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퇴직금은 ‘눈먼 돈’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6.06.23 10:14
  • 호수 139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은급재단, 10년간 지속된 납골당 복마전…종교개혁 500주년 앞두고 자성 절실

 

은급재단은 벽제중앙추모공원 납골당 사업에 참여하면서 10여 년간 내홍에 빠져 있다.

 

내년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주년이 되는 해다. 당시 로마 가톨릭은 돈으로 죄를  사면받을 수 있다며 ‘면죄부’를 판매하는 등 온갖 부정과 부패를 저질렀다. 이에 루터는 1517년 10월 면죄부 판매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95개 조의 논제를 비텐베르크성 만인성자교회의 문 앞에 게시했다. 이를 신호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 종교개혁 운동은 르네상스와 함께 근대를 연 원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한국 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제2의 종교개혁을 부르짖으며 기본으로 돌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2017종교개혁500주년성령대회’(대회장 소강석 목사)는 지난 6월12일 △복음의 본질로 복귀 △목회자의 영성·윤리성 회복 및 교회갱신 △극복과 연합 △공정하고 깨끗한 교회선거 △교회문제는 교회 내 중재기관에서 해결 △삶의 전 영역에서 기독교적 가치 실천 △민족의 화해·평화·통일 노력 △세계의 화해·평화·하나됨 실현 등 8개 항의 실천운동을 정하고 정직과 청렴을 실천하자고 강조했다. 

 

 

은급재단, 납골당 문제로 10여 년간 발목 잡혀

 

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구호와 다르게 펼쳐지고 있다. 면죄부를 판매하며 돈과 관련한 부정부패가 만연했던 500년 전처럼 목회자들의 노후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독교 재단에서 각종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 연금재단의 경우, 김정서 전 연금재단 이사장이 고용했던 전 특별감사 위원인 윤아무개씨가 배임수재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윤씨가 2012년 3월부터 10월까지 연금재단 특별감사 전문위원으로 재직할 당시 연금재단 자금 1500여억원을 한 증권회사에 일괄 이전한 대가로 약 14억원을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윤씨는 연금재단의 돈 130여억원을 무등록 대부업체에 중개해 10억원을 챙기는 등 중개수수료 및 투자 자문 대가로 수억원의 돈을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 현재 윤씨는 범죄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

 

목회자들의 퇴직금이 무분별하게 운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백억원의 돈이 부실 자산에 투자되는 것은 물론 리베이트 등에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목회자들의 은퇴 연금이 주인 없는 ‘눈먼 돈’으로 전락한 모습이다. 

 

국내 최대 교단인 예장 합동총회의 은급재단 역시 다르지 않다. 은급재단은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재단법인으로, 선교사업 지원과 목회자의 은퇴·퇴직·장애 및 소천 등에 따른 생활지원 및 노후생활과 유족들의 생활향상을 위해 설립됐다. 대형 교회들은 소규모 교회 목회자를 위해 연 1회 기부금을 납부하고, 목회자는 매달 일정 금액을 은급재단에 납부하고 있다. 이 연기금을 운용해 목회자의 노후 등을 보장하는 것이다.

 

문제는 은급재단이 벽제중앙추모공원의 납골당 사업을 추진하면서 불거졌다. 은급재단은 사회복지를 위한 납골시설의 설치 및 관리 사업을 할 수 있다. 은급재단은 지난 2002년 최아무개씨에게 벽제중앙추모공원을 담보로 20억원을 대출해주면서 납골당 사업에 관여하게 된다. 이후 은급재단은 2004년 납골당을 인수했고, 2009년 충성교회에 납골당을 90억원에 매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목회자는 “당시 납골당 사업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어서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았다. 그래서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 빨리 납골당을 매각하려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계약서에 따르면, 2009년 8월7일까지 2차 중도금 23억원, 2009년 9월10일까지 잔금 40억원을 지급하게 돼 있다. 그러나 계약이 이뤄진 후 7년여가 흘렀지만 아직도 대금 청산이 되지 않고 있다. 충성교회 측은 잔금을 치르기 위해 △납골기 기수 수량 이행 △봉안증서의 교부 △소유권 이전에 관한 일체의 서류 △설치권자 변경에 관한 일체의 서류 등을 은급재단 측에 요구했지만, 소유권 이전에 관한 서류 외에 나머지 사항에 대해서는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최초 계약 때부터 설치권자 명의변경이 불가능했다는 데 있다. 설치권이 없으면 납골기를 판매할 수 없기 때문에 설치권자 명의변경은 납골당 매매계약의 핵심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은급재단과 충성교회 간의 납골당 매매계약서


