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이들을 위한 이스라엘 교수의 조언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6.08.0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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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로 들어오게 하는 것"

역사적으로 트라우마에 많이 노출된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지진이나 테러 등으로 정신적 충격을 입은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트라우마 치료에서만큼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이스라엘 민간 구호 기구인 ‘이스라에이드’ 소속 의료진들이 진도 팽목항 심리상담 지원센터에 방문해 상담치료사들에게 심리 상담에 대해 조언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7월29일, 이스라엘 허조그병원 아동청소년임상센터장을 맡고 있는 루스 홀렌츠크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교수가 한국을 방문했다. 홀렌츠크 교수는 고려대학교 안산병원에서 ‘트라우마의 회복과 공동체 성장’이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를 통해 ‘트라우마 레질리언스와 외상 후 성장’을 얘기했다. 세월호 참사로 피해를 입은 가족들과 지역사회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일하는 ‘안산온마음센터’가 주관한 2016년 후반기 국제 전문가 초청 교류 세미나다. 정신건강과 재난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했다. 

 

루스 홀렌츠크 교수


홀렌츠크 교수는 먼저 한 사건을 설명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예수살렘의 큰 결혼식장에서 일어난, 수 십 명의 사상자를 낸 사고였다. 사고 이후 상담센터 자원 봉사자로 활동했던 그는 자신에게 치료를 받았던 사람들 중 젊은 여자 군인 한명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도시 중심의 자대에 배치됐고, 큰 어려움이 없는 업무를 맡아와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하던 여군이었다. 그러나 이 사고로 인해 많은 것이 달라졌다. ‘군인’으로서, 한 사람의 ‘피해자’로서 여러 시신을 마주하고 희생자들을 만나면서 지금까지 겪어본 적이 없는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홀렌츠크 교수는 “이 여군은 2주 만에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극복해가는 과정이 당연하다는 것을 배우면 일상으로 돌아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며 “이 경험으로 인해 트라우마적 사건으로 인생이 흔들린 사람들에게 정확한 시기와 방법을 갖고 접근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트라우마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의식 가져야 

 

트라우마 이벤트(외상 사건, traumatic event)는 생명을 위협하거나 강렬한 공포를 유발하는, 급작스럽고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말한다. 트라우마 이벤트를 겪은 사람들이 반복하는 단계가 있다. 자기가 가졌던 트라우마와 비슷한 경험을 거부하고 회피하는 것이다. 유사한 사건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고, 트라우마에 대한 모든 것을 잊으려 애쓰는 감정적인 상태가 지속된다. 일명 외상 후 클러스터(Posttraumatic Cluster)다. 수면 중 혹은 각성 중에 떠오르는 이미지로 트라우마를 일으킨 사건을 재경험하면서, 자신과 타인,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지속되고 증대되는 것이다. 남이 쫓아오는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도 계속 뒤를 돌아보고, 버스 폭탄 테러를 경험한 사람은 버스를 탔다 내렸다를 반복하는 긴장 상태를 보이기도 한다. 

 

홀렌츠크 교수는 이 과정을 ‘이해하는 단계’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충분히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얘기하면서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슬픔을 극복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안전하다’,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라는 점을 재검하면서, 자신이 희생자가 아니라 트라우마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강한 면모를 구축해야 하는 과정이다. 

 

지난 4월15일 안산에서 열린 세월호 2주기 추모제


트라우마 회복은 ‘일반적인 마술’

 

홀렌츠크 교수는 《오딧세이》의 “자신이 공들이고 견뎌낸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슬픔조차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기쁨이 된다”는 구절을 인용했다. 그는 “외상을 경험한 이후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외상 후 성장’을 하려면 매우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외상 후 성장을 겪게 되면 삶에 대해 감사하고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맺게 되며 개인의 힘에 대한 자각을 증진시키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치료의 방식은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미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지만, 대응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다. 인내심을 갖고 생존자들이 원할 때, 준비가 됐을 때 미래가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트라우마가 얼마나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지’와 같은 어리석은 얘기를 하기보다, 그들이 그 트라우마를 극복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생존자가 두려워하는 것을 보지 않고, 원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이 그들에게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는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트라우마의 생존자들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라며 “생존자들을 대할 때 겸손하고 세심하게, 존중의 마음을 담아 대해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홀렌츠크 교수는 트라우마의 ‘회복’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사전적 의미는 물체가 원래의 크기와 모양을 되찾으려는 힘이다. 여기서 회복탄력성은 큰 위험이나 역경을 겪은 환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적응해 나가는 것이다. 해리포터는 이를 얘기하며 ‘일반적인 마술’이라고 말했다.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일반적이고 정상적이다. 그것을 이겨내는 것은 곧 ‘일반적인 마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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