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돈은 필사적으로 웃겼다
  •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08 10:42
  • 호수 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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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의 지나친 관심과 질타가 ‘불안장애’라는 연예인 직업병 양산

정형돈이 《무한도전》에서 완전히 하차했다. 그는 작년 11월에 불안장애 때문에 휴식에 들어갔었다. 최근 정형돈과 《무한도전》 제작진이 복귀를 논의했다고 해서 복귀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덜컥 하차 소식이 전해지자 팬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정형돈 측은 “《무한도전》 특유의 긴장감과 중압감을 안고 방송을 하기에는 자신감이 부족한 상황이며, 다시 커질지도 모를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며 결국 하차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것이 팬들에게 특히 충격인 것은 최근 《무한도전》이 위기였기 때문이다. 노홍철과 정형돈이 빠진 상태에서 비상체제로 버텨온 것이 한계에 다다랐고, 정형돈의 구원 등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는데, 이게 더욱 정형돈에게 독이 된 것으로 보인다. 위기 국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기대받다 보니 불안장애를 앓던 사람이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형돈이 《무한도전》 하차한 이유는? 

 

노홍철도 최근 복귀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 역시 프로그램에 대해 부담감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무한도전》은 엄청난 주목과 기대를 받는 프로그램이다. 다른 프로그램 시청자들보다 훨씬 극성스러운 ‘무도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부담과 행여 그들을 실망시켰을 때 벌어질 사태에 대한 공포가 복귀를 망설이게 하는 원인일 것이다.

 

연예인들은 팬들의 주목과 기대를 바라는 사람이지만, 막상 팬들의 주목과 기대가 주어졌을 때 그것이 오히려 연예인의 목줄을 죄는 덫이 될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 그것을 정형돈과 노홍철의 《무한도전》 복귀 거부가 보여준다.

 

2005년에 《무모한 도전》으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주로 몸을 쓰는 포맷이었다. 지하철과 달리기 시합하기, 목욕조에 물 빨리 퍼넣기, 이런 내용들이었기 때문에 몸을 던져서 열심히만 하면 됐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오늘날 보는 《무한도전》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무한도전》은 엄청난 재치를 요구하는 포맷이었다. 정형돈은 여기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고, 그래서 ‘무도팬’들로부터 질타를 당했다. 못 웃기는 자격 미달의 개그맨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그는 2009년에 스스로를 살리에르라고 자조하기도 했다. 살리에르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천재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범재의 이름이다. 정형돈은 예능에서 많은 모차르트, 즉 천재적 익살꾼들을 봐왔다며 자신은 그들을 받쳐주는 살리에르 같은 존재라고 자조했다.

 

‘못 웃기는 개그맨’ 정형돈의 인생역전은 콩트에서 찾아왔다. 2009년에 《롤러코스터-남녀탐구생활》에서 진상남 캐릭터를 연기하며 인기에 시동을 걸었다. 그다음엔 《무한도전》에서 캐릭터를 연기하기 시작했다. 2010년에 은갈치 양복과 함께 ‘미존개오(미친 존재감 개포동 오렌지)’ 캐릭터를 통해 자신이 마치 대단히 감각적인 스타인 것처럼 연기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터졌다. 이후 천재적인 감각의 소유자인 예능 4대 천왕인 것처럼 행세해 인기를 얻다가 갑자기 불안장애로 잠정 하차하고 말았다.

천재 캐릭터로 가장한 것이 그에게 큰 부담이 됐을 것이다. 그는 “미래가 지나칠 정도로 불안해요. 운 좋게 잘되다 보니까 내 밑천이 드러날까 봐”라며 “그냥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이유 없이 찌를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를 찌르는 사람은 팬들이다. 정형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평가하면서 조금만 안 웃겨도 준엄한 심판을 내리는 팬들 말이다. 그런 팬들에 대한 공포가 정형돈으로 하여금 사람들이 자신을 찌를 것 같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그가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는 과거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 때 보여준 모습으로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그는 뇌진탕 증세로 구토를 하면서까지 링에 올랐다. 그가 구토하고 링에 오를 때 배경음악엔 싸이의 《연예인》이 깔렸다. ‘그대의 연예인이 되어 항상 즐겁게 해 줄게요, 연기와 노래에 코미디까지 다 해 줄게.’ 이 노래를 배경으로 그려진 정형돈의 투혼에 사람들은 감동했지만, 정형돈은 그럴수록 더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뇌진탕 증세까지 감수하면서 링에 올랐는데, 사람들은 그의 건강을 걱정하기는커녕 박수 치며 그런 감동과 웃음을 또 내놓으라고 채근했다. 그러지 못하면 지금 열광하는 팬들이 언제든 자신을 찌르는 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를 불안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정형돈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예능계의 원톱 천재 이경규도 “연예인은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데서 오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있다. 나이를 먹으니 이 점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며 불안장애의 일종인 공황장애 투병 사실을 고백했다. 남희석도 10년 전부터 공황장애를 앓아왔다. 그가 주목도가 높지 않은 종편 토크쇼 등에 주로 출연하는 것도 어쩌면 정형돈이 《무한도전》을 마다하는 것과 비슷한 심정일 수 있다. 이 밖에도 차태현·김승우·김장훈·공형진·박용우·김구라·장동혁·김신영·장나라·양현석·이병헌·류승수·김하늘·임상아 등 많은 연예인들이 불안장애나 공황장애 증상을 호소했다. 그야말로 연예인 직업병인 셈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감시당하고 평가받는 것은 엄청난 불안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시어머니 만 명을 모시고 사는 며느리 심정 비슷할 것이다. 이런 스트레스를 씻어낼 시간도 없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기 때문이다. 잠잘 시간도 없어서 긴장이 계속 유지된다. 그 틈을 비집고 미래 불안까지 엄습한다. 미래를 보장해 주는 장치가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미래 불안은 연예인들의 숙명이다. 스마트폰 SNS 시대 이후 감시자들이 많아진 것도 문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연예인들의 정신이 불안정해지는 것이다.

 

 

이경규·남희석 등도 공황장애 투병 고백 

 

우울증·조울증·도박·마약 등도 같은 맥락이다. 꼭 그런 심각한 상태까지 가지 않더라도 연예인들이 전반적으로 정신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은 그들의 뜬금없는 눈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강호동은 얼마 전에 후배 걸그룹 맴버가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라고 하자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신봉선은 《복면가왕》 녹화 중에 오열하기도 했다. 이렇게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는 연예인들이 많다. 그만큼 불안정한 것이다.

 

어느 정도는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통해 막대한 부를 얻기 때문에 그에 따른 부작용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너무 과할 땐 문제가 된다. 《무한도전》에서 환자가 나오고, 출연자가 자진해서 하차를 원하는 건 대중의 관심과 질타가 과하다는 징후다. 팬들의 관심 때문에 연예인이 병들고, 그래서 결국 팬들이 피해를 입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지금보다는 관용적인 시선으로 봐줘야 연예인들이 단체로 환자가 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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