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삶을 이해한다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 박소영 공연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17 14:15
  • 호수 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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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미나우》의 애잔한 울림…장애인을 바라보는 이중적 시각

 

연극 《킬미나우》 중 아픈 아버지 제이크를 바라보는 아들 조이(오종혁)

 

한 남자가 있다. 고등학생이고, 지체장애를 앓고 있다. 여느 고등학생들처럼 끓어오르는 성적 욕구가 고민이지만, 장애 때문에 이성 친구 만나는 것이 두렵다. 또 다른 남자가 있다. 한때 촉망받는 작가였지만, 장애인 아들이 태어난 이후 하루 중 대부분을 아들을 보살피며 보낸다. 사고로 아내를 잃었지만, 가끔 만나는 애인이 있다. 

 

장애인 아들의 성적 욕구에 고민하는 아버지

 

연극 《킬미나우》의 두 주인공 조이(아들)와 제이크(아버지)의 이야기다. 지체장애를 안고 태어난 조이는 잘 때를 빼곤 휠체어 위에 있다. 마음대로 화장실에 갈 수도, 밑을 닦을 수도 없다. 그런 조이에게 제이크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간병인이다. “나한테는 심각한 장애를 가진 아들이 있어. 나한테 나는 없어”라는 대사는 제이크의 일상을 잘 보여준다.

 

아들의 모든 것을 안다고 자부하던 아버지 제이크는 어느 날 아들 조이를 씻겨주다 화들짝 놀란다. 조이가 성적 욕구에 눈을 떴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제이크는 애인을 찾아가 이야기한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애인은 “조이가 남들과 똑같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이자”고 조언한다. 

 

연극은 여기서부터 관객에게 말을 건다. 장애인이 성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누군가에게는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 된다. 심지어 장애인 아들을 가진 아버지에게조차 말이다. 비(非)장애인에겐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들이, 장애인에겐 이해받아야 할 어떤 것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제이크가 아들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 상대는 자신의 ‘애인’이다. 아내를 잃고, 홀로 장애인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에게도 때때로 만나 살을 부빌 애인이 있는 것이다. 사랑을 속삭이고 정을 나눌 상대가 있으면서도 “나한테 나는 없다”고 말하는 제이크에게, 그런 기본적인 것조차 불가능한 아들 조이는 철저하게 ‘타인’이었을 뿐이다. 

 

언제까지고 아버지와 함께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 조이는 독립을 꿈꾼다. 때마침 무리해서 아들을 돌봐온 제이크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다. 늘 “난 못생겼고, 괴물 같다”고 말하던 조이에게 “언젠가는 널 알아봐줄 여자친구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하던 제이크는, 스스로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들어지자 애인의 연락을 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급기야 바지에 볼일을 보는 실수를 하자,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내뱉는다. 

 

우리 중 과연 누가 장애인의 삶을 이해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장애인 아들에게 늘 용기를 북돋우던 제이크는 정작 자신에게 장애가 닥치자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자기 안으로 숨어버린다. 기저귀 차는 게 싫다고 생떼를 쓰던 아들을 윽박지르던 제이크는, 정작 자신이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처지가 되자 자살을 생각한다. 

 

 

조이를 생각하며 걱정에 잠긴 제이크(배수빈)

 

공연 내내 여기저기서 울먹이는 관객 많아

 

아버지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조이는 안락사를 원하는 아버지 제이크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고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아버지 스스로 삶을 선택하게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조이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해줬던 것처럼, 욕조에 아버지를 눕히고 몸을 씻기며 아버지의 최후를 함께한다.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공연 내내 여기저기서 울먹이는 관객이 많다. 배우들 연기도 수준급이다. 믿고 보는 제이크 역의 배수빈은 물론, 러닝타임 내내 땀을 뻘뻘 흘리는 조이 역의 오종혁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두운 극 분위기에 시종 활력을 부여하는 라우디(조이의 친구) 역의 문성일은 대단한 발견이었다. 

 

하지만 공연은 동시에 이런 의문도 품게 만든다. 우리는 과연 우리 주변의 장애인들에게, 무대 위 조이에게 보내는 것과 같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가. 연극이 철저하게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의 삶을 이해해보도록 설계됐다는 점 역시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 있다는 사실도 우리 모두 주지해야 할 것이다.  

 

 

존엄사를 다룬 또 다룬 작품 

영화 《미 비포 유》  

 

 

조조 모예스의 베스트셀러 《미 비포 유》가 영화로 개봉했다. 전도유망한 사업가였지만 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남자, 그리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 여자의 이야기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안락사가 허용되는 스위스로 떠나 거기서 죽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의 앞에 “자신의 옆에서 살아달라” 부탁하는 여자가 나타난다.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힘겹게 사는 것’과 ‘행복하게 죽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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