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늑대’에 떨고 있는 미국
  •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21 13:20
  • 호수 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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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올랜도 총기난사 사건, 해묵은 총기 규제 논쟁 재점화

 

 

올랜도 테러를 추모하는 미국 시민들이 사건 현장에 헌화하고 있다.

“터질 것이 터지고 말았다.” 

 

지난 6월12일 새벽, 최소 50명이 숨지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올랜도 총기난사 사건을 감행한 범인이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오마르 마틴(29)으로 확인되자,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탄식이다. 마틴은 FBI가 이미 잠재적 테러 위험성이 있는 인물로 분류하고 집중수사 대상에도 올렸던 인물이다. 하지만 끝내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없었다. 


2013년 마틴이 근무하던 보안회사 동료가 그가 위험한 발언을 일삼고 있다며 FBI에 신고했고, FBI는 그를 3차례 심문하는 등 10개월에 걸쳐 조사했지만 결국 아무런 테러 혐의가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FBI는 오히려 당시 마틴이 “이슬람국가(IS)와 숙적 관계인 시아파 조직인 헤즈볼라의 멤버”라는 말만 믿고 그를 요주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마틴이 이번 총기난사를 감행하면서 911에 전화를 걸어 IS에 대한 충성 맹세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FBI는 더욱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미국 내 자생적 테러리스트의 ‘증오 범죄’


FBI는 결국 이번 참사를 ‘외국 테러 조직으로부터 잠재적인 영감을 얻어 급진화(radicalization)한 자생적 테러’로 결론을 내리는 모양새다. 하지만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은 “용의자가 기존 극단주의 조직의 일부이거나 그 같은 조직이 어떤 영감을 줬는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불특정 다수를 겨냥해 총기난사를 가한 ‘국내(domestic) 테러 행위’는 맞지만, 마틴이 순수하게 단독으로 범행을 저지른 이른바 ‘외로운 늑대(lone wolf)’형의 자생적 테러인지, 아니면 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 연계돼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는 얘기다. 그러나 사건 발생 이후 마틴의 전 부인이나 동료들은 마틴이 평소에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였고 폭력적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IS 등 테러 조직과의 직접적 연관성은 별도로 하더라도 스스로 불만을 증폭해가는 ‘외로운 늑대’로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번 참사가 이렇게 ‘외로운 늑대’에 의한 자생적인 테러 사건으로 귀결됨에 따라 미국 사회에서 다시 테러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증오 범죄를 지향하는 자생적 테러리스트는 한마디로 막을 방법이 없고 사전에 예방하기는 더욱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FBI가 마틴을 요주의 선상에 두었지만 결국 이번 참사를 막지 못한 것이 이에 대한 방증이다. 더구나 스스로 지하드(이슬람 성전)를 추종하는 ‘외로운 늑대’들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극장이나 나이트클럽 등 이른바 ‘소프트 타깃(soft target·경비가 허술한 지역)’을 범행 대상으로 삼을 경우 근본적인 예방책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FBI는 미 전역에서 IS와 관련된 1000건이 넘는 수사를 벌이고 있으며, 수만 명이 넘는 인물들을 요주의 대상으로 감시하고 있지만, 스스로 ‘외로운 늑대’가 돼버린 이들 중 누가 실제로 또 증오 범죄를 감행할지는 미리 파악하기 힘들다. 


이번 참사가 단일 사건으로 최대의 인명 피해를 내면서 또다시 ‘총기 규제’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 그 불똥은 정치권과 미 대선 정국으로 튀고 있다. 민간 보안회사에 근무했던 마틴이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고 반자동소총 등을 구입해 3시간 넘게 인질을 잡고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동안 경찰은 거의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FBI에 의해 요주의 인물로 등재된 사람이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고 살상용 총기류를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이 이번 참사를 발생시킨 근본 이유로 꼽힌다. 

 

 

 

총기 규제에 찬성하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왼쪽 사진)와 반대하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

총기 규제 논쟁, 대선 정국으로 불똥 튀어

 

하지만 스스로의 무장과 총기 소유 권리를 담고 있는 수정헌법 2조를 내세우는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은 총기 규제가 이러한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근본 대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번 참사가 발생하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나 민주당의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은 더욱 강력한 총기 규제 정책이 나와야 이런 참사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며 미 의회에 입법을 압박하고 있다. 더구나 지난해 12월 캘리포니아주 샌버나디노시(市)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으로 4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뒤 불과 6개월 만에 대형 참사가 발생해 총기 규제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반면 전미총기협회(NRA)의 지지를 받는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한 공화당 인사들은 이번 참사에도 불구하고 근본 원인은 총기 소유에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당장 이번 참사가 발생한 플로리다주의 상원의원인 마르코 루비오 전 경선 후보가 언론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은 ‘테러와의 전쟁’의 또 다른 얼굴”이라며 “총기 규제가 있었어도 누구도 막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지난해 샌버나디노 총격 사건 당시에도 총기 소유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그는 이번 사건이 터지자 이를 계기로 다시 ‘무슬림 입국 금지’ 주장을 강화하고 있다. 다만 이번 사건이 심각하게 흐르자 트럼프는 “나를 공개로 지지한 전미총기협회를 만나 ‘테러리스트 감시 명단’에 올라 있는 사람들이 총기를 구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NRA가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최악의 총기 참사가 발생한 만큼 이번 사건이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미 정치권에도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은 분명하다. 


현실적으로 총기 규제를 둘러싸고 진보적인 민주당 진영과 보수적인 공화당 진영의 입장과 갈등이 커 원만한 합의점을 돌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민주당 진영은 “신원 조회를 더욱 강력하게 해서 총기 소유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 공화당이 의회의 다수를 자치하고 있어 관철시키기 힘든 상황이다. 


결국 테러 집단으로 규정한 IS에 대해선 대대적인 공습으로 일정 규모 퇴치에 성공을 거두고 있는 미국이지만, 내부에 도사린 ‘외로운 늑대’들의 반항엔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꼴이다. 이런 가운데 해결책의 하나로 떠오르는 ‘총기 규제’마저 각 진영의 이해가 맞물려 쉽사리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언제 또 터질지 모르는 ‘외로운 늑대’들의 반항에 미국 사회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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