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분노범죄 "사람이 무섭다"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07.05 14:01
  • 호수 1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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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분노범죄로 공포에 질린 대한민국

5월23일 서울 서초경찰서 앞에서 SNS를 통해 모인 20대 여성들이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 수사에 대해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6월26일 오후 5시쯤 서울시 광진구의 한 영화관에서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영화 상영 도중 이아무개씨(남·46)가 옆자리에 있던 여성 관객에게 욕설을 하고 폭행을 한 것이다. 영화 상영 도중 시비가 붙어 소란을 피우자 주변 관람객들은 이씨를 제지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씨는 팔걸이에서 팔을 치우지 않는다는 이유로 욕설을 하고 여성 얼굴을 가격한 혐의를 받고 있다.

  

5월31일에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대로 한복판에서 서아무개씨(남·40)가 운전 시비 끝에 박아무개씨(남·31)를 실신시키고 도주한 사건이 발생했다. 서씨는 직진과 우회전 모두 가능한 차로에서 길을 터달라며 앞 차량에 수차례 경적을 울렸다. 앞 차량이 꿈쩍도 하지 않자 차량을 가로막은 후 박씨의 목 부위를 때리는 등 서로 폭행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박씨가 바닥에 쓰러져 기절하자 서씨는 그대로 현장을 떠났다. 경찰에 붙잡힌 서씨는 “길을 양보해주지 않아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고 진술했다.

 

최근 강남역 살인 사건이나 등산객 피살 사건 등 다수의 사건에서 분노조절장애, 충동조절장애 등이 사회문제를 발생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대부도 사체 유기 사건의 조성호, 2015년 아내를 죽인 김하일, 2014년 수원 팔달산 토막 살인 사건의 박춘풍, 이들의 공통점도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했다는 점이다. 치열한 경쟁 구도와 각박한 사회 환경 속에서 분노범죄가 극에 달하면서 원인과 문제점, 해법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오늘날의 분노범죄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 구조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문한다.

 

‘헝그리(hungry) 사회’였던 대한민국이 ‘앵그리(angry) 사회’로 변하고 있다. 분노와 불만으로 자제력을 잃고 너무 쉽게 저질러진 사건·사고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지상파 방송에서도 《엄마가 뿔났다》 《앵그리 맘》 등 화(火)를 주제로 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 정도였다. 어느 사회나 화를 내고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 정도와 방법이 지나쳐 사회적 문제로 이어진다는 게 문제다.

 

 

성인남녀 절반은 분노조절장애…10%는 ‘심각’

 

한국인이 분노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은 관련 통계 수치에서도 확인된다. 분노범죄가 올해 들어 유독 사회문제로 비화되기는 했지만 그동안 분노범죄는 꾸준히 우리 사회 내부에서 증가하고 있다. 분노범죄는 일상 속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경찰청 범죄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우발적 범죄 비율은 29.7%에서 2014년 33.4%로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였다. 우발적으로 발생한 폭력 범죄도 해마다 15만 건 이상을 상회하고 있다.

 

실제로 운전 시비 끝에 보복운전을 해서 경찰에 입건된 사람은 지난 2~3월 두 달간 502명에 달했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다툼도 지난 몇 년 사이 급증했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층간소음 민원은 2012년 7021건에서 2014년 1만6370건으로 배 이상 증가했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다툼이 폭행·살인으로 번지는 경우도 발생했다.

 

문제는 분노범죄가 많아지면서 사회적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박아무개씨(여·33)는 극도로 심한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는 게 두렵고 낯선 사람으로부터 해를 입을 것이라는 생각을 항상 한다. 과거 학창 시절에 성폭력을 당했던 박씨는 수년간의 치료 끝에 일상생활로 복귀했지만 최근 불안 증세가 심해지고 있다. 결국 그녀는 올해 초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60대 노모의 손에 이끌려 매주 한 차례씩 대학병원 정신과에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지만 증상은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박씨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불안장애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이 한 해 50만 명에 달한다. 국민 100명 가운데 1명은 불안 증세로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고 있다는 의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료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공포장애(질병코드 F41)로 병원을 찾은 사람은 2011년 44만4995명에서 2015년 52만2365명으로 17.4% 증가했다. 특히 2015년 병원을 찾은 환자들 가운데 여성 비율이 63%(32만8967명)로 남성(37%)에 비해 훨씬 높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누구나 분노범죄의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4월 발표된 대한정신건강의학회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50%가 분노조절장애를 겪고 있고, 10% 정도는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습관 및 충동장애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지난 2011년 4470명에서 2015년 5390명으로 4년 만에 20% 이상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분노조절장애가 병원을 찾을 정도로 심각하지 않더라도 분노범죄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분노범죄의 1차적인 원인은 분노조절장애다. 분노조절장애는 ‘외상 후 격분 장애’라는 의학적 용어로 설명되기도 하는데, 자신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믿음이 고착화된 데 기인하고 있다. 이러한 외부적 요인이 반복되면 충동을 쉽게 조절하지 못하고 타인에 대한 공격 성향이 폭력적인 행위로 드러난다.

