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중재자는 그 어디에도 없다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6.2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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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동남권 신공항 최종 부지 백지화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재등장하면서 시작된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문제는 일각에서 ‘국론 분열’ ‘민란 가능성’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이 나올 정도로 국가적 갈등의 핵으로 부상했다.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수차례의 대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며 정치적 논리라는 덧옷을 껴입고 또 껴입어왔다. 6월21일 백지화로 결정되기까지 각 지자체들마다 입장을 발표하고, 자치단체장은 사퇴 의지를 앞세우고 가두농성을 벌이는 등 어느 때보다 정치권 안팎의 여론전이 극에 치닫는 양상을 보여줬다.

국책사업을 둘러싼 지역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큰 사업이 있을 때마다 되풀이돼 왔다. 호남고속철도(KTX)나 항공정비(MRO)단지, 서울세종고속도로 등 큰 사업을 유치하려는 지역 간에는 갈등이 있었다. 정부가 거의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 운영까지 도맡아 하는 한국의 SOC 사업 특성상 국책사업 선정을 할 때 생기는 지역갈등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리고 당연히 발생할 일이기 때문에 지역 간 갈등이 뿌리 깊은 지역주의나 불신 등 국가적 차원의 분열로 비화하지 않도록 원만하게 조율하는, 중간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동남권 신공항 사업 선정 과정의 경우에는 이런 노력이 철저하게 실패했다. 정부의 중재자적 역할은 사라졌다. 정부가 지역 간 분쟁과 갈등을 조정하길 아예 포기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도 나왔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국토부가 지자체 설득 시기를 놓쳤다”며 “대선 공약이니만큼 국토부도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백지화 결정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거친 소리도 나온다. 유치 과정에서는 ‘TK(대구·경북) vs PK(부산·울산·경남’)라는 새로운 지역구도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면 이제는 ‘지방’ vs ‘수도권’의 대립 구도도 등장했다. 갈등만 있고 중재는 없는 암울한 현실. 무엇이 이토록 지역 간의 골을 깊게 했을까.  


■ 정치논리 앞에 오락가락하는 정부


이번 동남권 신공항 사업에서는 정부에 대한 정치권과 지자체의 ‘신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동남권 신공항 사업 선정 문제가 걸어온 역사를 봤을 때 이 같은 결과는 당연할 지도 모른다. 김해국제공항의 노후문제가 제기되면서 시작된 신공항 선정에 관한 부산과 대구․경북의 대립 구도는 2004년부터 이어져왔다. 이후 노무현 정부 당시 타당성 검사를 실시했으며 2007년 대선을 앞두고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영남권 각 지역을 돌며 신공항 건설을 약속했다. 하지만 2011년 이 전 대통령은 ‘경제성 미흡, 환경 훼손’ 을 이유로 신공항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며 공약을 ‘빈말’로 만들었다. 

 

(관련기사) 20세기부터 계속된 공항 싸움의 역사

그리고 또 한 번의 대선을 앞두고 ‘신공항’ 이슈가 부활했다. 신공항은 정치인들의 표심 계산에 따라 검토-백지화-부활을 거듭하며 정치 이슈로 탈바꿈했다. 유치 과정에서 공정성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쳤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경영학)는 “가덕도와 밀양 모두 이미 2011년 정부가 경제성이 없다고 결론내린 지역인데 제3안을 찾지 않고 결국 정치 논리로 다시 이들 지역에 공항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며 “지나치게 정치논리로 흘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산 가덕도를 지지하는 측은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고향이자 정치적 지지 기반인 TK에 신공항이라는 ‘선물‘을 안겨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밀양을 지지하는 측은 반대로 박 대통령이 대선 유세 때 “부산시민들이 바라는 신공항을 반드시 건설하겠다”는 약속을 현실로 만들까 우려했다. 정부가 시행하는 정책의 정당성․적절성을 고민하기보다 정치적 역학관계를 먼저 계산했던 게 현실이었다. 

 

 정부 비밀주의가 일을 키웠다

 

 


정부가 입을 다물고 비공개․비밀주의만을 고수해 온 것도 문제였다. 정부는 형평성을 기하기 위해 신공항 부지 선정 작업을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에 맡겼다. 외부업체를 통해 공정성과 전문성을 담보하겠다는 의도였다. 대신 발표 전까지 평가항목과 배점 등이 모두 비공개였다. “입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항목이나 배점이 유출될 경우 각 주체들의 개입이 불가피해 공정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가덕도를 지지하는 측, 밀양을 지지하는 측 모두 청와대와 정부를 곱지 않게 바라봤다. 최영진 중앙대 교수(정치국제학)는 “신공항 입지 선정의 기준을 공개하고 사업을 추진해도 향후 경제성 등에 대한 논란이 불가피할 수 있다”면서 “외국 컨설팅 업체를 통해 발표한다 해도 (백지화됐지만) 탈락한 쪽에서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지적했다.

신공항을 건설하면서 생길 또 다른 피해나 갈등은 유치 과정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유치전에 참여했던 한 교수는 "장밋빛 전망에 따른 기대감 때문에 소음과 환경문제 등 신공항 건설에 따르는 피해는 말도 꺼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라고 전했다. 그는 “연구용역결과가 해당 공항의 경제성ㆍ성공여부를 개런티(보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냉정하게 수요예측부터 새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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