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 백지화, 승자는 아무도 없었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06.2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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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동남권 신공항의 입지 선정 평가결과가 6월21일 오후 3시 발표됐다. 새로운 신공항 건설은 또다시 백지화됐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장 마리 슈발리에 책임연구원은 "현재의 김해공항 확장 방안이 최적의 대안"이라고 결론 내렸다. 국토부는 불필요한 오해와 정치적 입김을 막기 위해 용역 결과를 받는 대로 지체 없이 발표하겠다고 밝혀왔다.
 

 

6월21일 오후 3시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장 마리 슈발리에 책임연구원이 신공항 백지화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 10년의 논의... 백지화로 결정된 과정

공항 하나를 결정하는 데 너무 오랜 세월이 걸렸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의 필요성은 1990년대부터 제기돼 왔지만 그 논의가 국가 차원에서 시작된 건 참여정부 때 부터다. 동남권 지역의 항공 수요가 증가할 것에 대비 신공항 건설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12월27일 타당성 검사를 지시하면서 본격화했다. 

2007년 3월부터 약 8개월간 국토연구원은 신공항 건설여건에 관해서 연구 용역을 실시했다. 당시 국토연구원은 영남권의 국제항공수요가 2024년에는 4배가량(1026만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고 신공항 건설 필요성 제시했다. 

2009년 12월까지 신공항 유치를 신청한 35개 후보지를 분석해 최종 후보지가 된 곳이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였다. 이후 입지별 항공수요와 공항 시설 규모, 입지 및 타당성 조사에서 두 곳 모두 비슷한 평가를 받으면서 두 지역 간 지역 갈등도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그러다보니 일부에서는 신공항 자체에 반대 목소리도 나왔다. 아예 백지화가 났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엄격한 타당성ㆍ경제성 검증 없이 시작된 동남권신공항 건설 계획은 지역갈등 조장을 통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고 있다"며 사회적 손실에 대한 대통령의 공개 사과와 재발방지책을 촉구했다.

2011년 이명박 정부는 가덕도(38.3점)와 밀양(39.9점) 두 후보지 모두 사업 착수의 기준이 되는 50점에 못 미친다며 계획을 백지화했다.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지만 없던 일이 됐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국민사과까지 해야 했다. 그랬던 신공항은 2012년 박근혜·문재인 두 대선 후보가 공약으로 내걸면서, 다시 불붙었다. 국토교통부는 박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3년 4월 신공항 건설을 다시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지난해 김해공항 이용객이 590만 명이 달해 1년 수용 최대치를 50만 명 초과하는 등 폭발적인 항공 수요 증가도 재추진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4년 8월 수요가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재유치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15년 6월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에 입지 선정 용역이 발주됐다. 대구·경북과 경남, 울산은 " 접근성과 경제성 등을 고려하면 밀양에 신공항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부산은 "24시간 운영이 가능하고 확장도 용이한 가덕도에 신공항을 세워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그리고 6월21일 예상보다 빨리 신공항 타당성 검토 용역을 맡은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가져온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마치 전 정권의 전철을 밟듯 신공항 부지는 없던 일로 돌아갔다. 

◆ 공정성을 가렸던 평가항목과 배점

공항의 입지는 보통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나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기준을 많이 차용한다. 슈발리에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 책임연구원은 기존의 가덕도와 밀양을 두고 평가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후보군들을 놓고 제로베이스에서 평가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최종 3가지 후보군 대상으로 “소음과 비용, 접근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도 주요 기준과 하위 기준을 정하고 가중치를 더해 결정했다. ADPi는 신공항이 장기적으로 수송능력을 감당할 수 있는 국제공항, 지역 내의 공항의 역량을 더욱 확장시키거나 보완할 수 있는 국제공항 등을 기준으로 삼았다. 기존에 이 평가항목들은 발표 직전까지도 비밀에 부쳐지면서 논란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동안 부산 측은 이미 5월25일 고정 장애물이 평가항목에서 사라졌다고 반발했다. 여기서 고정 장애물은 산봉우리 등을 말하는데 밀양의 가장 큰 약점이 사라졌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밀양의 선정을 위해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얘기를 지속적으로 해 온 이유다. 국토부는 문제 제기 시점부터 "부산 측의 억측"이라고 일축했다. 이처럼 숨겨져 있던 평가항목과 배점 등은 백지화가 된 이후에도 후보 지역들이 불복할 이유가 될 수 있다.

◆ 박탈감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부산

신공항이 없던 일이 되면서 이미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들까지 사활을 걸고 전쟁처럼 임한 과정에서 생긴 생채기는 쉽게 사라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해 사업 재추진을 앞두고 영남권 5개 시·도지사들은 "유치경쟁을 자제하고 결과에 승복하자"고 합의했지만 이미 그때의 정신은 사라진 지 오래다.   

특히 가덕도를 지지했던 부산 측은 정부의 결정에 수긍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수차례 신공항과 시장직을 연계해 승부수를 던지기도 했다. 선정을 앞두고 부산 지역 신문에는 신공항 전면광고가 매일 걸릴 정도였다. 부산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조선업이 위기를 맞으며 부산의 분위기가 매우 뒤숭숭한 상황에서 신공항마저 무위로 돌아가면서 지역 사회의 박탈감이 너무 큰 상황이다"고 말했다.

'뺏기다'는 단어는 부산의 분위기를 대변해 준다. 원래 신공항 논의는 김해공항의 포화를 예상해 부산에서 먼저 꺼낸 논의였다. 김해공항의 포화 수요를 예측해 나온 논의가 신공항으로 발전했는데, 이게 또 다시 무위로 돌아갔다. 대구․경북보다 부산이 입은 상처가 더 클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한 이유다. 

◆ MB때의 교훈, 분노는 정부의 몫

2011년 첫 번째 신공항 백지화 때 민심의 호된 분노를 정부는 겪은 바 있다. 당시 부산시는 신공항 입지평가 결과에 대해 정치적 결정과 조작 의혹을 제기했고, 영남지역 한나라당 의원들은 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당시 신공항 유치를 두고 편을 갈라 다퉜던 부산과 대구․경북 등이 정부를 한목소리로 비난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지방 홀대와 중앙집권적 형태가 극명하게 드러났다”며 수도권과 지방의 전선이 그어지기도 했다. 대규모 국책사업이 좌초한데 대한 책임론, 한 번도 아닌 두 번의 백지화가 가져올 민심 이반은 이제 정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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