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 악몽’ 늪으로 빠져드는 힐러리
  •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01 14:21
  • 호수 1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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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럽 조사, 힐러리에 대한 ‘비호감’ 57%…트럼프와 비슷한 수준

“제기랄(f***ing) 또 이메일 악몽이 덮쳤다.” 미국 주요 정당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캠프에서 최근 터져 나오는 탄식이다. 높디높은 남성의 벽을 깨고 여성으로서 최초로 미국 대통령 후보에 선출됐고 당선 가능성이 유력한 것도 사실이지만, 힐러리 진영에는 ‘이메일 스캔들’을 넘어 ‘이메일 악몽’이 몰아치고 있다. 국무부 장관 재임 시절 개인 사설 메일을 사용했다는 이른바 ‘이메일 스캔들’에 발목이 잡혀 경선 기간 동안 곤욕을 치렀지만, 연방수사국(FBI)의 불기소 처분으로 한시름 놓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엔 폭로 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에 의해 민주당 전당대회를 사흘 앞둔 지난 7월22일 민주당 전국위원회 이메일이 폭로되고 말았다.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7월28일(현지 시각), 민주당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된 힐러리 클린턴이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웰스파고 센터’의 단상에 오르고 있다.


세 차례 TV토론도 힐러리가 넘어야 할 산

 

폭로된 이메일에서 힐러리 진영이 경쟁자인 버니 샌더스를 경선에서 탈락시키기 위해 여러 공작을 벌인 정황이 드러나면서 큰 파문을 몰고 왔다. 오히려 칼자루를 쥐게 된 샌더스가 민주당의 단합을 위해 힐러리를 대통령으로 밀어줄 것을 호소하면서 파문이 잠시 물밑으로 가라앉았을 뿐이다. 위키리크스의 설립자인 줄리언 어산지는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더 많은 자료를 공개할 수도 있다”며 “그로 인해 누군가는 창피를 당하는 재미있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힐러리의 당선을 막기 위해 이메일을 추가로 폭로하겠다는 위협을 한 것이다. 

 

힐러리의 경쟁자인 공화당의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이 호기(好機)에 한술 더 떴다. 그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이메일 해킹 사건이 터지자 러시아가 힐러리의 이메일을 해킹하기 바란다는 폭탄선언을 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만약 러시아가 해킹을 했다면 아마도 힐러리의 이메일 3만3000건도 갖고 있을 것”이라며 “거기에는 일부 멋진 것들도 있을 것이다. 두고 보자”며 조롱을 이어 갔다. 힐러리가 개인 메일이라며 사설 메일서버에서 삭제한 3만3000건의 메일을 가리키는 것이다. 대선후보가 타국에 간첩 행위를 하라고 부탁했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힐러리의 ‘이메일 악몽’을 반드시 이용하겠다는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힐러리를 덮친 ‘이메일 악몽’은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그대로 현실화되고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를 하루 앞뒀던 7월25일,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이 발표한 조사에 의하면 힐러리에 대한 ‘비호감’ 정도는 57%에 달했다. 38%만 ‘호감’이 있다고 밝혀 갤럽이 1992년 처음으로 힐러리에 대한 호감도를 조사한 24년 동안 가장 낮은 수치가 나왔다. 여성 비하 발언 등 막말을 거듭하고 있는 트럼프가 59%의 ‘비호감’을 기록해 결국 힐러리도 거의 트럼프와 같은 수준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힐러리를 이렇게 추락하게 만든 것은 단연 ‘이메일 스캔들’이다. 비록 FBI가 불기소 처분으로 법적 책임의 굴레는 벗겨주었지만, 윤리나 도덕적인 측면에서 여론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한 셈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미국민의 절반이 넘는 사람이 FBI의 이메일 스캔들 조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실은 이를 잘 말해 준다. FBI가 조사 발표에서 불기소 처분을 결정하면서도 “실제 110건의 메일이 1급 상당의 국가비밀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밝힌 것이 오히려 국민들에겐 ‘힐러리의 잘못이 크다’는 인식을 확인해 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결국 힐러리는 국가안보를 기만한 권위주의적인 정치꾼이라는 부정적 인식만을 유권자의 뇌리에 남긴 꼴이다.

 

민주당의 힐러리와 공화당의 트럼프 대결로 결론이 난 미 대선 본선은 이제 역대 최악의 진흙탕 싸움이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해지고 있다. 결국 사상 최악의 비호감 이미지를 가진 두 후보가 자신의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상대방의 비호감도를 높이기 위해 더욱 네거티브 전략을 써야 하는 숙명에 빠진 셈이다. 특히 남성 대 여성이라는 대결만이 아니라, 미국 주류 정치인과 이에 반기를 든 ‘아웃사이더’의 대결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이 달라도 너무 다른 배경을 가진 것도 한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방어’ 집중한 힐러리가 불리할 수도”

 

하지만 최초의 여성 미국 대통령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쓰겠다는 힐러리의 포부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더욱 힐러리가 궁지에 몰리는 모양새다. 무엇보다도 기성 정치권에 환멸을 느낀 유권자들의 불만이 힐러리보단 트럼프 지지에 몰리고 있다. 제조업 침체로 타격을 받은 미 중북부 지역의 백인 노동자층의 트럼프 지지 열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에서 나타났듯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신(新)고립주의’ 열풍과 이민자에 의한 잇단 테러 사건도 트럼프가 부추기는 반(反)이민 정서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가 갖은 막말을 하고 있음에도 오히려 표가 모이고 있는 기(奇)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대선 당락을 좌우한다는 오는 9월과 10월 사이에 열릴 세 차례의 TV토론도 힐러리에겐 넘어야 할 산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이메일 스캔들’을 포함해 이미 트럼프에게 엄청난 공격거리를 제공한 힐러리 진영에 또 어떤 불똥이 튈지 아무도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한국계 최초로 공화당의 미 연방의원 3선을 역임한 김창준 전 의원은 “이번 대선이 예전보다는 미디어의 영향력이 크게 떨어졌지만, 대선 TV토론에서 방어를 해야 하는 쪽이 늘 불리했다”며 이메일 스캔들 등으로 수세에 몰린 힐러리가 훨씬 불리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 전 의원은 “오히려 이번 미 대선은 트럼프와 힐러리가 막상막하를 보이다가, TV토론을 계기로 트럼프가 확실한 승기를 잡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확신했다.

 

각 당의 전당대회가 끝나고 대선후보로 공식 등극한 민주당의 힐러리와 공화당의 트럼프 중 누가 과연 대통령에 당선될지는 실제로 뚜껑을 열어봐야 알 정도로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동안 힐러리의 당선을 확실시하던 예측들이 사라질 만큼 점점 더 힐러리 진영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기성 정치에 염증을 느낀 ‘반란표’들이 힐러리를 매개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당선이 유력해질수록 이에 자극을 받은 반(反)트럼프 진영의 ‘결집표’가 이를 상쇄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번 미 대선은 역대 최악의 진흙탕 싸움 속에서도 역대 최고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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