 

전대양 가톨릭관동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분노조절장애가 있다고 해서 다 잠재적 분노범죄자로 봐서는 안 된다”면서도 “분노범죄는 분노조절장애 진단이 확정된 사람뿐만 아니라 분노조절장애에 가까운 성향을 보이는 사람이 저지르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분노범죄에서 층간소음이나 운전 시비 같은 사소한 다툼은 사실상 ‘촉발 요인’ 중 하나일 뿐, 심리적 문제가 핵심적인 원인이라는 의미다. 그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격한 반응이 나오기 전 인지 작용을 통해 판단이 개입된다”면서 “하지만 분노 조절이 쉽지 않은 이들은 이러한 판단의 개입 없이 거침없는 자극과 반응이 나타나면서 분노가 폭발하는 상황에 이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멸’과 ‘스트레스’의 일상화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의 범인 김아무개씨(남·34)는 “평소 사회생활에서 여성에게 무시당했다”는 이유로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살해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분노 조절의 한 측면으로 사회 전반에 내재된 모멸감을 꼽았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심각한 모멸감을 느끼는 경우에 손상된 자존감을 회복하려는 시도의 하나로 폭력적인 공격행위를 한다”고 설명했다.

 

모멸은 주로 개인과 개인 관계의 문제보다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주로 나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향하기 마련이다. 이는 학력이나 경제력·외모·나이·집안환경 등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습성에서 비롯된다. 동시에 타인을 향한 모멸과 모욕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는 경향도 늘어난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들이 강남역 살인 사건 당시 조롱 화환을 보내거나 단식 농성자들 옆에서 피자를 시켜먹는 등의 행동을 한 것도 모멸에 대한 반작용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이를 인정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서열화하는 습관이 마음속 깊이 박혀 있다”며 “차이를 인정하는 가치체계를 확립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삶의 기반이 빈약해 사람들이 늘 불안해한다”며 “한국 사회의 오만과 모멸 구조가 남을 깎아내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으려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한다”고 진단했다. 

 

이병철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회적 구조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분노조절장애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이기보다는 한 개인이 존재하고 있는 사회 내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면서 “세상살이가 갈수록 힘들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의도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서 좌절감이 쌓이는 것도 분노조절장애의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2년 발생한 묻지마 범죄 피의자 48명 가운데 36명(75%)은 범행 당시 무직이었다. 11명은 비정규직 혹은 일용직 종사자였다. 전체 중 10명(20%)은 고정된 주거지가 없었고 25명(50%)은 동거인 없이 혼자 살고 있었다.

 

극도의 스트레스도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쟁과 개인주의 심화 등 사회적 불안전성은 심리적 불안정성을 높이기 마련”이라며 “이것은 ‘묻지마 범죄’ ‘보복 운전’ 증가와 같은 분노범죄로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윤영준 한국심리상담센터 소장은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개인이 받는 스트레스 요인이 곳곳에 상존하고 있어 개인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면서 “이게 쌓이면서 심화되고 결국 분노범죄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만큼 사회적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안심귀가스카우트’ 대원들이 5월28일 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여성과 동행하고 있다. 최근 화장실·지하철 등에서 ‘묻지마 범죄’가 속출하면서 늦은 밤 귀가하는 여성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사전 예방 쉽지 않지만 사회적 관심 필요”

 

분노범죄의 특징은 범죄의 유형이 특정되지 않아 사전에 예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범죄자의 화를 촉발시킨 상황 혹은 상대’가 개인별로 다를 뿐만 아니라, 동일 인물이라도 시시때때로 달라진다. ‘분노’라는 감정이 언제 무엇을 계기로 발생하는지 규명할 수 없기 때문에 분노범죄는 예방하기가 어렵다. 분노범죄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구체적 방안이 마련되기 쉽지 않은 이유다.

 

전문가들은 경쟁과 반복이 일상화되는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분노를 적절히 제어하지 못하는 데는 분노를 느끼는 감각이 무뎌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인이 분노를 스스로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무뎌져 있어 자신의 합리적인 이성으로써 감정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게 개입하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홧김에’ ‘순간 울컥해서’라는 말 뒤에 피의자가 놓여 있었던 맥락에 대한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대양 교수는 “아무런 문제가 없던 사람이 갑자기 화가 나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겉으로 드러난 잘잘못뿐만 아니라 사고가 발생하게 된 배경에 대해 깊숙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영준 소장은 “가족 사이에 분노범죄가 많은 이유는 가족 관계에서 받는 일상적이고 작은 스트레스들이 가족이라는 이유로 억압된 채 넘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면서 “일반적으로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 분노감이 더 큰데, 이것이 인간 심리에서 부정적인 에너지로 쌓이면 폭발해 범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분노조절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적절히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병철 교수는 “심리적 스트레스나 화를 일으킬 수 있는 타인의 말과 행동 등 외부 자극에 자주 노출되면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까지도 자신이 분노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면서 “자신의 내면을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는 명상을 통해 외부 자극으로 인한 정신적·육체적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감각을 키우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근에는 분노조절 상황을 가정한 가상현실치료 프로그램 개발 주장도 나오고 있다. 류창현 을지대 교수는 ‘분노형 범죄에 대한 새로운 정책대안으로서의 가상현실치료(VRT)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특수 영상촬영기술 등을 이용해 일반 현실세계를 가상적으로 제공하고, 그 안에서 분노조절과 사회기술능력을 키우는 치유 기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분위기 전환이 절실하다는 점이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취업난을 겪는 청년층이나 경제적 압박을 받는 계층이 화풀이 형태로 사회적 공격을 행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개인적 요소와 사회적 요소를 모두 고려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분노범죄를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사회문제로 간주해 사회 구성원 간의 소통과 신뢰의 부족을 개선하는 등 사회적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른 방식으로의 행복, 다른 방식의 기회를 모색할 수 있는 사회로 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사회 양극화나 물질만능주의 풍조 등에 대해 반성하고 다른 가치들을 찾으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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