 

설치권자 명의변경 불가능 알고 있었나

 

은급재단이 충성교회와 납골당 매매계약을 체결한 것은 2009년 5월29일이다. 그런데 매매계약이 체결되기 1년 전인 2008년 5월 납골당 운영과 관련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재단법인이 아닌 종교단체가 설치한 봉안당은 그 종교단체의 신도 및 그 가족 관계에 있었던 자의 유골을 안치하여야 하며 5천구 이하여야 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매수인인 충성교회는 당연히 종교단체이며 계약서에 따르면 유골(납골기)은 1만8000기 이상이다. 애초부터 충성교회는 납골당 운영의 핵심인 납골기를 판매할 수 있는 설치권자 명의변경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은급재단은 충성교회에 설치권자 명의변경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만약 은급재단이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매매계약을 체결했다면 이는 사기죄에 해당될 수 있다. 그런데 당시 계약서를 보면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 인수인계와 관련해 ‘건물 토지 등기 이전은 잔금 지급과 동시에 이행한다’라는 항목 아래 ‘단, 설치권자 명의변경은 지연될 수 있다’라는 조항이 부연돼 있다. 매우 이례적인 단서 조항으로 은급재단이 납골당 운영과 관련한 법률이 개정됐다는 것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음을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충성교회 관계자는 “개정된 법률을 은급재단이 몰랐을 리 없다. 이와 같은 단서조항을 달아서 빠져나갈 구멍을 판 것이다”면서 “향후 민사소송은 물론 형사소송을 함께 진행해 법적 책임을 분명히 물을 것이다”고 밝혔다. 

 

주먹구구 날림으로 진행된 납골당 사업

현재 납골당 사업을 운영하는 설치권자인 ○○교회가 실체가 없는 ‘유령교회’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 교회의 주소지는 벽제중앙추모공원 내에 위치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곳은 2009년 5월29일 매매계약 체결 시 인수인계서에 420기의 납골기가 설치된 납골시설이다. 또한 2009년 6월부터 2012년 중순까지 매수자인 충성교회가 매주 수요일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직원들을 위한 예배장소로 사용한 곳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교회 관계자는 주소지를 잘못 표기한 것일 뿐 실존하는 교회라고 주장하고 있다.   

 

납골당을 둘러싼 은급재단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이뿐만이 아니다. 충성교회는 2013년 은급재단을 상대로 납골당 소유권 이전등기 소송을 진행했다. 이때 은급재단 측에서 정관을 임의 조작해 납골당 관련 서류를 제출했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 은급재단이 법원에 제출한 정관에 따르면, 납골당은 보통재산으로 분류돼 있다. 보통재산의 경우 이사회를 거쳐 보통재산으로 편입한다는 결의를 해야 하고, 처분하려는 재산이 재단법인의 보통재산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반면 기본재산일 경우 주무관청의 처분허가서를 받아야만 한다. 그런데 은급재단의 주무관청인 서울 강남구청이 보관하고 있는 정관에는 납골당이 보통재산 목록은 물론 기본재산 목록에도 기록돼 있지 않다. 이와 관련해 강남구청은 충성교회에 보낸 답변서를 통해 “정관 임의조작에 대한 가능성을 구청 측에서 인지하였으므로 은급재단 측에 자료제출 등 사유를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납골당을 둘러싼 은급재단의 행태는 갈수록 이전투구 양상을 띠고 있다. 납골당 문제가 10여 년에 걸쳐 제기됐지만 은급재단 측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은급재단의 핵심 관계자들에게 모종의 로비가 들어갔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납골당과 관련해 로비자금 받았다” 폭로

 

이 의혹은 지난해 충격적인 방법으로 공개됐다. 2015년 9월께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100회 정기총회에서 허아무개 목사가 “납골당을 실제로 운영하고 있는 최아무개 권사를 만나고 난 후 건네받은 케이크 상자에 5만원권의 뭉칫돈이 들어 있었다”며 회의장에서 5만원권 4다발을 직접 꺼내 흔들었다.

 

 

2015년 9월 허아무개 목사가 납골당 운영과 관련해 로비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허 목사는 “최 권사로부터 로비를 받은 의혹이 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공개할 수 있다”고 폭탄 발언을 해 회의장은 일순간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일부 참가자들이 명예훼손을 운운하며 강하게 반발하면서 로비 리스트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은급재단의 민낯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했다. 

 

10여 년간 지속돼온 납골당을 둘러싼 논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매수자인 충성교회에서는 강력한 법적 대응을 시사하고 있고, 로비 부분이 확인된다면 수사 당국이 나설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