제동이 걸리기도 여러 번이었다. 《스파이더맨》 3부작으로 유명한 샘 레이미 감독의 하차가 결정적이었다. 이 위기는 2013년 덩컨 존스 감독의 합류로 간신히 봉합된다. 그는 전작 《더 문》(2009), 《소스 코드》(2011) 등으로 호평을 받았을 뿐 아니라 자타 공인 와우저(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즐기는 유저)라는 점에서 기대를 부추겼다.

 

 

게임 ‘워크래프트’를 영화화한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서사 및 캐릭터의 흡인력이 약하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서사 및 캐릭터의 흡인력 약해 

 

영화는 게임의 출발 지점인 1994년 출시작 ‘워크래프트: 오크 앤 휴먼스’에서 상당 부분 뼈대를 가져왔다. 포털을 통해 인간들의 세계인 아제로스로 삶의 터전을 옮기려는 오크들이 인간과 기타 종족들의 연합체인 얼라이언스와 충돌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문제는 영화가 북미에서 공개된 이후 각종 언론으로부터 폭탄에 가까운 혹평이 쏟아졌다는 사실이다. 정해진 러닝타임 안에 너무 많은 이야기와 캐릭터를 담으려 한 것이 패착이며, 결정적으로 게임 유저가 아니면 세계관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아이폰 게임 광고 같은 화면’(버라이어티), ‘기존에 큰 성공을 거뒀던 《반지의 제왕》 시리즈나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연상시키는 판타지이지만 복잡한 전개와 낮은 스타 파워는 관객의 무관심과 싸우게 될 것’(가디언), ‘공허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엠파이어) 등과 같은 평들은 암암리에 3부작을 표방한 이 영화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블리자드의 다른 게임들도 영화화하고 싶다”던 마이크 모하임 블리자드 대표의 공언이 무색해진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툭툭 끊기는 편집과 너무 많이 욱여넣은 이야기가 지지부진한 흐름을 만드는 탓이다. 인간은 선(善)이고 오크는 악(惡)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난 설정 자체는 신선하지만, 원작을 차치하고 단순히 하나의 새로운 판타지 영화 시리즈로 보면 서사 및 캐릭터의 흡인력이 약한 게 사실이다. 제작비 1억6000만 달러를 쏟아부어 만든 비주얼도 이러한 약점을 전부 보완하지는 못한다. 다만 확실히 아는 만큼 보이고 읽히는 영화임에는 확실하다. 실제로 게임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또렷한 감흥을 선사하는 장면들은 게임 팬들을 위한 확실한 팬서비스다. 

 

시리즈 제작의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영화의 전 세계 배급을 책임지는 ‘유니버설픽처스’는 스페인·중국 등 게임이 크게 사랑받았던 나라들의 흥행 성적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실제로 이 영화는 중국 개봉 첫날인 6월8일에만 4570만 달러라는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 이는 지난해 개봉한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이 세운 오프닝 기록인 6860만 달러에 이은 중국 내 역대 2위의 흥행 성적이다. 

 

인기 게임 영화화에도 전략은 필요해

 

할리우드가 인기 게임을 기반으로 한 영화 제작에 뛰어든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안타깝지만, 이는 곧 혹평의 역사도 그만큼 길었다는 뜻이다. 원조 격으로 꼽을 만한 영화는 《슈퍼 마리오》(1993)다. 밝고 경쾌했던 원작의 세계를 어두운 누아르로 바꿔놓은 이 영화는 졸작 중에 졸작이라는 혹평을 감수해야 했다. 장 클로드 반담 주연의 《스트리트 파이터》(1994)도 팬들 사이에서 컬트 이상의 대접을 받지는 못했다. 

 

한동안 가라앉았던 할리우드의 게임 판권 사들이기에 다시금 불이 지펴진 건 ‘스트리트 파이터’와 같은 대전 격투 게임이 원작인 《모탈 컴뱃》(1995)의 흥행 성공이다. 할리우드 제작사들은 앞다퉈 닌텐도와 세가로 대표되는 게임 회사의 각종 판권을 구하는 데 열을 올렸다. 2000년대 들어 비약적으로 발전한 CG 기술 역시 한몫했다. 역대급 흥행 참패를 기록하긴 했지만 《파이널 판타지》(2001) 같은 영화가 제작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물론 《툼레이더》나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등 흥행 면에서 나름 순조로운 영화들도 있었다. 이때 관건은, 영화와 게임 서사 사이의 간극을 어떤 방식으로 좁히거나 메우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유저가 스스로 자신의 방향과 결말을 찾아갈 수 있는 인터랙티브성을 갖춘 게임과, 영화 관람이라는 수동적 경험은 다른 가치이기 때문이다. 게임을 소설이나 드라마 등 기타 다른 매체의 원작과 똑같이 취급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크리스토프 갱스 감독의 《사일런트 힐》(2006)이 게임 영화화 프로젝트 중 지금까지도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 이 영화는 특정 게임을 영화의 문법으로 재구성하는 대신, 영화적 서사와 닮은 원작을 영화로 만드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일본 게임 회사 ‘고나미’에서 1999년 2월에 출시한 게임이다. 영화는 미스터리한 마을인 사일런트 힐에서 잃어버린 딸을 찾아야 하는 게임 유저들의 상황을 충실히 옮겨 호평받았다. 

 

아마도 현재 블리자드의 이상향은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전략과 유사할 것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마블은 영화사에 코믹스 판권을 판매하던 시기를 넘어 자사의 콘텐트를 직접 영화로 제작, 성공적인 프랜차이즈를 이끌고 있다. 분명한 건, 서사가 정해진 ‘이야기’와 게임의 스토리를 동일 선상에서 생각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소리도 없이 사라진 무수히 많은 게임 원작 영화들이 그것이 오답임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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