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먹는 약은 안전합니까?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07.27 10:09
  • 호수 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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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약국에서만 하루에 한 건 이상 처방 오류 생겨”…약사의 처방검토 기능 강화 필요

40대 주부 박진혜씨는 지난해부터 기관지 문제로 동네 의원에서 정기적으로 약 처방을 받아왔다. 얼마 전에도 처방전을 약국에 주고 약 봉투를 받았는데 처음 보는 약이 들어 있었다. 박씨는 “병원에서 다른 사람과 내가 거의 동시에 간호사로부터 처방전을 받았는데 그 사람과 처방전이 바뀐 것”이라며 “약국에서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엉뚱한 약을 먹을 뻔했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처방 오류다. 처방 오류란 의사가 실수로 약을 잘못 처방한 것을 말한다. 정부의 공식적인 집계가 없고, 의사가 처방을 수정하면 기록도 남지 않아, 정확한 처방 오류 건수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전국에서 자원한 9개 약국이 지난 2~4월 처방 건수와 오류를 수정한 건수를 기록했더니 모두 6만여 건의 처방 가운데 260건의 오류가 발생했다. 한 약사는 “약사가 처방전의 오류를 잡은 게 이 정도이고 실제로는 더 많은 처방 오류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사실 우리 약국에서도 하루에 한 건 이상씩은 발생한다”고 밝혔다.

 

 

 

위궤양 약이 이중 처방된 처방전을 익명의 제보자가 시사저널에 보내왔다.


 

 

의사의 매너리즘이 문제

 

처방 오류의 유형도 다양한데, 용량 및 투약횟수 오류가 117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처방 일수 조정(42건), 중복성분 삭제(34건), 기타(67건) 등이었다. 기타에는 동명이인의 주민등록번호 기재 오류, 보험 적용 가능 약물의 비보험 처방, 실제 처방일과 처방전의 일자 오류 등 사례가 있었다. 한 대학병원 전문의는 “과거에 나도 치료 효능을 높이기 위해 기존 약의 복용량을 2배로 올리겠다고 환자에게 말하고서는 실제로는 기존과 같이 처방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한 약사는 “한 달 치 약을 하루 치로 처방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처방 오류와 관련해서 일반인이 크게 우려하는 점은 약의 부작용이다. 소송까지 간 사례도 있다. 박아무개씨는 2000년 우울증·불면증·소화불량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 의사가 당뇨병약을 잘못 처방한 탓에 박씨는 급성 저혈당 쇼크로 뇌 손상을 입었다. 환자 가족은 해당 병원과 의사를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냈고, 수원지방법원은 1억여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의약분업이 시행된 해부터 처방 오류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며 “예전에 같은 병원에 있던 동료 의사가 마약류 진통제 용량을 과하게 처방해서 환자가 뇌사상태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한 약사는 “위궤양 또는 역류성 식도염 치료제 중에 하루에 2번 복용하는 게 있는데 얼마 전 의사는 이를 3번 복용하도록 처방했다”며 “이 약은 여성호르몬을 증가시켜 남성의 가슴이 발달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30대 주부 김아무개씨는 2013년 자신에게 항생제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의사에게 알리고 약을 처방받았다. 그 약을 먹은 김씨는 두드러기 증세에 호흡곤란까지 생겼다. 의사가 항생제 알레르기를 고려하지 않은 채 약을 처방한 것이다. 약 이름이 비슷해서 잘못 처방하기도 한다. 위장약(파티겔)을 처방해야 할 환자에게 지사제(포타겔)를 처방하고, 아스피린을 예방 목적 용량인 100~200mg 용량 대신 진통해열 목적 용량인 500mg으로 처방한 것처럼 허용용량보다 많은 용량으로 처방한 경우도 있다. 한 의사는 “처방 오류가 생기는 배경에는 의사의 매너리즘이 있다”며 “연일 비슷한 환자를 접하다 보니 기계적으로 처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들의 약물에 대한 지식 부족도 처방 오류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삼성서울병원 약제부가 2007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처방(2만4000여 건) 중 수정된 처방(900여 건)은 3.7%였다. 그 원인으로 의료진의 약물에 대한 지식부족이 410건(44%)으로 가장 많았다. 처방 입력자 실수는 339건(36%), 계산착오 162건(17%) 등으로 나타났다. 처방 오류 10건 중 4건은 의사들의 약물 지식 부족 탓인 셈이다. 한 의사는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처방하는데 약의 적응증을 살피고 아니다 싶으면 다른 약을 또 찾아보는데 미처 이전에 본 약을 삭제하지 않으면 그대로 처방전에 표기되기도 한다”며 “약 처방에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처방 시스템의 개선도 필요해 보인다. 부적절한 약물 사용을 사전에 점검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DUR)이 있지만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 대학병원 내과 교수는 “DUR로 중복 처방은 걸러지는데 다른 병원에서 어떤 약을 처방했는지는 알 수 없다”며 “다른 병원에서 처방한 약과 내가 처방한 약이 같이 먹어서는 안 되는 약인지 확인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의사가 컴퓨터로 처방전을 작성하면 환자는 수납창구에서 간호사로부터 처방전을 받는 현재의 처방 행태도 문제다. 의사가 환자에게 직접 처방전을 주고 설명하면 처방 오류를 상당 부분 방지할 수 있다는 게 의료진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용식 건국대병원 두경부외과 교수는 “예컨대 당뇨 환자에게 엉뚱한 약을 처방하면 경고가 뜨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현재는 의사의 처방전이 바로 약국으로 가고 약사도 아무 생각 없이 조제해서 환자에게 건네주는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약사 “환자 몰래 의사에게 처방 확인”

 

의사가 실수로 잘못된 처방을 했더라도 대부분은 약사에 의해 걸러진다. 얼마 전 지방의 한 병원에서는 중증 근무력증(신경장애로 근육이 쇠약해지는 질환) 환자에게 근육이완제를 처방했다. 그 환자로부터 처방전을 받은 인근 약국의 약사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처방한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처방 내용을 확인한 후 처방 오류를 발견했다. 그 약사는 “환자가 나에게 근력이 약해져서 약을 타러 왔다고 얘기해서 알았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처방한 대로 약을 내줬을 것”이라며 “일부 근육이완제는 근무력증을 악화시키므로 처방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병원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약국 입장에서 대놓고 항의할 수 없으므로 환자 모르게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약 처방 내용을 확인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배경 때문에 약사의 처방검토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약사의 처방검토 기능은 약사법에 ‘약사 또는 한약사는 처방전의 내용에 의심이 나는 점이 있을 때는 그 처방전을 발행한 의사·치과의사·한의사 또는 수의사에 문의해 그 의심나는 점을 확인한 후가 아니면 조제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돼 있다. 모연화 약사는 “처방검토 기능을 강화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길 필요성이 있다”며 “약사는 처방 약만 조제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환자를 위해 이런 일을 충실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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