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내몰리는 보육원 아이들
  • 구민주 인턴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26 14:43
  • 호수 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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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8세 되면 무조건 퇴소해야

 

#1. 서울 시내 한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박영빈(가명·19)군은 요즘 들어 부쩍 고민이 많아졌다. 수능이 100여 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도통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현행법상 만 18세, 즉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내년 2월이면 지금 살고 있는 보육원에서 나가야 한다. 그때 그의 수중에 주어지는 것은 지자체가 지원하는 자립정착금 500만원 남짓이 전부다.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 전까지의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에게 아르바이트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당장 가장 큰 걱정거리는 주거 문제다. 서울 시내 조그만 원룸이라도 구하려면 이 500만원은 몽땅 보증금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박군은 “일이 바로 구해질지도 불확실하고, 아르바이트 하나로 먹고살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며 착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2. 신예림(가명·여·23)씨의 경우 그나마 운이 좋았다. 고교 졸업 후 보육원의 배려로 2년 더 그곳에 머물다 담당교사의 도움으로 2년 전, 보육원 퇴소자들을 위한 상록자립생활관에 바로 입소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신씨는 무사히 대학을 졸업한 후, 오는 9월에 있을 간호조무사 시험 준비에 열중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규칙상 25세가 되면 이곳 생활관에서도 나가야 하는데, 앞으로 남은 2년 동안 자립 자금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게다가 시험공부를 하느라 모든 아르바이트도 중단한 상태다. 신씨는 본인의 상황을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라고 빗대어 말했다.

 

 


 

 

자립생활관 혜택, 전체 퇴소자의 7% 불과

 

보육원 퇴소를 앞두고 있거나 이미 퇴소한 이들의 ‘안정적 자립’을 위한 걱정은 비단 몇몇만의 문제가 아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퇴소자와 퇴소 예정자들은 다양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걱정거리는 단연 주거 문제였다. 한 퇴소 예정 학생은 “당장 살 곳이 없으면 싫어도 당분간 친척집에 머물러야 한다”면서 “그마저도 없는 친구들은 더욱 막막해한다”고 말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보육원에서는 1990년대부터 퇴소자들을 위한 자립생활관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퇴소자들에게 독립 주거 공간을 마련해주고 공공요금도 대신 납부해주고 있다. 개개인의 자금 관리나 진로를 위한 상담도 제공한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이런 시설은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다. 서울 3곳을 포함, 전국에 총 12개가 운영 중이며, 총 정원은 최대 385명이다. 그러나 최대 5년까지 이곳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단순 수치상 매년 77명 정도의 공석만 생긴다. 전국 278개 아동복지시설에서 매년 1000여 명의 청소년이 퇴소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도 1203명의 퇴소자가 발생했다. 이 수를 감안하면, 자립생활관의 수혜를 받을 수 있는 건 전체의 7% 안팎에 불과하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시설에 입소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전 시설에서 추천서를 받거나 대학 입학, 혹은 취업이 확정된 이들만 들어올 수 있다. 생활관 관계자는 “수용 인원이 정해져 있다 보니 절차를 까다롭게 할 수밖에 없다”며 “바로 다른 곳을 알아볼 수 있도록 빨리 탈락 소식을 알려주는 게 우리 생활관으로선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어렵사리 주거지를 마련했다 하더라도 보육원 시설처럼 자신의 생활을 돌봐줄 보호자가 없으니 이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은 계속된다. 그럼에도 보육원 퇴소자들이 체감할 만한 수준의 정부 지원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들 지원에 책정된 예산이 적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울시 관악구에 위치한 상록자립생활관의 내부 모습

 

 

정부 지원 없고, 지자체 예산도 해마다 줄어

 

현재 보육원 퇴소자들을 위한 지원은 모두 지방이양 사업으로, 각 지자체 담당이다. 지자체가 배정한 관련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도 꾸준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 서울시의 경우, 자립정착금·직업훈련비 등이 포함된 예산 항목이 2014년 55억원에서 지난해 48억원, 올해 47억원으로 2년 사이 12.7% 줄어들었다. 서울의 경우는 그나마 낫다. 강원도의 경우 마땅한 자립생활관 하나 없으며, 올해 도내 차원에서 배정한 자립정착금 예산도 ‘0’원인 상태다.

 

이처럼 지자체가 보육원 퇴소자 지원에 소극적인 것은 정부 차원의 뚜렷한 지원안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 관계자에 따르면, 자립 지원의 경우 예산 배정부터 관련 프로그램 진행까지 모두 지자체 재량에 따르고 있다. 정부에서는 ‘각 지자체는 퇴소자의 자립을 위해 주거, 학업 등의 측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권고 차원의 근거만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반면 가시적인 성과는 낼 수 없는 보육원 퇴소자 지원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충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자체의 재정 형편과 담당 공무원의 관심도에 따라 때마다 예산과 지원이 달라지는 상태”라며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청소년들의 자립을 위한 지속적이고 다양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쉽게 탈선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4년 전 보육원을 나온 강찬우(가명·23)씨도 이런 케이스다. 어릴 적 부모님과 불행하게 이별한 후 대인기피증을 갖고 있던 강씨는 퇴소 후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이어가지 못해 곧장 생활고에 시달렸다. 급기야 24시간 PC방을 전전하거나 노숙을 하며 2년의 시간을 보냈다. 당장 돈벌이를 위해 각종 불법에 손을 댔다가 경찰서를 제집처럼 들락거리기도 했다.

 

이미령 상록자립생활관 사무국장은 금전적인 지원 외에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에도 꾸준한 관리가 없으면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현재 생활관 입소자 30명 중 4명이 심리상담을 받고 있는 정도인데, 그나마 시설 밖은 이 같은 상담의 기회마저 없다”고 전했다. 노충래 교수도 이런 주장에 힘을 보탰다. 그러면서 해외사례로 대안을 제시했다. 노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시설 아동들을 처음부터 자립시키지 않고 오랜 기간 자립을 위해 필요한 생활 교육을 제공한다. 때가 되어 나가더라도 자립 능력이 갖춰졌다고 판단되기 전까지 교사 한 명과 3~4명의 퇴소자를 함께 생활하게끔 하기도 한다. 노 교수는 “미국의 경우 단순한 금전적 지원을 넘어 진정한 자립을 위한 ‘관심’을 제공한다”며 “국내에도 이런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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